그 밖의 이야기들2013.12.31 18:50


 

 



 작년에 빈곤함을 이야기하면서 영화 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시간적이고 물적인 빈곤함부터 이제는 관객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취득할 수 없는 기회의 빈곤함과 독식 체제로 어떤 영화는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받는 선택의 빈곤함까지 그야말로 안녕하지 못한 2013년의 관객으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조금 사정이 나아질것만도 같지만 제가 관객으로서의 잃어버린 권리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2014년이 갑오년의 갑오징어만큼이나 쫄깃해집니다. 








#1 


Blue Jasmine






 힘내세요 재스민 씨 


 우디 앨런 옹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이상하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미드나잇 인 파리’같은 영화보다 그의 유머 감각이 정말 약하다는 ‘매치 포인트’같은 영화를 더 좋아하는 나는 ‘블루 재스민’을 보면서 여성의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공감하면서 봤습니다. 


 재스민의 행동이 잘했든 못했든 그녀가 과분한 삶을 살았든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행복한 삶을 살았든 그녀의 행복을 재단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인생이 실전이고 눈에 불을 켜고 정신 차리면서 살아야 한다지만 우디 앨런옹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생극장 시뮬레이션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잔인하면서도 한 편으로 현실적인 우리들에게 너무나 기본적이고 뻔한 물음을 그만의 뻔뻔한 블랙 유머를 동원해 던져봅니다. 물질적인 풍요와 (사단이 나기 전까지는) 자상한 남자를 만나 천수를 누린 그대여 행복한가 하고 말이죠. 


 재스민처럼 몰락하지는 않았지만 타고난 외모로 잘 나가는 남자와 결혼에 성공한 지인들을 보면 꼭 이들에게 이런 일이 날 수 있으니 불가피한 사회화에 대해 미리미리 대처하고 무엇보다도 행복을 재정의하라는 외람된 말을 전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내가 여자도 아니고 외모가 출중한 것도 아니고 그것으로 무엇을 새롭게 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철없는 동생도 있는 것이 아니지만 재스민의 속물근성이 추악한 욕망 같지도 않았고 동생이 만나는 남자들이 저 역시 정말 한심해 보여서 저 같아도 “야 너 재 만나면 안돼”라고 해주고 싶었고 더운 보도블럭을 걸어오며 겨땀에 푹 전 그녀를 보며 내가 재스민도 아닌데 “왜 세상이 나를 미워하나”하면서 엉엉 울기도 했지요. 





 최고의 영화란 사실 알고 보면 별 것 없습니다. 남의 이야기 아니 정말 있지도 않은 사람의 있지도 않을 이야기인데 마치 내 친지가, 내 이웃이 심지어는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으면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부끄러워서 숨어버리거나 아니면 영화가 일부러 빠뜨리고 있는 퍼즐 조각에 왠지 맞을 것 같은 내가 가진 조각 하나를 끼워 넣는 것이겠지요.


 역대 최고의 영화 선정 중에 가장 개연성 없고 시시한 이유기는 했네요.







#2

지슬






 평범한 사람들이 지옥에 놓인다면?


 가끔 인류 상에는 너무도 과한 시련을 겪게 되는 사건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사건들 중 대부분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제주 4.3사건 역시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4.3 사건이라는 것은 솔직히 공부 때문에 역사를 배우고서야 알았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근-현대사에 대해 거의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요. 아마 논란이 많은 까닭에 정치색을 제거하려다 보니 아예 그 부분을 손대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굳이 4.3 사건만이 아니더라도 모든 역사적인 흐름 속의 공권력의 과도한 사용은 선량한 사람들의 희생으로 끝이나곤 합니다. 제주도의 이름 모를 순박한 이웃들은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망을 다니고 군인들의 총칼에 스러지곤 합니다. 뭐 이 또한 ‘상황을 모르고 함부로 하는 소리’라고 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소를 위해 대를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파시스트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건 아닌가 의심해 봅니다. 

