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밖의 이야기들2013.12.31 18:50


 

 



 작년에 빈곤함을 이야기하면서 영화 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시간적이고 물적인 빈곤함부터 이제는 관객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취득할 수 없는 기회의 빈곤함과 독식 체제로 어떤 영화는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받는 선택의 빈곤함까지 그야말로 안녕하지 못한 2013년의 관객으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조금 사정이 나아질것만도 같지만 제가 관객으로서의 잃어버린 권리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2014년이 갑오년의 갑오징어만큼이나 쫄깃해집니다. 








#1 


Blue Jasmine






 힘내세요 재스민 씨 


 우디 앨런 옹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이상하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미드나잇 인 파리’같은 영화보다 그의 유머 감각이 정말 약하다는 ‘매치 포인트’같은 영화를 더 좋아하는 나는 ‘블루 재스민’을 보면서 여성의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공감하면서 봤습니다. 


 재스민의 행동이 잘했든 못했든 그녀가 과분한 삶을 살았든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행복한 삶을 살았든 그녀의 행복을 재단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인생이 실전이고 눈에 불을 켜고 정신 차리면서 살아야 한다지만 우디 앨런옹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생극장 시뮬레이션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잔인하면서도 한 편으로 현실적인 우리들에게 너무나 기본적이고 뻔한 물음을 그만의 뻔뻔한 블랙 유머를 동원해 던져봅니다. 물질적인 풍요와 (사단이 나기 전까지는) 자상한 남자를 만나 천수를 누린 그대여 행복한가 하고 말이죠. 


 재스민처럼 몰락하지는 않았지만 타고난 외모로 잘 나가는 남자와 결혼에 성공한 지인들을 보면 꼭 이들에게 이런 일이 날 수 있으니 불가피한 사회화에 대해 미리미리 대처하고 무엇보다도 행복을 재정의하라는 외람된 말을 전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내가 여자도 아니고 외모가 출중한 것도 아니고 그것으로 무엇을 새롭게 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철없는 동생도 있는 것이 아니지만 재스민의 속물근성이 추악한 욕망 같지도 않았고 동생이 만나는 남자들이 저 역시 정말 한심해 보여서 저 같아도 “야 너 재 만나면 안돼”라고 해주고 싶었고 더운 보도블럭을 걸어오며 겨땀에 푹 전 그녀를 보며 내가 재스민도 아닌데 “왜 세상이 나를 미워하나”하면서 엉엉 울기도 했지요. 





 최고의 영화란 사실 알고 보면 별 것 없습니다. 남의 이야기 아니 정말 있지도 않은 사람의 있지도 않을 이야기인데 마치 내 친지가, 내 이웃이 심지어는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으면 두 가지 중 하나입니다. 부끄러워서 숨어버리거나 아니면 영화가 일부러 빠뜨리고 있는 퍼즐 조각에 왠지 맞을 것 같은 내가 가진 조각 하나를 끼워 넣는 것이겠지요.


 역대 최고의 영화 선정 중에 가장 개연성 없고 시시한 이유기는 했네요.







#2

지슬






 평범한 사람들이 지옥에 놓인다면?


 가끔 인류 상에는 너무도 과한 시련을 겪게 되는 사건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사건들 중 대부분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제주 4.3사건 역시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4.3 사건이라는 것은 솔직히 공부 때문에 역사를 배우고서야 알았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근-현대사에 대해 거의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요. 아마 논란이 많은 까닭에 정치색을 제거하려다 보니 아예 그 부분을 손대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굳이 4.3 사건만이 아니더라도 모든 역사적인 흐름 속의 공권력의 과도한 사용은 선량한 사람들의 희생으로 끝이나곤 합니다. 제주도의 이름 모를 순박한 이웃들은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망을 다니고 군인들의 총칼에 스러지곤 합니다. 뭐 이 또한 ‘상황을 모르고 함부로 하는 소리’라고 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소를 위해 대를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파시스트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건 아닌가 의심해 봅니다. 

 


 가끔은 머리보다 가슴으로 기억하는 영화가 있다.




 오멸 감독의 작품은 처음 보는데 소박한 음악영화가 주를 이루었던 그의 필모그래피와는 달리  ‘이어도’나 ‘지슬’은 제주도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아마도 제주도를 지역적 바탕으로 하고 있는 오멸 감독에게는 당연히 이야기해야 하는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잔인한 현실에 걸맞지 않게 흑백의 풍광들은 너무도 시적이고 아름답고 사람들은 목숨을 건 도피를 하면서도 지극히 낙천적입니다. 심지어 몇몇 장면에서는 스릴러 장르적인 구성까지 취하고 있어 영화의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지요. 물론 다른 시네필형 관객분이라면 이런 구성에 대한 분석으로 이 영화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습니다. 제 인문학적 지식이나 사물을 관찰하는 감성이 부족해서일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이 영화가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느낌을 갖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충분히 받아들였다고 보기 때문이죠.


 조금 책임감이 없는 소리 같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볼까요. 

 전쟁 영화가 있습니다. 총탄 속에 적을 섬멸하는 모습을 보면서 ‘액션 연출이 기가 막히네요.’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감독은 전쟁은 끔찍한 거야라고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종의 영화적인 장치가 주는 역설이 영화의 의도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슬’의 아름다운 풍경과 약간은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순박한 제주도 사람들이 영화의 비극을 말해주기위해 사용 된 것은 아닌가 합니다. 물론 실제로 표현된 많은 장면들이 충분히 비극적이었고요. 


 부족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들을 담아두는 것이겠지요. 단순히 이미지가 아니라 이것이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이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일로 말이죠. 






#3 

설국열차





 전진하는 것의 아름다움

 가끔 롤플레잉 게임을 하다보면 퀘스트와는 상관없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에 들어가보고 싶고 실제 스토리와는 상관 없는 일을 진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런 생각을 품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냥 원래 반항적인 성격이라 주어진 매뉴얼대로 하는 것이 싫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내린 명령에 대한 부당함에 의해 불복종 하는 것.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있든 두 가지 현상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 만약 영화의 주인공(들)이 중간 계급 정도만 되었더라도 이 영화에 사건이라는 것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라는 말이 느낌표로 쓰이든 물음표로 쓰이든 이것을 품는 자는 안주하는 것을 못견뎌하고 살면서 그것을 품었던 사람이라면 열심히 한 쪽으로만 달리는 열차에 벌어지는 촌극에 적어도 관찰자로서 동행했을 거라 봅니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계속 전진만 하니 열차의 관문과도 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뭔가 전복적인 이미지를 자주 생각하던 저 같은 사람은 나름의 쾌감을 얻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소룡이 적을 깨고 다음 층으로 올라가듯 미션 자체에 힘을 실은 영화는 아닙니다. 소위 질서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 상하구조 그리고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많은 계획을 세운 기득권과 일방적인 불만으로 시스템에 저항하는 원민(怨民)들의 구조는 비록 열차라는 이름으로 축소화된 세계지만 세계사적으로 공통적으로 드러난 혁명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솔직히 역사 속에서나 혹은 영화 속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모습을 좋아하고 또 재미있게 봅니다. 어쩌면 이것은 천성에 숨어있는 좌파적인 기질일수도 있지요. 하지만 그 후에는? 이라는 대답에 사실 봉준호 감독조차 선뜻 대답하지는 못합니다. 그건 저는 선뜻 답을 못 드리고 유사한 사례를 가진 역사를 찾아봐야 알 것 같습니다. 


 문을 열고 싶었던 냄궁민수의 욕망은 이해하지만 개인적으론 무한한 연료를 제공한다는 전제하에 원형이나 혹은 뫼비우스의 띠를 한 4차원의 트랙에서 머리 칸과 꼬리 칸을 붙이고 뺑뺑 돌리는 변태같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4 

Django Unchained





타란티노는 진화하고 있다


‘장고’의 경우는 타란티노가 과감히 버린 것과 대신 취한 것이 동시에 묻어나는 영화였고 역시 그의 도전은 성공적이었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좁은 공간 안에서의 대사에 의존해 사건을 전개해나가는 방법은 그의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부터 버리고 있지 않은 것이었지요. 물론 캘빈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집으로 찾아들면서 다시 그의 그런 성향이 반영되지만 프레임 안의 공간 안의 인물 안의 사건이라는 마트료시카(인형 속에 인형을 넣는 러시아 목각인형)같은 구조의 기존 자신의 공식을 탈피하려 했다고 봅니다.


 또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시간 구성 조작 역시 버리고 순차적인 구성을 보여주었는데 과거 자신의 영화가 다양한 사람과 그에 얽힌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면 이 영화 ‘장고’는 한 인물에 대한 한 가지 사건을 최종 목표로 했던 만큼 시간의 조작에 의한 챕터식 구성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자신의 연출 매너리즘에서 탈피하고 더 다양한 것을 시도해보고자 하는 노력은 많이 반영되었고요.





