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에게 생명은 주어졌으나 일생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살라고 한다면 당신은 그런 당신의 인생을 감내하면서 살 수 있습니까?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그 누군가의 육체적 장애를 극복한 이야기입니다.

 

 

 미셀 맥날리는 어렸을 때부터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장애를 안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손을 써 볼 수 도 없고 그저 그 아이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랐죠. 그러다 아이를 가르칠 선생님을 찾게 되는데 선생님이 될 사람은 무서운 외모에 알콜 중독이었던 시각장애인인 데브라지. 혹독하고 가혹해 보이는 훈련에 가족들은 불편함을 느낍니다. 반면 데브라지는 아이에게 말과 예절을 가르치고 엄마에게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 미셀이 독립할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그리고 미셀은 성인이 되고 데브라지는 미셀이 대학교에 진학 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노력 끝에 보통 사람들과 함께 대학에서 공부하게 되고 데브라지는 그녀의 옆에서 그녀의 귀가 되어줍니다. 하지만 그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쇠약해져 가는데요. 알츠하이머병이 생기게 되고 한 장의 편지만 남긴 채 그녀의 곁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수년이 흐른 뒤 눈을 흠뻑 맞은 채 그녀의 집 앞에 나타납니다.

 

 

 

 어린 시절에 다들 헬렌 켈러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보신 분들이 있었을 겁니다. 1880년 미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생후 1개월 이후부터 장애를 겪었고 7세가 될 때 까지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가 비로소 앤 설리반 선생에 의해 교육을 받게 되었고 48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녀를 가르쳤다는 일화를 말이죠.

 

사실 영화 ‘블랙’에 대한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저는 상당히 별로였습니다만 왜 이 영화에 대해 그렇게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언급하게 되면 결국 실제 모델인 앤 설리반과 헬렌 켈러 사이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돼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선 제 느낌을 먼저 말씀 드리면 인간을 가르친다는 것이 결국 그 인간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 보기 좋은 한 형상으로서의 완성을 위한 타인의 욕망인가에 대해 의아할 때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형편은 좋지 못하지만 좋은 대학에 가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어떤 이에게는 감동을 주겠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학벌주의와 성공에 대한 또 한편의 훈계적인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 식상하고 따분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헬렌 켈러를 투영한 미셀의 경우 암흑과 무지의 상태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부터 지식을 습득할 어떤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던 터라 움직이는 식물처럼 자라는 인간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에게는 오감이 있고 그 중 시각과 청각은 가장 정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훌륭한 기관인데 그 두 가지를 모두 잃어버릴 경우 인간이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은 상당히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그렇다면 인격체를 식물처럼 방치하느냐 인간에 가깝게 지도하느냐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그래도 사람인데 후자가 낫지 않겠느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참 아리송한 게 그 인격이란 것, 과연 누군가를 위한 것인지 이 영화를 보고나서 기준이 참 모호해 졌습니다.

  
 

  이 영화가 끝내 말 해 주지 않은 부분이며 가장 알고 싶은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이 인격이라는 것을 지니기 위해서는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먼저 느껴야 하는가를 말이죠.

 

  일단 ‘교육’이라는 것의 의미를 정의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르치는 주체와 대상의 지식, 정보 전달 및 인성의 교감이 교육이므로 ‘교육’자체에는 인위성이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과연 객체의 입장에 있어서 자신이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데 한 주체가 일방적으로 능력을 작용할 때 이것은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뭐, 일단 사람들이 이런 저의 의문에 대해 ‘그래도 사람답게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결론을 내리더라도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기는데요. 실제 앤 설리반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영화 속 데브라지는 미셀 집안의 파티에서 만난 대학교 교수와 함께 이런 말을 주고받습니다.

 

 “나는 저 친구를 대학에 보낼 생각이오.”

  “아니 저 아이는 장애아잖소.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소.”

  “그럼 내가 그 기적을 만들리라.”

 

 