 


 가끔은 머리보다 가슴으로 기억하는 영화가 있다.




 오멸 감독의 작품은 처음 보는데 소박한 음악영화가 주를 이루었던 그의 필모그래피와는 달리  ‘이어도’나 ‘지슬’은 제주도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아마도 제주도를 지역적 바탕으로 하고 있는 오멸 감독에게는 당연히 이야기해야 하는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잔인한 현실에 걸맞지 않게 흑백의 풍광들은 너무도 시적이고 아름답고 사람들은 목숨을 건 도피를 하면서도 지극히 낙천적입니다. 심지어 몇몇 장면에서는 스릴러 장르적인 구성까지 취하고 있어 영화의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지요. 물론 다른 시네필형 관객분이라면 이런 구성에 대한 분석으로 이 영화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습니다. 제 인문학적 지식이나 사물을 관찰하는 감성이 부족해서일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이 영화가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느낌을 갖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충분히 받아들였다고 보기 때문이죠.


 조금 책임감이 없는 소리 같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볼까요. 

 전쟁 영화가 있습니다. 총탄 속에 적을 섬멸하는 모습을 보면서 ‘액션 연출이 기가 막히네요.’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감독은 전쟁은 끔찍한 거야라고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종의 영화적인 장치가 주는 역설이 영화의 의도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슬’의 아름다운 풍경과 약간은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순박한 제주도 사람들이 영화의 비극을 말해주기위해 사용 된 것은 아닌가 합니다. 물론 실제로 표현된 많은 장면들이 충분히 비극적이었고요. 


 부족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들을 담아두는 것이겠지요. 단순히 이미지가 아니라 이것이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이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로 말이죠. 






#3 

설국열차





 전진하는 것의 아름다움

 가끔 롤플레잉 게임을 하다보면 퀘스트와는 상관없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에 들어가보고 싶고 실제 스토리와는 상관 없는 일을 진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런 생각을 품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냥 원래 반항적인 성격이라 주어진 매뉴얼대로 하는 것이 싫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내린 명령에 대한 부당함에 의해 불복종 하는 것.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있든 두 가지 현상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 만약 영화의 주인공(들)이 중간 계급 정도만 되었더라도 이 영화에 사건이라는 것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라는 말이 느낌표로 쓰이든 물음표로 쓰이든 이것을 품는 자는 안주하는 것을 못견뎌하고 살면서 그것을 품었던 사람이라면 열심히 한 쪽으로만 달리는 열차에 벌어지는 촌극에 적어도 관찰자로서 동행했을 거라 봅니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계속 전진만 하니 열차의 관문과도 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뭔가 전복적인 이미지를 자주 생각하던 저 같은 사람은 나름의 쾌감을 얻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소룡이 적을 깨고 다음 층으로 올라가듯 미션 자체에 힘을 실은 영화는 아닙니다. 소위 질서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 상하구조 그리고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많은 계획을 세운 기득권과 일방적인 불만으로 시스템에 저항하는 원민(怨民)들의 구조는 비록 열차라는 이름으로 축소화된 세계지만 세계사적으로 공통적으로 드러난 혁명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솔직히 역사 속에서나 혹은 영화 속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모습을 좋아하고 또 재미있게 봅니다. 어쩌면 이것은 천성에 숨어있는 좌파적인 기질일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 후에는? 이라는 대답에 사실 봉준호 감독조차 선뜻 대답하지는 못합니다. 그건 저는 선뜻 답을 못 드리고 유사한 사례를 가진 역사를 찾아봐야 알 것 같습니다. 