 가장 좋았던 것은 ,‘장고’라고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타란티노 영화에 펼쳐지는 장난 같은 죽음들을 줄이고 죽음에 대해 조금은 진지한 접근을 했다는 데 조금은 그의 영화에서 의외의 인간적인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5 

Gravity





 영화 연출이야 다른 분들이 언급하셨지만 저는 이 영화를 통해 한 명의 배우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극을 이끌어나갔던 산드라 블록에게 말이죠.

 솔직히 그녀가 연기를 못한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지만 적당한 영화를 적당히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로 활약해오던 장르 역시 로맨틱 코미디물이었고 ‘블라인드 사이드’같은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탈 때는 과대평가라는 말을 했었죠.


 ‘그래비티’는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여성이 가지고 있는 강인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조금 도식적인 구도 같기는 하지만 극중 라이언이 한 아이의 어머니라는 설정도 있지만 산드라 블록은 영화 속에서 극한상황에서의 삶에 대한 의지를 상당히 잘 표현해내는데 그녀가 30년 가까이 쌓은 연기에 대한 내공이 허투가 아니었음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알폰소 쿠아론 역시 ‘이 투 마마’이후 (‘해리포터’는 번외로 치더라도) 모성에 대한 이야기를 테마로 삼아왔는데 ‘생명’을 줄 수 있는 존재로서의 여성의 강인함 그리고 신비함은 영화 ‘그래비티’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장엄한 우주 안에 사실상의 소우주를 그리고 싶었던 마음이 있던 게 아니었을까요.

 



#6

そして父になる





 영화 ‘친구’에는 ‘늬 아버지 머하시노’라는 명대사가 있지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 가정의 환경은 가정의 위치, 특히 아버지의 위치가 크게 결정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님은 ‘너는 아빠가 있으니까 애들한테 부자(父子)라고 하고 다녀라’고 하신 적이 있지요. 


 전 처음에 극중 료타(후쿠야마 마사히루)가 상당히 좋은 아빠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자주 접촉하려하고 강요하지도 않는 아빠라서 ‘좋구나’하고 생각했는데 유다이 가족을 만난 이후부터 그가 가장으로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본의 아닌 심판을 받게 됩니다. 





 약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편파적인 모습이 보이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료타의 부성에 대한 지지를 하는 사람들이(저를 포함해서) 얼마나 경직되고 형식적인 부성에 길들여졌나에 대한 생각을 하니 뭔가 머릿속에 스쳐 가는 것들이 있더랍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여전히 ‘인간적’인 일상적인 공간에 대한 애착어린 표현을 놓치지 않았고 감독 특유의 먹방(!) 역시 팬서비스처럼 선물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아버지라는 소재로 끌고 나간 휴머니티, 단순히 주인공 료타 뿐이 아닌 그의 아들(? ...!) 케이타가 또 만들어나갈 부성에 대한 전승에 대해 생각해 충분히 느낄 만한 영화였다고 봅니다. 




#7

Stoker





 언제나 테레즈 라캉을 영화화 하고 싶었던 박찬욱 감독이 ‘박쥐’에서 소원을 풀었던 것처럼 폭력과 에로티시즘 그리고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브람 스토커의 스토커라고 하지만 사실은 약간은 아청아청할듯한 질풍노도의 시기에서 오는 혼란감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 웬트워스 밀러가 쓴 각본에 그렇게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 딱히 이것을 장르영화적인 시점으로 관찰한다면 이 영화는 아귀도 맞지 않고 어색한 3류 펄프 스릴러쯤 되었을지 모르지만 박찬욱 감독이 주인공 인디아의 불안정한 감정의 굴곡을 그것을 극복함으로서 성장하는 다크한 성장영화로 포커스를 맞춘 까닭에 그가 추구하는 꽤나 묘하고 ‘모호한’ 영화로 재탄생 할 수 있었다고 본다. 물론 그 해결 방법이 ‘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8

Iron Man 3





 아마 토니 스타크는 소위 신상이 다 털린 몇 안되는 히어로에다 잘난 맛에 사는 독불장군형 캐릭터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언맨 3’는 다소 요란할 듯한 파괴장면에 쓸쓸한 내레이션으로 시작을 하죠. 

 이렇듯 영화 ‘아이언맨 3’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 잘난 남자로서의 토니 스타크가 아닌 위기에 빠지고 쓸쓸한 남자로서의 토니 스타크를 보여줍니다. 마치 데이빗 핀처의 <더 게임>에서 모든 것을 잃고 유품인 시계를 팔던 주인공 니콜라스의 모습도 오버랩 되더랍니다.


 현실적인 제약을 통해 자신이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관계를 통해 인물이 성장해나가는 드라마로서, (뒤에는 엄청 쏟아지긴 하지만)요란한 CG질을 할 수 없으니 스릴러 장르영화로서 ‘아이언맨 3’는 기존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가던 평이한 길을 버리고 독특한 방식을 택합니다. 



#9

De rouille et d'os





 자크 오디아르의 영화는 난데없는 ‘세계로의 투입’과 ‘적응’을 다루고 있는데 전작인 ‘예언자’가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흘러가 데 반해 ‘러스트 앤 본’은 너무 극단적으로 흘러갔던 까닭에 사람들이 다소 실망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픈된 사회에서 서로가 불편할 수 있는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면서 소위 사회적응이라는 이름의 ‘사회화’가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이루어 질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영화의 거친 질감만큼이나 투박한 세계로의 동화를 보여준 마리옹 꼬띠아르의 연기가 상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10

Television





 영화는 독특하게 ‘이미지를 통제한 사회’를 보여주고 있는데 우화적으로 표현하고 있긴 하지만 만약 영화 속 규제가 현실적이든 비현실적이든 그것이 영화 속에서는 표면적으로 우습게 보여졌을지라도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결코 웃으며 넘어갈만한 소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더 생각해 볼 요소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간의 갈등이 단순히 악한 권력자와 핍박받는 착한 사람들의 이분법적인 구조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닌 악의가 없고 (종교적)신념이 강한 사람들이라는 데 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모습을 보면서 현대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어떤 ‘노선’에 대한 갈등을 겪는 사태들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남 얘기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 올 해 가장 공감한 영화로 꼽기 좋은 작품이 아니었나 합니다. 



 < 올 해 못봐서 아쉬운 영화 10편 (무작위) >





 제 차트를 보면서 “어? 왜 이 영화는 없지?”하시는 분이 많으셨을 거라 봅니다. 제가 아마 이 작품을 봤더라면 제 차트가 조금 바뀌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돈도 시간도 없어서 눈앞에서 놓쳐야했던 그 영화들을 풀어봅니다. 


 <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 < 더 헌트 >, < 마스터 >, < 머드 >, < 사랑에 빠진 것처럼 >, < 엔젤스 셰어 >, < 일대종사 >, < 퍼시픽 림 >, 무엇보다도 < 비포 미드나잇 >!!!

 








 올 해는 영화제도 거의 못다녔고 영화 볼 시간도 없었던 까닭에 조촐하게 다섯 편만 꼽아봤습니다. 공교롭게도 모두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이네요



#1

La vie d'Adele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통한, 사람 가까이 보기


 영화는 정말 많은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치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하는 사람만큼이나 감정을 숨길 수 없게 만들어 인물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관객들이 상당히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합니다.


 단지 이런 장면 연출은 카메라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인물의 사소한 것까지 가까이 카메라를 들이 밀죠. 이를테면 자유분방한 엠마의 부모와 평범한 가정인 레아의 부모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이나 어쩌면 생략할 수도 있었던 둘의 러브씬 같은 것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데 관객들이 두 사람의 이야기의 전개에 동참한다는 전제를 깔고 간다면 관객들이 영화의 흐름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동시에 배우들은 작은 디테일도 숨길 수 없기에 사실적인 연기를 하게 되는 것이죠.



자유의 색으로서의 파랑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만들어진 국가인 프랑스. 프랑스의 국기는 아시다시피 파랑, 하양, 빨강입니다. 이는 아이러니하게 미국 국기의 색의 바탕이 되기도 하죠. 또한 크쥐쉬토프 키에슬롭스키는 프랑스에서 이 색으로 세 가지 색 연작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파랑’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바로 ‘자유’입니다. 어린 아델은 이상형의 남자를 만났지만 그에게서 ‘취향의 자유’를 누리지는 못합니다. 바로 엠마를 통해 그것을 누리게 되죠. 단순히 영화는 성의 선택에만 국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소위 ‘게이들의 사회, 인권 운동물’로 시야를 좁히는 것 보다 더 넓은 삶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들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레아 세이두 보다 아델 엑자풀로스에게 




 2007년에 데뷔했지만 우리에게는 정말 생소한 배우 아델 엑자풀로스는 아마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잊히지 않는 배우가 될 것이라 자부합니다. 단순히 그녀의 토끼 같은 귀여운 외모나 레아 세이두와의 뜨거운 러브씬 때문만은 아니고 막 성인으로 돌아서면서 새로운 사회를 맞이해야 하는 그녀의 모습이 단순히 정체성에 흔들리는 동성연애자가 아닌 사회 초년생으로서의 벅찬 느낌을 주기 때문이죠. 


