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현존하는 인도영화 감독 중 어떤 사람이 거장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모두 입을 모아 ‘데브다스’와 ‘블랙’을 만든 산제이 릴라 반살리나 ‘라간’, ‘조다 악바르’를 만든 아쉬토수 고와리케 정도를 꼽으실 겁니다. 그 모든 감독들의 노고와 작품은 인정받아 마땅하지만 이 감독을 빼놓으면 섭섭합니다. 바로 마니 라트남입니다.
마니 라트남은 타밀 출신의 거장으로 현재 남인도에서 가장 큰 존경을 받는 영화감독입니다. 영화 스토리나 전개, 구성 등이 독창적이며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을 쓰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가끔 정치적인 주제를 영화로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사랑 이야기를 담아내는 감독이기도 합니다.
마니 라트남은 1956년 타밀나두의 마드라스에서 태어난 마니 라트남 감독의 본명은 Gopalaratnam Subramaniam으로 아버지는 영화 제작자인 Gopal Ratnam. 처음에 그는 아버지 배급사를 운영하기 위해 뭄바이에 있는 학교에서 경영을 배우지만 연출에 관심을 보이고 1983년 영화계에 막 발을 들여놓은 아닐 까푸르를 기용해 칸나다(Kannada)에서 ‘Pallavi Anu Pallavi’를 만듭니다. 젊은 남자와 나이든 여인과의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큰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그 이후 고향인 타밀에서 만든 몇 편의 영화도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다 1986년, 한 신혼부부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Mouna Ragam’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주목받게 됩니다.
마니 라트남이 영화 일을 하던 때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전문 기관에서 교육을 받아 볼 생각은 없냐는 말을 듣게 되는데 마니는 단호히 거절합니다. 하지만 그의 감각은 옳았고 내놓는 영화마다 화제를 몰고 다니고 작품성도 인정을 받습니다. 그의 감독으로서의 영예는 87년 빛을 발하게 됩니다.
1987년 마니 라트남이 만든 ‘Nayagan’은 마리오 푸조의 소설이자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표작 ‘대부’에 영향을 받아 만든 영화로 한 소년이 자신의 아버지가 냉혈한인 한 경찰관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뒤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범죄에 뛰어들어 결국 조직을 이끄는 마피아가 된다는 이야기로 주인공인 Velu Nayakan(타밀어로는 Nayagan이라 발음되는 것으로 추정)은 타밀에서 연기력과 스타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배우 카말 하산(Kamal Hassan)이 맡고 있고 영화는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National Film Awards에서 세 개 부문을 수상했고 인도에선 이 영화를 오스카상 외국어상에 올렸지만 최종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훗날 미국의 TIMES지가 선정한 최고의 영화 100선에 오릅니다. 동시대에 만들어 진 마틴 스콜세즈의 ‘성난 황소’와 같은 영화와 말이죠. 하지만 인도에서 인정받고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DVD자체는 구하기 힘든 현실을 보면 인도 영화계가 산업 발전의 이면에 정작 돌아봐야 할 부분에는 소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잘하고 있는 겁니다)
영화상을 휩쓰는 감독, 그리고 A. R. 라흐만
작가주의 감독인 마니 라트남의 영화는 나올 때 마다 화제를 불러 모으고 영화상마다 후보에 오르는데요. 타밀의 National Film Award, 남부 Filmfare Award를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그 중 가장 눈여겨 볼 작품은 ‘Roja’라는 작품입니다. 일명 ‘애국적인 사랑이야기’라는 이색적인 모습을 띤 이 작품은 카슈미르 테러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잠깐 소개해 드리면 로자는 주인공의 이름으로 남인도출신의 여인입니다. 자신의 언니가 멋진 남자를 만나 시집가기만을 바라는 여인이지만 자신에게 나타난 멋진 남자 리쉬는 로자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둘은 결혼해 마을을 떠나 도시로 집을 옮겨 정착하죠. 여기까지는 평범한 사랑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이 시작되는 순간 마니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정부에서 일하는 리쉬는 카슈미르에서 자신의 업무를 진행하던 도중 카슈미르의 독립을 원하는 지하드들에게 붙잡히고 로자는 리쉬를 찾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펼친다는 이야기로 영화는 타밀어로 제작되었지만 힌디로도 더빙되어 북인도 지역에서도 개봉되었고 인도 전역에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또한 영화는 National Film Award에서 최우수상을, 남부 Filmfare에서 최우수상과 감독상을, 타밀나두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고 모스크바 영화제에 초청되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마니 라트남은 인도 전역에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됩니다.
이 때 또 한명의 스타가 등장했으니 바로 A. R. 라흐만입니다. 영국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온 라흐만을 기용한 사람은 바로 마니 라트남으로 그의 명성이 남인도지역에선 꽤 높았음에도 그는 신인인 라흐만을 선택했고 Roja의 스코어는 비평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습니다.
남인도 Filmfare 시상식에서 데뷔무대였던‘Roja’로 음악상을 수상하자 금세 그는 타밀 영화계의 스타로 등극합니다. 나중에 소개하겠지만 그는 인도에서 인정받는 거장이나 스타감독과 주로 작업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높여나갑니다. 물론 자신에게 기회를 준 마니 라트남과는 ‘Roja’이후 쭉 음악감독으로 활약해 좋은 성과를 거둡니다.
1993년은 텔루구에서 영화를 만들던 람 고팔 바르마와 친분을 쌓고 그의 영화 ‘Ghayam’의 시나리오를 써주게 되는데 이 영화는 텔루구 지역에서 호평을 얻습니다. 그리고 둘은 로버트 레드포드와 폴 뉴먼이 나왔던 아메리칸 시네마의 대표작인 ‘내일을 향해 쏴라’를 리메이크한 ‘Thiruda Thiruda’를 만들지만 비평과 흥행에서 좋은 평가를 얻지는 못합니다.
절치부심한 마니 라트남은 1995년 ‘Bombay’를 만듭니다. 훗날 마니 라트남의 ‘딜 세’에도 출연한 마니샤 코이랄라가 출연한 이 영화는 힌두교 신도와 이슬람 신도의 결혼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소재를 영화화 하여 일부 반 이슬람권에선 적지 않은 논란을 가져왔으나 비평과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고 National Film Award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고 Filmfare에선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오릅니다.
2 년 뒤 타밀의 연기파배우 Prakash Raj가 출연한 ‘Iruvar’역시 비평적인 성공을 거두고 마니 라트남에게 볼리우드행 티켓이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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