 문을 열고 싶었던 냄궁민수의 욕망은 이해하지만 개인적으론 무한한 연료를 제공한다는 전제하에 원형이나 혹은 뫼비우스의 띠를 한 4차원의 트랙에서 머리 칸과 꼬리 칸을 붙이고 뺑뺑 돌리는 변태같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4 

Django Unchained





타란티노는 진화하고 있다


‘장고’의 경우는 타란티노가 과감히 버린 것과 대신 취한 것이 동시에 묻어나는 영화였고 역시 그의 도전은 성공적이었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좁은 공간 안에서의 대사에 의존해 사건을 전개해나가는 방법은 그의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부터 버리고 있지 않은 것이었지요. 물론 캘빈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집으로 찾아들면서 다시 그의 그런 성향이 반영되지만 프레임 안의 공간 안의 인물 안의 사건이라는 마트료시카(인형 속에 인형을 넣는 러시아 목각인형)같은 구조의 기존 자신의 공식을 탈피하려 했다고 봅니다.


 또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시간 구성 조작 역시 버리고 순차적인 구성을 보여주었는데 과거 자신의 영화가 다양한 사람과 그에 얽힌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면 이 영화 ‘장고’는 한 인물에 대한 한 가지 사건을 최종 목표로 했던 만큼 시간의 조작에 의한 챕터식 구성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자신의 연출 매너리즘에서 탈피하고 더 다양한 것을 시도해보고자 하는 노력은 많이 반영되었고요.





 가장 좋았던 것은 ,‘장고’라고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타란티노 영화에 펼쳐지는 장난 같은 죽음들을 줄이고 죽음에 대해 조금은 진지한 접근을 했다는 데 조금은 그의 영화에서 의외의 인간적인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5 

Gravity





 영화 연출이야 다른 분들이 언급하셨지만 저는 이 영화를 통해 한 명의 배우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극을 이끌어나갔던 산드라 블록에게 말이죠.

 솔직히 그녀가 연기를 못한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지만 적당한 영화를 적당히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로 활약해오던 장르 역시 로맨틱 코미디물이었고 ‘블라인드 사이드’같은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탈 때는 과대평가라는 말을 했었죠.


 ‘그래비티’는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여성이 가지고 있는 강인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조금 도식적인 구도 같기는 하지만 극중 라이언이 한 아이의 어머니라는 설정도 있지만 산드라 블록은 영화 속에서 극한상황에서의 삶에 대한 의지를 상당히 잘 표현해내는데 그녀가 30년 가까이 쌓은 연기에 대한 내공이 허투가 아니었음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알폰소 쿠아론 역시 ‘이 투 마마’이후 (‘해리포터’는 번외로 치더라도) 모성에 대한 이야기를 테마로 삼아왔는데 ‘생명’을 줄 수 있는 존재로서의 여성의 강인함 그리고 신비함은 영화 ‘그래비티’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장엄한 우주 안에 사실상의 소우주를 그리고 싶었던 마음이 있던 게 아니었을까요.

 



#6

そして父になる





 영화 ‘친구’에는 ‘늬 아버지 머하시노’라는 명대사가 있지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 가정의 환경은 가정의 위치, 특히 아버지의 위치가 크게 결정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님은 ‘너는 아빠가 있으니까 애들한테 부자(父子)라고 하고 다녀라’고 하신 적이 있지요. 


 전 처음에 극중 료타(후쿠야마 마사히루)가 상당히 좋은 아빠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자주 접촉하려하고 강요하지도 않는 아빠라서 ‘좋구나’하고 생각했는데 유다이 가족을 만난 이후부터 그가 가장으로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본의 아닌 심판을 받게 됩니다. 





 약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편파적인 모습이 보이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료타의 부성에 대한 지지를 하는 사람들이(저를 포함해서) 얼마나 경직되고 형식적인 부성에 길들여졌나에 대한 생각을 하니 뭔가 머릿속에 스쳐 가는 것들이 있더랍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여전히 ‘인간적’인 일상적인 공간에 대한 애착어린 표현을 놓치지 않았고 감독 특유의 먹방(!) 역시 팬서비스처럼 선물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아버지라는 소재로 끌고 나간 휴머니티, 단순히 주인공 료타 뿐이 아닌 그의 아들(? ...!) 케이타가 또 만들어나갈 부성에 대한 전승에 대해 생각해 충분히 느낄 만한 영화였다고 봅니다. 