 어쩌면 이 영화가 ‘푸른색’이라는 의미에서 엠마를 더 부각시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청춘(靑春)의 푸른색을 누구보다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던 레아의 1막의 끝과 2막의 시작을 전해주려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단순히 동성애 영화가 아닌 청춘을 지나면서 성장하는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 있었기에 이 영화는 정말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었습니다. 









#2

The Lunchbox





 먹는 것이 곧 삶이다


 제가 좋아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역시 랭크에!) 감독의 영화를 보면 꼭 다양한 음식들과 소위 먹방들이 나옵니다. 그냥 감독의 취향일 수 있고 아니면 정말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개 영화속의 음식들이, 공포영화가 아닌 이상은, 생존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의외로 다양하고 맛깔나는 음식이 많은 인도에서 정작 ‘음식’을 다룬 영화는 별로 없었죠. 어쩌면 인도의 일반 대중 영화는 ‘음식’은 삶으로서 일상적이고 영화에서는 우리가 다루지 못한 가상 체험의 세계를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런치박스’가 음식과 교감, 그리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던 것은 비록 이 또한 가상의 삶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현실적으로 또 조금 더 가까이 인간의 진솔한 교감을 하고자 했기 때문은 아닌가 합니다. 


 처음에는 음식으로만 교류했던 사람들이 나중에 삶과 인생에 대해 회고하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고 또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든 자신의 자존감을 느끼는 만큼이나 외로운 존재라는 것 아니 반대로 자신의 외로움을 앎으로서 자신의 자존감을 느끼는 모습을 재미있고 맛깔나게 그리고 있습니다. 


 음식을 동원해 삶을 표현하는 영화는 단순히 표면적인 의미에서의 목숨을 말하는 삶(命)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느끼는 고차원 적인 삶(生)으로 숙성해갈 때 깊은 맛을 내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이 영화를 올 해 가장 깊은 맛을 느꼈던 영화로 꼽고 싶습니다. 







#3

L'etrange couleur des larmes de ton corps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화면만 흔드는 영화로 느껴질 수 있지만 단순히 ‘그로테스크’라는 것을 어떤 사건과 그 흐름으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닌 시각적, 촉각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 신개념 3D(혹은 4D)영화였다고 봅니다.


 사실 영화의 소개에서 광고한 것처럼 다리오 아르젠토로 대표되는 지알로 영화를 계승했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어쩌면 ‘서스페리아’나 ‘딥 레드’ 같은 영화의 뉘앙스는 공유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그로테스크 그 자체고 그것만으로 상당히 독창적인 결과물을 냈다고 봅니다.


 또한 감독의 출신지인 벨기에의 유산들 이를테면 독특한 건축양식이나 고딕호러에서 볼 수 있는 양식을 벨기에의 아르누보 양식으로 표현했던 것은 이들이 습득한 문화적 텍스트를 풍부하게 녹여낸 것이라 생각합니다. 진짜 근래엔 보기 드문 상당히 ‘자극적’인 영화였습니다.



#4

Kadal





 인도의 작가주의 감독 마니 라트남의 영화의 특징이자 미덕이 있다면 여느 인도영화가 그런 것처럼 인물의 구조를 선악으로 놓고 이를 갈등요소로 표현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단순히 입체적인 인물을 구성하기 위함이 아니라 단선적인 구분을 피하려는 감독의 시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종교가 등장하지만 의외로 영화는 종교적인 구원을 다룬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갈등의 해결은 신앙이 아닌 인간 본연의 인간성으로 해결하죠. 때문에 영화는 구원과 복수를 행하는 서로 반대편에 놓인 두 인물이 아닌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토마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놓습니다. 그리고 극적인 아이러니는 존재하지만 그 해결이 안일하지는 않은 영화였습니다. 




#5

Short Term 12





 2013년의 화두는 ‘힐링’이었습니다. 아마 많은 힐링영화가 나왔지만 힐링영화의 가치는 대상을 ‘치료의 대상’이 아닌 나와 같은 사람으로 보고 그 사람과 같은 눈높이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숏텀 12’는 곱씹는 가치가 있다기 보다는 표면적인 영화에 가깝기는 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 만들어간, 극적인 사건이 있지만 현명한 영화들이 그렇듯 ‘왜 그 사건이 일어났지’ 같은 자극적인 소재에 집착하기 보다는 ‘그럼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인간적이 시선이 묻어나는 영화였다고 봅니다. 




그 밖에


 ‘일로일로’, ‘바라: 축복’, ‘퀸’, ‘키리시마군이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등의 영화가 괜찮았었습니다. 옴니버스 호러영화 <ABC 오브 데스>에서 <O for Orgasm>챕터가 정말 좋았고 그것 때문에 ‘네 몸에서 흐르는 눈물의 이상한 색깔’이라는 영화를 선택했는데 잘 한 결정이어서 기분이 좋았네요.



 2014년에는 이제 사정이 풀렸으니 영화도 많이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올 해 돈 많이 버셔서 극장도 많이 다니시고 좋은 영화도 많이 보시고 정품 영화도 많이 보시고 욕심이 있다면 다양한 영화를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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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즈.배.리

 

 

 

 인도는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신화적 상상력이 유산이 되어 영화인들은 그것을 화면에 담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죠. 하지만 그 유산이 찬란하다 한들 그것을 구성하는 능력이 없다면 단순한 ‘전달’에 그치고 말겠죠. 그나마 전달이라고 하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마저도 이뤄내지 못한 채 회사라는 공장의 요원들이 되어 단순노동만 하다 끝나게 됩니다.

 

 마니 라트남의 영화는 내러티브만 들으면 상당히 평범할 것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지만 그의 영화는 시퀀스와 시퀀스를 움직일 때 느껴지는 역동성이 느껴집니다. 어촌 시장에서의 민중들의 삶의 모습이 그렇고 작은 교회를 부흥시키기까지의 이야기, 복수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될 때 그 다음은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감독은 상당히 심각하고 무거운 톤의 영화를 다루면서도 맛살라(인도식 뮤지컬) 시퀀스를 삽입하는데, 미학적이면서도 참신한 안무는 영화의 재미를 더할 뿐 아니라 미학적인 성과를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카달’의 경우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가스펠풍의 음악과 완전한 인도식 안무라기보다는 약간 현대 뮤지컬 영화의 안무를 사용하면서도 인도 특유의 색감을 화면에 풀어놓습니다.

 

 

 

 

 

 영화는 종교적인 테마와 복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쉽게 선한자와 악한자를 나누지 않습니다. 이러한 구도를 가진 대부분의 영화는 그런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종교적인 정당함과 선의 승리로 영화를 마무리하는데 이 영화가 그것을 부정한다기보다는 조금 더 다른 방식에서 인물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유달리 이 영화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마니 라트남 감독의 영화에서 종종 나타나는 현상으로 위험한 테러리스트지만 사랑하게 만든 사람(딜 세(Dil Se))의 이야기나 종교적 갈등(봄베이(Bombay)), 명암을 함께 가진 재벌(구루Guru)), 악당의 모습을 한 주인공(라아바난(Raavanan))과 같은 이야기를 통해 그의 선악이 혼재된 인간세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마니 라트남 감독에 따르면 자신이 다루는 캐릭터에 단지 선악에 대한 구분을 두기보다는 인간의 순수함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가 오래전부터 앙숙이 된 두 남자의 대결보다 죄악과 회계를 반복하는 토마스의 이야기를 더 중점으로 다루었던 것을 보면 이 영화에서 마니 라트남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대강 알 수 있죠.

 영화에서 구원을 다루는 방식도 독특합니다. 비록 영화는 종교와 종교인을 등장시키고 있지만 마니 라트남은 인간의 고난은 서로의 갈등에서 출발하고 따라서 그것을 풀어내는 것은 인간의 몫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영화에서 다소 극적인 부분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신앙과 결부시키지는 않는, 마치 종교는 등장하지만 종교색은 짙지 않은 독특한 영화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번 마니 라트남의 영화 역시 세계적인 뮤지션인 A.R. 라흐만이 함께하고 있는데 다른 영화에서의 라흐만의 음악은 그의 재능을 자랑하는 데만 쓰였다면 마니 라트남 영화에서의 라흐만의 음악은 매 영화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이번에는 ‘카달’의 종교적인 특색과 어우러져 장엄한 기독교 예식 음악을 비롯한 서구적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인도색을 잃지 않은 독특한 음색을 자아냅니다.

 

 인도영화만큼 음악의 힘이 영화에 크게 영향력을 미치는 영화도 흔치 않지만 특히 마니 라트남과 A.R. 라흐만의 조화가 그 어떤 인도영화에 쓰이는 음악의 효과보다 크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두 사람이 일반적으로 기대하고 상상하는 평범한 인도영화의 정형화된 틀을 거부하기 때문은 아닌가 합니다. 언제 또 이 과작의 시인의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다시 만나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Verdict 마니 라트남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그가 가장 잘 하는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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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2012년 3월 27일에 작성되어 2013년 3월 27일에 마이그레이션 되었습니다.

 

 

 

 

 



 Based on true story



 영화는 인도의 대기업인 Reliance사를 일으킨 디루바이 암바니(Dhirubhai Ambani)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마니 라트남측은 이 사실을 부인했지만 영화의 주인공 구루칸트 데사이가 구루바이라 불리는 것이나, 폴리에스터 산업으로 거상이 되었다는 점은 그와 닮은꼴이 많습니다.



 영화 ‘구루’의 미학적 성취

 


 

 영화 ‘구루’는 진중한 드라마를 추구하는 만큼 미장센에 있어 미학을 추구하기가 수월한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그런 성과를 일궈냅니다. 이 영화에 삽입된 ‘Mayaa Mayaa’나 ‘Barso Re’ 같은 맛살라 장면은 말할 것도 없고 아날로그적인 타이포그래피로 이루어진 오프닝 시퀀스는 A. R. 라흐만의 음악과 어우러져 상당히 인상적인 결과물을 낳았습니다.

 이런 마니 라트남 감독의 미학적 성취는 유독 ‘구루’에서만 드러난 것은 아니고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많이 나타납니다. 이를테면 1998년도 작품 ‘딜 세’의 경우 영화에 삽입되었던 달리는 기차 위의 군무로 유명한 뮤지컬 시퀀스 ‘Chaiyya Chaiyya’는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발리우드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장면입니다.

 인도 내에서도 다른 작가 감독들은 맛살라 장면이 정서를 해친다 하여 정통드라마로 승부수를 던지는 가운데 마니 라트남의 경우는 오히려 드라마가 강한 영화를 만듦에도 이런 맛살라 장면의 미학을 살리는 몇 안 되는 감독으로 유명합니다.



 ‘이 영화를 말한다’에서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

 


 영화 자막을 하면서 이렇게 영화에 동화되지도 못하고 인물과 함께 호흡할 수도 없었던 영화는 까리나 카푸르와 샤히드 카푸르가 출연했던 ‘Milenge Milenge’ 이후로 오랜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인물의 묘사나 평가에 대한 부분이 지나칠 정도로 영웅주의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마니 라트남 감독을 소개하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나 상식선에서 생각하기 쉽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고정된 시각이나 평가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런 점에서 어쩌면 ‘구루’는 자본주의라는 사회에서의 재벌 1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 대한 역발상, 이를테면 ‘이들도 그냥 돈 번 것은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인터미션 전까지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인도의 초기 자본주의 기득권 세력에 맞서 영리하게 저항했던 구루의 이야기가 펼쳐졌는데, 그도 성장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는 이로 변모하게 되지요.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는 순간 사람들은 나에게로 돌아선다. 물론 내 옳고 그름을 입증할 필요는 없다. 목표는 반대급부가 아닌 여론 획득이니까.” (‘땡큐 포 스모킹’ 인용)

 차라리 영화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의 주관이나 시각이 빠지고 인물의 삶을 덤덤하게 그려나갔다면 불만은 없었겠지만 한 쪽을 우월하게 만들기 위해 다른 한쪽을 깎아 내리는 방식을 사용함으로서 주인공 구루의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신문기자 샴 삭세나가 구루의 비리를 캐내기 위해 기사를 조작하는 일은 아무리 상대방의 비리가 팩트일지라도 벌써 팩트를 입증하기 위해 거짓을 사용했기 때문에 언론의 신뢰도에 입각해 팩트가 아닌 것이 되고 맙니다. 설령 나중에 그의 비리를 증명한다 해도 이미 신뢰도는 떨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구루가 진짜 비리를 저지른다 해도 구루를 더 믿게 되는 것이죠. 

 한 편, 영화 속의 구루는 실제로 어떤 범법행위에 가담했음을 보여주지 않고 비슷한 상황이 발생해도 자신의 잘못에서 벗어나있고 오히려 그런 행위를 질책함으로서 고전적인 강직한 인물로 그려져 정신적으로도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기도 하죠. 

 재벌의 비리나 불신이 가져온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의 재벌이라는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도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권력을 이용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후반부 법정에서는 어느 정도 그의 잘못을 시인함으로서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감독 마니 라트남


 한 때, 마니 라트남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었던 것은 사실 상업성을 기대하기 힘든 ‘라아반’과 ‘라아바난’ 프로젝트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영화 ‘구루’는 영화를 보는 내내 구루칸트 데사이라는 인물을 정서에서 계속 밀어내는 작용과 반작용의 영화였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인물의 영웅성의 후광 효과를 일으키기 위해 절정의 순간에 일어나는 함성과 박수는 히틀러 같은 독재자 군주들의 그것과 다를 바가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루의 주주총회에서 샴 삭세나 옆에서 저분께 손뼉 안치냐고 묻던 아주머니가 전 얼마나 철없어 보이던지요...)


 논리에 어긋나도 분명히 먹힌다

 

 


 영화의 마지막에 청문회 위원들은 구루에게 5분의 시간을 줍니다. 그동안 구루는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데, 언론과 대중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영리하게 말을 아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분석한 구루의 논리는 

 ‘돈을 벌 수 있다면 벌었겠죠. 허나 저만 좋자고 그런 겁니까? 제, 3백만 투자자들도 위한 겁니다.’ - 군중에의 호소 오류

 ‘돈 좀 아껴보자고, 큰 폴리에스터 더미를 머리에 이고 피도니(Pydhonie)에서 20미터를 걸어왔습니다’ - 연민에 의한 논증

 ‘당신들은 이 나라의 발전을 추문하고 있소! 또 어떤 추문으로 우릴 막을 셈이오? 말해보시오!’ - 힘에 의 논증


 논리적으로만 따진다면 구루의 발언은 위원회가 제시한 범법행위의 그 어떤 반박도 하고 있지 못합니다. 물론 그 부분은 구루의 변호사가 했겠지만 구루가 법정이 아니고 언론과 대중이 모인 공간에서 발언을 했다는 것은 나름의 철저히 계산된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 하고 싶습니다. 결론은 “너희는 약하고 병든 나를 심문하지만 사실 나 이런 사람이야!” 하는 것이죠. 대중들의 반응을 어느 정도 계산하고 한 행동이었고 위원회는 대중들을 구루의 편으로 만드는 실수를 저지름으로서 오히려 그를 부각시키고 맙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생각해봅니다. 만약 위원회에서 중간에 “논리에 어긋나니 객관적인 팩트를 가지고 발언하시오.” 라고 부탁했다고 가정했을 때 구루가 “나는 팩트는 모르오. 안한걸 나보고 어떻게 증명하라는 것이오. 주절주절~” 이랬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 봅니다. 어쩌면 그 순간 사람들은 냉철한 이성보다 하나의 드라마를 기다렸을지도 모르니까요.


 레퍼런스로 보면 좋을 영화

 저처럼 영화 ‘구루’가 시원치 않았거나 혹은 인물묘사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받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저는 두 편의 영화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마틴 스콜세즈 감독의 ‘에비에이터’입니다.

 

 


 두 영화는 닮은 요소가 많습니다. 두 영화는 모두 실존했던 한 부유했던 사람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로 한 사람의 열정과 시련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장시간동안 녹아있는 영화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에비에이터’에 더 점수를 주고 싶은데요, 그것은 영화의 주인공 하워드 휴즈를 하나의 부유한 사람이나 영웅적인 면모를 가진 사람으로 그리기 보다는 순수한 열정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로 그리면서 오히려 그 인물을 더 크게 그리는데 성공했다고 보기 때문이죠. 물론 윤리적인 논쟁도 피하고 말이죠.


 다른 하나는 데이빗 핀처 감독의 ‘소셜 네트워크’입니다.

 

 


 역시 ‘페이스북’을 창시한 마크 주커버그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요, 이 영화에서 ‘성공한 사람’은 존재하지만 인물 모두에게 거리두기와 비판적인 요소를 고루 녹아내면서 단지 ‘성공’이라는 것이 한 인간을 그리는 척도로 고정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구루'가 그랬듯 한 쪽을 부각시키기 위해 다른 한쪽을 깎아내리고 있는 모습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소셜 네트워크'가 너무 거리두기나 냉소철학, 리얼리즘에 입각한 차가운 영화는 아닙니다. 사실 어느정도의 '균형'과 '중도'에서 생각해보고 있는 나름 인간적인 영화죠.