#7

Stoker





 언제나 테레즈 라캉을 영화화 하고 싶었던 박찬욱 감독이 ‘박쥐’에서 소원을 풀었던 것처럼 폭력과 에로티시즘 그리고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브람 스토커의 스토커라고 하지만 사실은 약간은 아청아청할듯한 질풍노도의 시기에서 오는 혼란감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 웬트워스 밀러가 쓴 각본에 그렇게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 딱히 이것을 장르영화적인 시점으로 관찰한다면 이 영화는 아귀도 맞지 않고 어색한 3류 펄프 스릴러쯤 되었을지 모르지만 박찬욱 감독이 주인공 인디아의 불안정한 감정의 굴곡을 그것을 극복함으로서 성장하는 다크한 성장영화로 포커스를 맞춘 까닭에 그가 추구하는 꽤나 묘하고 ‘모호한’ 영화로 재탄생 할 수 있었다고 본다. 물론 그 해결 방법이 ‘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8

Iron Man 3





 아마 토니 스타크는 소위 신상이 다 털린 몇 안되는 히어로에다 잘난 맛에 사는 독불장군형 캐릭터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언맨 3’는 다소 요란할 듯한 파괴장면에 쓸쓸한 내레이션으로 시작을 하죠. 

 이렇듯 영화 ‘아이언맨 3’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 잘난 남자로서의 토니 스타크가 아닌 위기에 빠지고 쓸쓸한 남자로서의 토니 스타크를 보여줍니다. 마치 데이빗 핀처의 <더 게임>에서 모든 것을 잃고 유품인 시계를 팔던 주인공 니콜라스의 모습도 오버랩 되더랍니다.


 현실적인 제약을 통해 자신이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관계를 통해 인물이 성장해나가는 드라마로서, (뒤에는 엄청 쏟아지긴 하지만)요란한 CG질을 할 수 없으니 스릴러 장르영화로서 ‘아이언맨 3’는 기존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가던 평이한 길을 버리고 독특한 방식을 택합니다. 



#9

De rouille et d'os





 자크 오디아르의 영화는 난데없는 ‘세계로의 투입’과 ‘적응’을 다루고 있는데 전작인 ‘예언자’가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흘러가 데 반해 ‘러스트 앤 본’은 너무 극단적으로 흘러갔던 까닭에 사람들이 다소 실망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픈된 사회에서 서로가 불편할 수 있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면서 소위 사회적응이라는 이름의 ‘사회화’가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이루어 질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영화의 거친 질감만큼이나 투박한 세계로의 동화를 보여준 마리옹 꼬띠아르의 연기가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10

Television





 영화는 독특하게 ‘이미지를 통제한 사회’를 보여주고 있는데 우화적으로 표현하고 있긴 하지만 만약 영화 속 규제가 현실적이든 비현실적이든 그것이 영화 속에서는 표면적으로 우습게 보여졌을지라도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결코 웃으며 넘어갈만한 소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더 생각해 볼 요소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갈등이 단순히 악한 권력자와 핍박받는 착한 사람들의 이분법적인 구조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닌 악의가 없고 (종교적)신념이 강한 사람들이라는 데 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모습을 보면서 현대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어떤 ‘노선’에 대한 갈등을 겪는 사태들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남 얘기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 올 해 가장 공감한 영화로 꼽기 좋은 작품이 아니었나 합니다. 



 < 올 해 못봐서 아쉬운 영화 10편 (무작위) >





 제 차트를 보면서 “어? 왜 이 영화는 없지?”하시는 분이 많으셨을 거라 봅니다. 제가 아마 이 작품을 봤더라면 제 차트가 조금 바뀌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돈도 시간도 없어서 눈앞에서 놓쳐야했던 그 영화들을 풀어봅니다. 