 

 


 한국사 수업을 들을 때, 조선 후기 요호부민(좋은 집에 사는 부자)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에서 꼭 언급되는 사람이 허생이라는 사람입니다. 연암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에 등장하는 인물로, 현대적으로 따지면 당시 시장 경제의 헛점을 이용해 독과점으로 쉽게 돈을 버는 인물이었지만 지금에야 그런 모습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 역사적 의의로 따지면 과거 자본주의가 자리 잡지 않은 시대에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 = 능력 있고, 자본주의에 기여하는 훌륭한 사람’ 이라는 평가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어쩌면 인도에서 ‘구루’같은 영화가 비판의 대상으로 자리 잡지 않고 오히려 높게 평가되는 이유는 바로 인도에 자본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고 있지 않아서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사실 먼데서 찾을 것도 없습니다. 우리도 경제대통... 중략...)


 마지막 의문...

 

 


 이 영화에 대한 비판의 발제부터 결론까지 저를 쫓아다니는 의문인, 과연 영화 ‘구루’가 재벌신화를 미화한 영화에 그친 것인가 아니면 단지 사람들의 고정적인 인물 보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만들어진 영화인지에 대해서는 확답을 못 내리겠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 구루라는 인물이 미화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이상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충분히 거리를 두면서 볼 수 있었는데요, 제가 영상이나 드라마가 주는 최면효과 따위에 상당히 거리를 두고 영화를 보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서라는 개인적인 시각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굳이 개인적인 관점의 차이 때문이 아니더라도 몇몇 사건이나 인물 묘사에 있어서는 어떤 평가나 감정을 배제하려는 경향이 있어서는 아닌가 합니다.

 이를테면 영화 초반 구루가 폴리에스터 사업에 성공하고 동업자인 처남과의 균열이 발생했을 무렵 영화는 그의 성공을 아주 좋게 묘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구루라는 인물에 대한 비판을 생각할 무렵 영리하게 사랑 이야기로 전환하죠.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간샴의 자살소동이 있은 뒤 구루가 샴의 집을 찾아와 자신의 죄를 증명해보라고 합니다. 그 때, 샴은 충분히 구루의 비리를 증명할 수 있었는데 구루는 교묘히 샴과 미누의 결혼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하죠. (실제로 정치인들이 민감한 사항에 대한 질의를 받았을 때 화제를 갑자기 돌리면서 교묘하게 민감한 주제를 빠져나가곤 하죠)


 


 저는 프로파간다(정치선전)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구루’가 그런 류의 영화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구루’는 한 인물의 미화와 거리두기를 교묘히 조절하면서 대충 이야기만 던지고 관객들에게 그 평가를 돌리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저는 이 영화나 주인공 구루칸트 데사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내릴 순 없지만 마니 라트남의 드라마를 만드는 솜씨나, 예술적 감각, A. R. 라흐만의 음악과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인정하고 싶습니다.

 이 영화를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단순히 예쁜 맛살라 장면만 보고 쉽게 봐서는 안 될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Trivia

 * 영화에 삽입된 'Barso Re' 시퀀스는 2008년 Filmfare에서 안무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 아이템송 'Maiyya Maiyya'는 A.R.라흐만이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여행중에 한 남자가 '마야(maiyya)'라는 단어를 발음한 게 신기해서 였다고... 마야는 아라비아어로 물을 뜻하며 이 곡은 마르옘 톨라라는 레바논 출신의 가수를 초빙해 녹음했습니다. 아이템걸은 섹시스타이자 아이템 전문배우로 유명한 말라이카 쉐라왓입니다.


* 아이쉬와리아 라이와 아비쉑 밧찬은 영화 'Guru'가 개봉된 이틀 뒤인 2007년 1월 14일 약혼을 발표해 그 해 4월 20일에 결혼했다고 합니다.

* 영화 'Guru'는 캐나다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가진 첫 발리우드 영화.
 
* 기자인 샴 삭세나 역은 존 아브라함이 맡을 예정이었으나 스케줄상의 문제로 타밀 출신의 마드하반으로 변경
 
* 아이쉬와리아 라이는 영화 'Guru'에서 자전거 타는 연습을 하는 장면을 촬영중에 치마가 자전거 체인에 끼어 균형을 잃고 장애물을 받는 바람에 손과 발에 큰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아마 'Barso Re'에 삽입된 자전거타는 장면 같더군요.

 * 아비쉑-아이쉬와리아 라이 밧찬 부부가 함께한 영화들

Dhaai Akshar Prem Ke(2000)
Kuch Naa Kaho(2003)
움 라오 잔(2006)
둠 2(2006)
구루(2007)
가문의 법칙(Sarkar Raj, 2008)
라아반(2010) 
 - Bunti aur Babli(2005)에 아이쉬와리아 라이는 아이템걸로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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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글은 지난 10월 29일에 있었던 영화 ‘Mere Brother Ki Dulhan’상영과 다음날인 30일에 있었던 I본부의 ‘Delhi Belly’ 등에 관련된 talk 내용으로 실제 토크는 10월 30일 ‘Delhi Belly’ 상영직후에 있었습니다. 관련 인물들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이니셜로 처리했음을 양해 바랍니다.

 * 역시 Index 기능을 추가했고 혹시 끊었다 보실 분들이 계실 거란 생각에 top 기능을 주가했습니다. 언제든 top을 누르시면 index로 다시 올라갑니다.


목차



 ‘Zindagi Na Milegi Dobara’ 이후 C모님, T모님, M모님이 고정 멤버가 되어 인도영화에 대한 수다를 떨었습니다. 이틀 연속으로 (공교롭게도 임란 칸이 주연을 맡은) 발리우드 영화를 본 것도 있었고, 사실 영화가 바뀌기는 했지만 지난 10월 2일 상영을 ‘Delhi Belly’로 하려 했던 욕심 때문에 어떻게든 다시 모여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생각도 있었죠.

 사실 이번 토크는 ‘Delhi Belly’나 ‘Mere Brother Ki Dulhan’에 대해 딱히 할 이야기가 없었을 뿐더러 시즌 2를 마감하는 입장에서 인도영화에 대한 요즘 드는 생각과 이슈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자리로서의 모임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토크가 토픽별로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고 간간히 관련 이야기가 등장해서 그 이야기들을 종합해 봤고, 장소는 신촌 별다방(특정상표) 아트레온점, 연대 앞쪽에 있는 특정 인도음식점에서 진행했습니다. 맛난 커피를 대접해주신 C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Delhi Belly’는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데 이견이 없었습니다. M님은 좀 늦으셨지만 미처 놓친 앞부분을 보고 싶어 하실 정도였고 C님은 나름 호평을 하셨습니다. ‘흠 잡을 데 없다’는 평가를 내리셨던 것을 보면 상당히 만족하셨던 것 같습니다. 

 사실 상영장 분위기도 전반적으로 좋았고 웃으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코믹한 요소들이 많았는데 그 코드도 잘 잡은 영화였지요.

 개인적으로는 잘 만든 영화라는 데 이의는 없지만 개인적으론 범죄 코미디의 차진 맛이 잘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C님께서 하신 말씀이 나름 일리가 있는 게 개인적으로 한글로씨의 자막이 나쁘지는 않았다고 보지만 영화가 정통인도영화가 아닌 약간 할리우드 스타일의 영화였던 만큼 장르영화에 더 익숙한 사람이 자막을 만드는 게 더 좋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시각은 자막의 문제라기보다는 상황 자체의 몰입이 강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으니까요. 인물들이 ‘의도적인 범죄’보다는 ‘무고한 연루’에 의한 피해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가이 리치의 영화나  비샬 바드와즈의 ‘카미니’같은 영화와 비교할 수도 있겠지만 ‘카미니’의 캐릭터에 대한 개성이나 애착, 그리고 이야기의 오밀조밀함 까지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점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이죠.


 T님께서 이 영화의 성공 여부에 대해 여쭤 보셨는데요. 7월 1일 개봉한 이 영화는 25 Crores의 제작비로 89 Crores의 수익을 거두었습니다. 이는 물론 전 세계적인 수익이고 인도 뿐 아니고 북미지역 등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죠. 전날에 봤던 ‘Mere Brother Ki Dulhan’은 인도에서만 60 Crores에 가까운 수익을 거두었습니다.

 영화 ‘Delhi Belly’가 국내 개봉했을 때 먹힐 것인가에 대한 부분에선 대체로 긍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짧은 러닝타임, 누구나 재미를 느낄 스토리라인이 강점이 되겠지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어 성공한 인도영화들을 살펴보면 ‘블랙’, ‘내 이름은 칸’, ‘세 얼간이’를 꼽을 수 있겠는데 이 영화들이 사실 인도영화기 때문에 또는 인도의 유명한 배우가 나오기 때문에 성공했다기 보다는 누구나 봐도 공감할 만한 드라마가 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봅니다. 사실 우리 같은 인도영화 마니아들이나 샤룩이나 아미르의 스타성에 대해 주목하게 되지만 인도영화에 덜 노출이 된 관객들에게는 배우의 스타성이나 인도영화만이 가진 아우라가 잘 먹혀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결국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 인도영화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그런 ‘공감대’류의 영화가 먹힌다는 생각에는 저 역시 동의하는 바이죠.



▲TOP




 영화 ‘Delhi Belly’를 이야기하면서 아미르 칸을 빼 놓을 수 없겠죠. 배우이자 지금은 성공한 제작자로 명성을 얻은 아미르 칸은 ‘세 얼간이’ 등으로 유명해진 소위 발리우드를 이끄는 삼대 칸 중 한명이죠. 요즘의 그는 트렌드에 이끌려 다니기 보다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흥행을 놓치지 않는 노련한 제작자로서의 활약을 많이 보여주고 있죠.

 실제로 그가 세운 aamir khan productions에서 제작된 영화중엔 상업적으로 실패한 영화가 단 한 편도 없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상업적인 성공만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영화의 내적으로도 탄탄한 영화들을 많이 선보였었죠.

 그의 영화들은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영화들이 많았다고 봅니다. 하지만 톱스타의 자리에서 그런 영화에 시도를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Rang De Basanti’같은 영화는 애국주의를 표방하는 것 같지만 사실 정치 비판영화에 가까웠고, 본격적인 남인도 영화의 진격을 알린 ‘가지니’, 물론 ‘세 얼간이’도 말할 나위 없는 영화였지요.

 그런 점에서 작년 ‘Peepli Live’나 ‘Delhi Belly’ 같은 영화들은 신인 감독, 덜 유명한 배우, 정통 맛살라 영화에서 약간 혹은 많이 비껴나간 이야기들을 선택해 사람들에게 선보인다는 것은 상당히 모험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위에 언급한 두 영화는 A등급(인도 성인용 등급; ‘Peepli Live’같은 경우는 다소 부당하다는 이야기가 있음에도 불구)을 받았음에도 비평과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이처럼 ‘상업적인 기획 영화’가 아닌 웰메이드 영화도 얼마든지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그를 지지하지 아니하지 아니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아미르의 그런 노력은 계속 인도영화에 대해 어떤 계속적인 기대를 걸 수 있는 희망을 주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M님께서는 아미르 칸의 영화에 대해 약간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계셨는데, 대표적인 예로 ‘지상의 별들처럼’이나 ‘세 얼간이’의 경우에 아미르가 맡은 캐릭터는 소위 혼자 똑똑한 사람의 모습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하면서 그의 영화의 어떤 계몽주의적 분위기에 대한 거부감을 표명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미르 칸이라는 배우와 그의 영화를 보면, 영화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인도영화계에서 소위 난 사람이라는 평가를 할 만 합니다. 그의 2000년대 이후 작품 세계는 대체적으로 사회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죠. 실제로도 사회적인 관심을 환기하는 약간은 참여적인 활동을 많이 했지요.

 영화 속에 보여지는 그의 이미지는 인도라는 다소 낙후된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메시아적 존재의 모습으로 포장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영화에는 그런 엘리티즘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를 팔아먹는데 일조했던 개화기적 지식인들의 면면과 아미르 칸의 영화나 행동을 보면 입으로만 떠드는 요즘말로 입진보적인 모습을 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인도영화에서 느끼고 싶어 하는 부족하더라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관객에게 아미르 칸 같은 배우의 존재는 다소 부담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토크를 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인도영화 팬들과 감성을 교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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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불가피하게 개봉 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원래 러닝타임인 177분에서 144분으로 33분의 러닝타임이 단축되었습니다.

 이런 언급이 다소 논란이 될 수 있지만 이상하게 영화 ‘로봇’의 편집 본에 대해서는 크게 불만을 느낄 수 없었는데요. 제가 ‘세 얼간이’ 때 열렬하게 항의를 했던 것에 비하면 이런 행위는 일종의 변절(?)일까요? 그렇다기 보다 두 영화를 비교해 보면 좋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 얼간이’의 경우 소위 코리안 에디션이라 불리는 버전은 영화의 내용 자체를 축소했기 때문에 불만을 가졌던 것입니다. 또한 인터내셔널 버전 언급을 했던 수입/배급사의 깔끔하지 못한 태도역시 불만이었지요. 또한 ‘세 얼간이’는 모든 시퀀스들이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위 ‘버릴 게 없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를 단순히 러닝타임 축소를 위해 편집을 했다는 사실이 기분이 좋지 못했던 것이죠.

 한 편 ‘로봇’의 경우는 영화를 이미 두 번이나 스크린으로 봤지만 딱히 어떤 시퀀스가 날아갔다는 느낌을 크게 못 받았습니다. 어떤 분께서 언급하셨지만 영화 ‘로봇’에는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아마 편집에서도 그런 것들이 반영되었던 것 같습니다.


 인도영화의 긴 러닝타임은 제 포스팅인 ‘인도영화에 대해 알고 싶은 10가지’에도 조사결과를 보고했지만 맛살라 시퀀스가 주는 양감도 있는데 맛살라 시퀀스를 뺀다고 해도 드라마만으로도 족히 2시간을 훌쩍 넘기는 영화들이 있죠. C님과 M님께서 언급하신 카란 조하르의 영화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그의 영화는 데뷔작이었던 ‘꾸츠 꾸츠 호타 헤’를 비롯해 모든 영화들이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는데 그나마 ‘내 이름은 칸’의 경우는 160분으로 많이 줄였고 인터내셔널 버전으로 또 126분으로 단축시켰으니까요. 어떤 관객들은 카란의 영화를 비롯한 다른 인도영화를 보면서 양적인 규모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일부 관객들에게는 그 긴 러닝타임이 루즈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C님의 의견은 영화가 길어도 밀도만 있다면 러닝타임은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무리가 없는 요소라고 언급하시며 이를 증명하는 작품으로 야쉬 초프라의 ‘비르-자라’를, M님은 카란 조하르의 ‘까비 알비다 나 께흐나’를 언급하셨는데 개인적으로는 두 작품 모두 보지 못했던 탓에 어떤 말씀을 드리기는 모하나 (제 경우는 아쉬토슈 고와리케의 ‘라간’같은 영화가 그런 작품이었던 것 같고요) 최근의 인도영화들이 긴 러닝타임 만큼의 밀도를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M님이 말씀하신 ‘느긋한 그들의 인생관’을 느끼기엔 우리가 너무 쫓겨 다니면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습니다.


 영화 ‘로봇’에 대해 이야기 하는 만큼 배우로서의 아이쉬와리아 라이(이하 애쉬)와 그녀의 영화 속 역할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녀가 영화 속에서 보여주었던 모습도 그랬지만 실제 그녀의 이미지가 상당히 강한 까닭에 아무나 그녀의 역할을 조율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 코미디 프로의 ‘나 못 해!’를 외치는 여배우처럼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C님은 ‘둠 2’ 같은 영화에 불만을 가졌는데 M님이 ‘둠 2’에서의 애쉬의 이미지를 구체화 한 내용에 따르면 역할이 가진 이미지를 잘 조율하지 못했던 까닭에 약점 잡힌 도둑과 동료를 속여야 하는 서브 캐릭터의 역할을 치고 올라오는 바람에 캐릭터의 균형이 무너졌다고 평가를 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재밌게 봤고 그렇게 독보적인 위치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듣고 보니 나름 일리 있는 평가였다는 생각도 듭니다) 심지어는 ‘가증스럽다’는 평가까지...

 마니 라트남의 ‘라아반’이나 (이 역할에 대한 평가도 다소 갈렸지만) 고와리케의 ‘조다 악바르’ 같은 영화에서의 애쉬가 주는 캐릭터의 이미지는 다소 안정적이었다고 평가 되는데요. 어떻게 보면 기가 오른 스타를 잘 조율하지 못하는 역량이 딸린 감독들의 끌려 다니는 연출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래서 인도영화도 연출이 중요해요. 스타의 위치가 너무 세다 보니 영화가 배우에 끌려 다니는 오점이 발생하곤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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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즌 1의 마지막에도 언급했고 자주 읊조리는 대사기도 하지만 저는 현재의 인도영화에서 위기를 느낀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내 이름은 칸’이나 ‘세 얼간이’에 대한 세계적인 성공에 비추어 볼 때 제가 하는 걱정은 기우(奇偶)에 가깝다고 보시는 분도 계시지만 위에 언급한 두 영화들 역시 영화의 내적 요소가 탄탄한 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스타 시스템에 크게 기댄 영화라는 점은 다른 발리우드 영화들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샤룩 칸이나 아미르 칸이 대단한 배우기는 하지만 이 배우들이 관객들을 극장으로 이끈 것은 아니죠. 인도영화의 저변이 낮던 우리나라 영화에 이 배우들의 팬덤을 이용했을 리는 만무하니까요.


 인도영화가 스타시스템에 기댄 영화들을 양산해 온 것에 대한 최대의 문제는 퀄리티보다는 스타성에 기댄 기획영화들을 양산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일부 인도영화 팬들은 영화를 보는 일차적인 목적이 스타였던 까닭에 자칫 깊이 있는 영화 감상은 못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떤 분은 꼭 영화 감상에 깊이가 있어야 하냐고 묻지만 저는 있어야 한다고 보고 인도영화의 저변이 낮았던 이유 중 하나가 인도영화의 존재의 이유를 찾아주는 노력을 소홀히 한 것 때문이고 보니까요. 단지 다양성이나 상대적 가치로서만 정당화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팬덤이라는 것은 한 편으로는 양날의 검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우가 가진 능력이 인도영화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만든 것은 인정해야 하니까요.