 <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 < 더 헌트 >, < 마스터 >, < 머드 >, < 사랑에 빠진 것처럼 >, < 엔젤스 셰어 >, < 일대종사 >, < 퍼시픽 림 >, 무엇보다도 < 비포 미드나잇 >!!!

 








 올 해는 영화제도 거의 못다녔고 영화 볼 시간도 없었던 까닭에 조촐하게 다섯 편만 꼽아봤습니다. 공교롭게도 모두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이네요



#1

La vie d'Adele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통한, 사람 가까이 보기


 영화는 정말 많은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치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하는 사람만큼이나 감정을 숨길 수 없게 만들어 인물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관객들이 상당히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합니다.


 단지 이런 장면 연출은 카메라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인물의 사소한 것까지 가까이 카메라를 들이 밀죠. 이를테면 자유분방한 엠마의 부모와 평범한 가정인 레아의 부모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이나 어쩌면 생략할 수도 있었던 둘의 러브씬 같은 것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데 관객들이 두 사람의 이야기의 전개에 동참한다는 전제를 깔고 간다면 관객들이 영화의 흐름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동시에 배우들은 작은 디테일도 숨길 수 없기에 사실적인 연기를 하게 되는 것이죠.



자유의 색으로서의 파랑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만들어진 국가인 프랑스. 프랑스의 국기는 아시다시피 파랑, 하양, 빨강입니다. 이는 아이러니하게 미국 국기의 색의 바탕이 되기도 하죠. 또한 크쥐쉬토프 키에슬롭스키는 프랑스에서 이 색으로 세 가지 색 연작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파랑’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바로 ‘자유’입니다. 어린 아델은 이상형의 남자를 만났지만 그에게서 ‘취향의 자유’를 누리지는 못합니다. 바로 엠마를 통해 그것을 누리게 되죠. 단순히 영화는 성의 선택에만 국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소위 ‘게이들의 사회, 인권 운동물’로 시야를 좁히는 것 보다 더 넓은 삶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들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레아 세이두 보다 아델 엑자풀로스에게 




 2007년에 데뷔했지만 우리에게는 정말 생소한 배우 아델 엑자풀로스는 아마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잊히지 않는 배우가 될 것이라 자부합니다. 단순히 그녀의 토끼 같은 귀여운 외모나 레아 세이두와의 뜨거운 러브씬 때문만은 아니고 막 성인으로 돌아서면서 새로운 사회를 맞이해야 하는 그녀의 모습이 단순히 정체성에 흔들리는 동성연애자가 아닌 사회 초년생으로서의 벅찬 느낌을 주기 때문이죠. 


 어쩌면 이 영화가 ‘푸른색’이라는 의미에서 엠마를 더 부각시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청춘(靑春)의 푸른색을 누구보다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던 레아의 1막의 끝과 2막의 시작을 전해주려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단순히 동성애 영화가 아닌 청춘을 지나면서 성장하는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 있었기에 이 영화는 정말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었습니다. 









#2

The Lunchbox





 먹는 것이 곧 삶이다


 제가 좋아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역시 랭크에!) 감독의 영화를 보면 꼭 다양한 음식들과 소위 먹방들이 나옵니다. 그냥 감독의 취향일 수 있고 아니면 정말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개 영화속의 음식들이, 공포영화가 아닌 이상은, 생존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의외로 다양하고 맛깔나는 음식이 많은 인도에서 정작 ‘음식’을 다룬 영화는 별로 없었죠. 어쩌면 인도의 일반 대중 영화는 ‘음식’은 삶으로서 일상적이고 영화에서는 우리가 다루지 못한 가상 체험의 세계를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런치박스’가 음식과 교감, 그리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던 것은 비록 이 또한 가상의 삶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현실적으로 또 조금 더 가까이 인간의 진솔한 교감을 하고자 했기 때문은 아닌가 합니다. 