 대표적인 배우로는 단연 샤룩 칸을 들 수 있죠. 그의 영화는 대부분의 나라에 수출이 되었고 많은 나라의 팬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특히 독일의 경우는 인도에서 출시되지 않은 작품들까지 출시되었으니 그 위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인도영화의 스타 시스템은 인도영화의 힘을 불어넣어 준 동시에 편향성을 안겨주었다고 결론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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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인도 및 발리우드 영화 개봉권역에 동시 개봉된 영화 ‘Ra.One’에 대한 주제로도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Ra.One’은 영화 개봉 전후에 많은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지요.

 영화가 개봉된 뒤에 ‘Ra.One’은 평론가들과 대중들에게 극단적인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끌어냈습니다. 종합해 보면 영화의 특수효과나 배우 샤룩 칸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분위기였지만 영화의 스토리나 연출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이 영화에 대해 어떻게 접근 하냐에 따라서 영화의 호불호는 심히 갈릴 것으로 봅니다.

 샤룩의 팬인 M님의 경우는 샤룩의 팬이기 때문에 당연히 영화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되지만 팬이 아닌 경우에는 배우의 스타성에 대한 기대감을 일단 접고 영화를 보기 때문에 이 영화가 영화적으로 얼마나 관객의 기대를 충족 시키냐가 영화의 평가를 좌우할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오락영화도 기본적으로 영화적인 만듦새가 갖춰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었는데요. 제가 비교했던 영화는 ‘트랜스포머’와 ‘다크나이트’ 였는데, 같은 많은 비용을 들인 영화지만 전자는 흥행은 했지만 비난을 피할 수 없었고, 후자는 대중과 비평가들의 지지를 받고 흥행에도 성공했기 때문이죠.

 ‘Ra.One’은 제 사견으로는 속된 말로 망할 영화는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그래도 내심 영화를 만드는 이들에게나 인도인들 혹은 샤룩 칸의 팬들에게 ‘Ra.One’이 무엇을 대표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는 영화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비용과 좋은 배우를 쓰는 프로젝트라면 좋은 각본에 검증된 감독을 기용해 웰메이드 스타일의 오락영화를 만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어쩌면 영화 ‘Ra.One’은 아직 인도영화가 연출이나 각본 같은 영화적인 요소보다는 스타 시스템과 외형에 기댄 영화들을 만들고 있다는 아쉬운 증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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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옴 샨티 옴’은 최근 특정 커뮤니티에서 디피카 파두콘에 대한 칭송 내지 찬양을 하는 분들이 나타남에 따라 더 크게 부각된 영화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즐거운 영화의 재수입 소식도 들었고요. 이 영화로 인도영화의 걸음마를 시작하신 분도 계시고 여성 관객은 샤룩 칸, 남성 관객들은 디피카 파두콘 때문에 인도영화에 빠져드신 분들도 계십니다.

 물론 저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인도영화 다섯 편 안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올 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상영되었을 때는 두 번이나 감상을 했죠.

 그런데 ‘옴 샨티 옴’ 때문에 인도영화에 빠져드는 분들은 많이 만났는데 과연 개봉 때도 이 영화는 먹힐 영화인가가 궁금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정말 궁금했는데 확답을 듣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도 궁금해서 인도인인 음식점 사장님한테 영화 ‘옴 샨티 옴’의 장점을 물으니 샤룩과 디피카 말고 다른 말씀은 없으시더군요. 과연 배우가 영화에서 발산하는 아우라 이외에 관객들에게 어떤 것을 어필할 수 있을까 말이죠.

 이 영화는 상업영화긴 하지만 나름 노련한 감각을 지닌 영화였지만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영화의 맛살라 시퀀스들이 가진 그 나름의 의미나 장치 예술적인 부분을 인도영화를 조금 더 아는 사람들이 자신 있게 읽어줄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지요.


 어찌 보면 영화 ‘옴 샨티 옴’을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들도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유치하고 춤과 노래가 나오는 영화 정도로요. 그렇다고 완벽한 오락을 전달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C님은 영화가 루즈해지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하셨는데 저 같은 경우는 처음으로 감상했을 때 후반부에 약간 그런 느낌을 받았고, 어떤 분은 초반 70년대 재현이 촌스럽다고 하신 분도 계셨지요.

 하지만 영화 자체가 가진 발리우드 맛살라 영화 자체에 대한 애정과 인도식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자부심으로 자신감 있게 영화를 꾸려나가며 그들의 장점을 최대한 쏟아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Dard-e-Disco’의 샤룩의 식스팩 때문에 이 영화가 최고라고 말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그 부분이 옵션이 되긴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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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다른 지인 분을 만났지만 인도영화에서 논의되는 부분이 고작 배우의 아우라 뿐이라 팬클럽에 들어온 느낌이라고 회의감이 든다고 하시던 분을 만났습니다. 단순히 인도영화 마니아라는 이미지가 특정 배우나 맛살라 시퀀스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바보라는 이미지가 박혀 있다면 저로서는 무지 화가 날 일입니다.

 과거 저는 공포영화 동호회에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공포영화들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요. 그런데 누군가가 공포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비인간적인 모습들을 보기 좋아하는 변태라고 이야기한다면 기분이 좋을 리 없죠. 이를테면 ‘데드 얼라이브’라는 영화가 2차 대전 이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반영을 하고 있는 영화라는 설정이 왜 필요했는지에 대한 언급을 소위 마니아 집단에 있던 몇몇 인물들이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공포영화는 그저 필요한 이유를 느끼지 못할 사디즘의 영화로 사람들에게 인지 되었겠죠.

 인도영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인도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또한 의미 있게 볼 어떤 ‘다리’역할을 하는 무엇인가 또는 누군가가 지금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평론가들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인도영화를 부각시켜줄 것이라 보진 않습니다. 그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일단 우리가 주로 언급하는 인도영화는 상업영화고 평론가들은 상업적인 관점보다는 ‘작품’이 중시된 영화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 우선일 것이니까요.

 어떤 분께서 ‘인도영화를 전파시키는 법’이라는 내용을 언급하신 적이 있는데, 내용인즉슨 누군가 ‘인도영화가 왜 좋아요?’라고 물으면 맛살라 동영상을 쓱 보여주면 상대방이 ‘아!’ 하고 넘어온다는 것이었는데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래도 안 넘어오면 어쩌죠?’ 그러니 그 분은 ‘그런 사람들은 일단 제껴. 우리 편을 많이 만들어야지.’

 많은 인도영화 마니아들이 인도영화에 대한 애정을 정통 맛살라 영화에서 출발했다는 점, 그리고 요즘같이 빠르게 무엇인가를 진행시켜야 하는 시대에 그런 보여주기식 요소가 먹힐 수도 있겠지만 어떤 깊이가 주는 가치는 잃어버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분께서는 ‘인도영화는 즐겁고 나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보는 것이니 너무 분석적으로 가지 말자’는 말씀을 하시지만 영화라는 것이 너무 기분풀이식의 일종의 도파민 역할만 한다면 그것은 개인적인 가치에서 그치지 영화적인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뭐 그렇게 받아들이시는 분들의 욕구를 해칠 생각은 없지만 한 편으로 저는 인도영화도 다른 영화와 똑같이 봐주는 저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2008년 ‘블랙’을 수입했던 회사는 마케팅에서 ‘인도’라는 단어를 아예 빼버렸습니다. 인도영화 팬으로서는 그런 모습이 ‘인도’라는 모습을 부끄러워하는 비겁한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썩 좋지는 않더군요. 하지만 지금 ‘내 이름은 칸’과 ‘세 얼간이’의 성공과 함께 본격적으로 마케팅에도 ‘인도’라는 단어가 들어가고 맛살라 장면도 개봉 영화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정식으로 ‘인도영화’의 정체성이 드러나게 된 것이죠.

 과연 이렇게 인도영화가 부각되는 시점에 순수하게 인도영화라는 소재만으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이 토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시즌 2를 마치면서 3회로 이 이야기는 잠시 끝을 맺지만 다음에는 더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인도영화도 이렇게 볼 수 있구나 하는 단순한 흥미 이상의 무엇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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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님이 언급하신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Melvilasom’은 보고 싶긴 합니다. 개인적으로 인도영화를 좋아해도 그것만 특별하고 애지중지해서 보는 게 아니고 오히려 다른 영화들과 같은 시각에서 보기 때문에 탄탄하면 된다는 생각에 더 궁금해지는 영화기는 합니다.




 * 이번 토크의 명대사는 ‘분명히 봤는데 본 기억이 안 나는 영화는 좋은 영화가 아니다.’ 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이 연사는 그럼에도 ‘Wake Up Sid!’는 좋은 영화라고 외칩니다. (아니면 말구요 ㅋㅋㅋ)

 * 시즌 1 끝에 한 번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라고 언급했던 내용이 있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을 이용한 성우의 세계 + 주말의 명화 프로젝트 + 인도영화 이원 상영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검증 결과 흥미도가 크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사실 저는 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았는데 다른 분들이 보시기엔 상당히 별로였던 듯... 아쉽지만 쓸 만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도록 하죠. 그래도 TV 야외광장 이원상영 프로젝트 이것도 좀 부족한가요?

 * 'Delhi Belly'에서 ‘놀기만 하고 일만 하면 바보가 된다.’는 대사는 C모님과 저만 키득거렸네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샤이닝’에 나온 대사였거든요.



 * 'Delhi Belly'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C모님께서 언급하신 덴마크 출신의 배우 킴 보드니아. 개인적으로는 처음 보는 배우라서 이미지가 약간 유도 키에르와 비슷해 보였다는...
 물론 'Delhi Belly'에서 하는 게 딱히 없었지요. 저는 못 봤지만 최근 수잔 비에르의 ‘인 어 베터 월드’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 배우를 모르는 관객들에게 그의 존재는 마치... ‘세 얼간이’에 아미르 칸더러 누가 유명하다고 해주기 전까진 모르는 그런 느낌? 그 느낌을 역으로 받으니 우리 인도영화 팬들이 열광하는 배우들을 일반 관객들이 볼 때의 그 느낌을 조금은 알 것 같네요.

 * 토요일 상영작이었던 영화 ‘Mere Brother Ki Dulhan’에 대한이야기도 별로 없었네요. 그저 그런 맛살라 영화며, 주인공들이 너무 어려움 없이 난관을 극복한다. 그 정도? 개인적으로는 약간은 마초적인 남자주인공들(살만 칸, 악쉐이 쿠마르)의 서브캐릭터 정도였던 카트리나 케이프의 외적 성장과 영화 캐릭터의 동반 성장을 언급하고 싶었지만 분위기는 그냥 카트리나 케이프 예쁘다 정도... 아... 예...

 * 역시 T님은 말이 많은 분이 아닌 까닭에 멘트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말하는 것 보다는 듣는 걸 더 좋아하시는 분이셔서일수도... 하지만 언젠가 T님을 위한 스페셜 시간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 그런 쌩각을 가지고 있쓰민다...

 * 엔돌핀으로 유명한 이상구 박사의 등장은 1989년이었네요. 그 때, 나 태어났나? 저는 티아라와 같은 세대 ㅋㅋㅋ

 * 영화 ‘Ra.One’을 언급하면서 내년에 ‘Yutham Sei’를 만든 신진 작가주의 감독 Myshkin이 라이징 스타 Jeeva를 기용해 슈퍼 히어로 영화를 만든다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인도에도 이처럼 실력을 인정받은 감독들이 많이 등장해 좋은 프로젝트를 맡았으면 좋겠습니다. ‘세 얼간이’의 성공을 보면 왜 스타 못지않게 감독의 위치가 중요한지 인도영화 산업계가 눈을 떴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세 차례의 토크에 모두 참여해 주신 C모님, M모님, T모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시고, 이 토크 중계를 보신 인도영화에 관심과 애정이 있는 다른 분들도 사석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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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즈.배.리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인도영화는 그저 영화제에서나 볼 수 있는 변방의 영화였습니다. 그나마 해당 영화제의 프로그래머가 영화를 픽업해 주지 않으면 그 기회조차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죠.

 이제는 그나마 영화제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양한 국가의 영화에 그 장을 연다는 영화제 자체의 취지도 있고 한 편으로는 인도영화가 나름 영화제에서 소위 ‘팔리는 영화’로 인식되어 있다는 점도 있지요.


 특히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영화의 메카로 자리 잡고자 했던 까닭에 오래 전부터 인도영화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소위 인도영화 팬들이 찾는 발리우드 영화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인도 내의 다양한 언어권 영화들을 대상으로 상업영화와 작가 감독의 비율을 어느 정도 맞춰가면서 영화를 소개해왔습니다.

 그런데 올 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인도영화들은 영화제의 잘못인지 아니면 필름을 보내 온 인도내의 회사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 우메쉬 쿨카르니 감독의 ‘신을 본 남자’의 상영 취소라든가(심지어 김지석 프로그래머께서 트위터 등을 통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까닭에 그 아쉬움은 더합니다) 산제이 릴라 반살리의 내한 취소 같은 경우가 아쉬웠다고 이미 일전에 글을 남겼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또 다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도영화쪽 지인들의 제보에 따르면 영화 ‘신이 보내준 딸(Deiva Thirumagal)’과 ‘바스코 다 가마(Urumi)’가 편집된 버전이 상영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두 영화 모두 160분 정도의 러닝타임을 하고 있는데 실제 부산 국제영화제 상영당시 ‘신이 보내준 딸’은 145분 정도, ‘바스코 다 가마’는 130분 정도의 러닝타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요. 그런데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참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두 영화는 우리나라에 개봉할 영화는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는 봤지만 개봉할 경우 이 영화들이 수익성은 불투명하다고 보거든요. 영화제가 이 영화의 반응을 통해 우리나라에 해당영화를 개봉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 같은 건 없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런 배려가 있다고 하기도 우습구요)

 그런데 사실 영화제 영화는 영화제가 끝나고 영화의 세일즈를 목표로 하고 상영되는 것은 아니지요. 물론 부산 영화제에는 마켓이 있고 일부 영화는 마켓을 위한 스크리닝까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행사일 뿐 실제 픽업되는 영화들은 그 영화 자체로 전문가나 관객들의 반응, 평가 등을 위해 상영이 되는 것이죠. 그것이 페스티벌로서의 일차적인 목적이니까요. 그런데 그 나라에서 상영되던 온전한 버전을 보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모두 ‘영화제’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관객들 대부분이 인도영화는 길다는 사실도 용인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신이 보내준 딸’은 필름 상태까지 좋지 않았죠)

 영화제 측은 해당 영화에 대한 정보를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이긴 하지만 영화제 팀에 소속된 분들이 모두 본인들이 픽업하는 영화들의 정보를 바삭하게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대개 어느 영화제를 막론하고 영화제 측에서 관심을 두는 부분은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유명한 어떤 영화가 어떤 판본이 있다더라, 자국에는 필름이 유실되었으나 다른 나라에는 있다더라 뭐 이런 것들이죠. 허나 글쎄요... 아직 인도영화는 그 정도의 노력을 들일만 한 세계의 영화는 아니었나 봅니다.




 이런 안타까운 소식을 들으니 현지에서 개봉 된 뒤 1년이나 지나 부산국제영화제의 이미지 치고는 신선도가 다소 떨어지는 ‘청원(Guzaarish)’ 같은 영화를 상영한 게 차라리 나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나름' 있지만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생각해 봅니다. 바로 작년의 경우를 말이죠. 부산국제영화제측은 2010년 영화 ‘라아반’과 ‘라아바난’을 갈라프레젠테이션으로 올리고 마니 라트남 감독, 배우 아이쉬와리아 라이, 아비쉑 밧찬, 비크람을 초청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가 상영되었던 베니스 영화제를 포함해 어느 나라에도 이 네 명의 게스트를 모두 초청하거나 이 영화의 두 가지 버전을 모두 상영했던 적이 없습니다. 이런 사례가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올 해는 굉장히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제는 그 순간을 놓치는 것이 아깝기 때문에 영화팬들이 발품을 팔아 영화를 보고 축제를 즐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올 해 소개되었던 작가주의 영화나 유명 감독의 영화에 비하면 크게 주목을 끌지 못할 작품들이겠지만 이제는 영화제에서조차 온전한 필름을 보지 못하면 온전한 인도영화는 정말 어디서 감상해야 하는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 확인한 내용으로는 '신이 보내준 딸'은 극중 주인공 크리슈나가 딸에게 신발을 사주는 장면이 편집되었다고 하더군요. '바스코 다 가마'의 경우 타부라는 타밀-발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유명 배우의 카메오 장면을 비롯해 다수의 장면이 필름에서 사라졌다고 하구요. 
 (확인한 바로는 뭄바이 필름 페스티벌에 상영된 '바스코 다 가마'의 판본은 155분입니다. 25분 어디갔나요?)

 * 영화제가 다 끝난 마당에 이런 글을 써서 뭐하겠습니까만, 또한 부산국제영화제 측에서 제 글을 보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부산국제영화제 하면 성역 아닌가요? 가뜩이나 국내에 개봉도 잘 안되고 개봉되도 편집의 마수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도영화... 이제는 영화제도 못 믿는 건가요?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프로그램팀에 전화해서 입장을 들어보고도 싶지만 그냥 소심하게 글로만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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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라.즈.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