 처음에는 음식으로만 교류했던 사람들이 나중에 삶과 인생에 대해 회고하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고 또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든 자신의 자존감을 느끼는 만큼이나 외로운 존재라는 것 아니 반대로 자신의 외로움을 앎으로서 자신의 자존감을 느끼는 모습을 재미있고 맛깔나게 그리고 있습니다. 


 음식을 동원해 삶을 표현하는 영화는 단순히 표면적인 의미에서의 목숨을 말하는 삶(命)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느끼는 고차원 적인 삶(生)으로 숙성해갈 때 깊은 맛을 내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이 영화를 올 해 가장 깊은 맛을 느꼈던 영화로 꼽고 싶습니다. 







#3

L'etrange couleur des larmes de ton corps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화면만 흔드는 영화로 느껴질 수 있지만 단순히 ‘그로테스크’라는 것을 어떤 사건과 그 흐름으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닌 시각적, 촉각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 신개념 3D(혹은 4D)영화였다고 봅니다.


 사실 영화의 소개에서 광고한 것처럼 다리오 아르젠토로 대표되는 지알로 영화를 계승했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어쩌면 ‘서스페리아’나 ‘딥 레드’ 같은 영화의 뉘앙스는 공유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그로테스크 그 자체고 그것만으로 상당히 독창적인 결과물을 냈다고 봅니다.


 또한 감독의 출신지인 벨기에의 유산들 이를테면 독특한 건축양식이나 고딕호러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을 벨기에의 아르누보 양식으로 표현했던 것은 이들이 습득한 문화적 텍스트를 풍부하게 녹여낸 것이라 생각합니다. 진짜 근래엔 보기 드문 상당히 ‘자극적’인 영화였습니다.



#4

Kadal





 인도의 작가주의 감독 마니 라트남의 영화의 특징이자 미덕이 있다면 여느 인도영화가 그런 것처럼 인물의 구조를 선악으로 놓고 이를 갈등요소로 표현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단순히 입체적인 인물을 구성하기 위함이 아니라 단선적인 구분을 피하려는 감독의 시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종교가 등장하지만 의외로 영화는 종교적인 구원을 다룬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갈등의 해결은 신앙이 아닌 인간 본연의 인간성으로 해결하죠. 때문에 영화는 구원과 복수를 행하는 서로 반대편에 놓인 두 인물이 아닌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토마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놓습니다. 그리고 극적인 아이러니는 존재하지만 그 해결이 안일하지는 않은 영화였습니다. 




#5

Short Term 12





 2013년의 화두는 ‘힐링’이었습니다. 아마 많은 힐링영화가 나왔지만 힐링영화의 가치는 대상을 ‘치료의 대상’이 아닌 나와 같은 사람으로 보고 그 사람과 같은 눈높이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숏텀 12’는 곱씹는 가치가 있다기 보다는 표면적인 영화에 가깝기는 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 만들어간, 극적인 사건이 있지만 현명한 영화들이 그렇듯 ‘왜 그 사건이 일어났지’ 같은 자극적인 소재에 집착하기 보다는 ‘그럼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인간적이 시선이 묻어나는 영화였다고 봅니다. 




그 밖에


 ‘일로일로’, ‘바라: 축복’, ‘퀸’, ‘키리시마군이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등의 영화가 괜찮았었습니다. 옴니버스 호러영화 <ABC 오브 데스>에서 <O for Orgasm>챕터가 정말 좋았고 그것 때문에 ‘네 몸에서 흐르는 눈물의 이상한 색깔’이라는 영화를 선택했는데 잘 한 결정이어서 기분이 좋았네요.



 2014년에는 이제 사정이 풀렸으니 영화도 많이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올 해 돈 많이 버셔서 극장도 많이 다니시고 좋은 영화도 많이 보시고 정품 영화도 많이 보시고 욕심이 있다면 다양한 영화를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신고
Posted by 라.즈.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