  일단 장애아를 대학교에 들어가게 할 정도면 그 아이는 어느 정도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한 상태입니다.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인격체로 완성이 된 상태라고 볼 수 있는데 과연 그 이후의 교육은 타인의 욕망의 표현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장애아로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교육을 하게 된다는 것은 상당히 대단해 보이는 일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이라면 뭔가 부당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최근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시대의 인물들이 영화화 되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최초 여류 비행사였던 아멜리아 에어하트나 게이 정치가 하비 밀크 같은 사람들 말이죠. 그런데 그들은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로 목표를 이룬 사람입니다. 실제 헬렌 켈러는 자신도 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타인이 보낸 대학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 속 교육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어쩌면 이 영화의 각본이 부정적으로 쓰였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감독이자 각본가인 산제이 릴라 반살리는 2002년 볼리우드 영화의 걸작 ‘데브다스’의 작가로도 잘 알려진 감독입니다. ‘블랙’역시 ‘데브다스’만큼이나 시각적인 효과나 미장센을 잡아내는 데는 훌륭하지만 이 영화는 영상뿐이 아닌 언어까지 함께 생각해서 봐야 하는 영화라, 이 영화가 아무리 수려한 영상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언어적으론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던 탓에 그 아쉬움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인도에서 상당한 흥행과 극찬을 받았던 이 영화는 안타깝게도 인도 대중들에게는 이질적인 영화로 보입니다. 일단 귀족 출신의 영국계 인도인이라는 설정이라든지 인도의 주요 지역이 열대 기후들인 반면 이 영화는 눈, 아이스크림 등 차가운 이미지를 주로 표현하고 있으며, 기독교적인 문화의 표현(인도에서의 기독교인은 3%도 안 됩니다), ‘음식을 손으로 먹어서는 안 돼!’라는 표현(아시다 시피 인도 서민들은 주로 손을 이용해 음식을 먹습니다. 뭐 음식뿐인가요...), 서민들은 생각 해 볼 수도 없는 대학교와 같은 교육에 대한 열망 따위가 이질적으로 보이는데요. 과연 이 영화를 본 인도 대중들은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라면서 눈물을 훔쳤을 지 의문입니다.

 

 

    예전에 봤던 짧은 인터넷 카툰의 내용 중에는 자신의 애장품을 팔 수 밖에 없었던 스타의 이야기와 함께 그것을 지켜보는 서민들은 ‘돈지랄’이라는 씁쓸한 반응과 함께 이어지는 빌 게이츠의 공감대에 대한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이 영화 역시 그런 모습이 그려져 있더군요.

 

  일제 강점기에 나온 소설들 중에는 나름 개화 사상가라고(대표적인 사람으로 이광수가 있었죠) 시혜적인 글을 쓰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세련된 자신의 문체와 의식에 공감해 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길 바랐고 이런 글에서 당연히 양방향의 소통은 기대 할 수 없었죠.

 

 

 

 극 중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면 영화의 정작 주체여야 할 미셀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아마 영화를 ‘교육자에 대한 감사’정도로 생각하고 만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데브라지 선생을 연기한 배우는 인도의 국민 배우 아미타브 밧찬으로 연기력은 좋지만 심하게 연극적인 연기를 보여줘 초반에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지더군요. 후반부로 가면서 캐릭터에도 변화가 생기고, 영화적인 연기로 자연스럽게 옮기긴 했지만 원래 보여주던 모습이 거칠고 광기어린 무서운 모습이다 보니 관객들이 느끼기에도 거리감이 느껴졌던 것은 사실이었을 겁니다.

 

  비록 유연하게 캐릭터가 바뀌지만 남성적이며 조금은 강압적인 교육자의 모습은 제가 생각하는 좋은 교육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더군요. 물론 영화 속에서의 데브라지가 마초 적이라고 볼 순 없고 또한 같은 여성이긴 했지만 실제 앤 설리반 역시 헬렌 켈러를 가르칠 때 강경한 방식을 함께 썼던지라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또 아쉬웠던 이유 중 하나는 과연 교육자와 학생사이에 어떤 교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생과 학생은 서로 그 위치를 바꿔가며 서로 배운다는 말이 있는데 영화 속에선 일방적인 모습만을 보여주고 나중에 학생 된 사람이 감사를 하는데 도대체 뭘 감사해 하고 그 감사에 어떤 감동을 받아야 하는지. 선생님의 캐릭터 - 영화 속 교육의 의미의 이질적인 모습에 혼란만 생겨 버렸습니다.

 

 

 

 영화의 개봉 당시 인도의 유명 배우인 아미르 칸은 ‘블랙’은 어리석은 영화라며 혹평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반작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따레 자민 빠르’라는 교육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는데 개인적으론 그 영화가 훨씬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회가 있다면 꼭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가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개인적으로 영화 ‘블랙’은 교육에 대한 이질적인 해석으로 가득한 영화였습니다. 물론 제 생각입니다. 다른 분들의 관점에 따르면 이 영화는 훌륭한 교육영화 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판단은 여러분의 몫에 맡겨 보겠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 했을 때 교육이란 나무나 동물을 기르는 것과는 다른 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헬렌 켈러와 앤 설리반 >>

 

<< 수입사에 대한 감사의 짧은 글 >>

   광주에 있는 IMAX 시설도 구경 할 겸 볼리우드 팬으로서 이 영화의 시사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월차를 써서 광주까지 내려갔습니다. 제가 비록 영화에 대해 좋은 평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그건 개인적인 생각 일 뿐, 제 글로 다른 사람들의 기분이나 선입견을 작용시켜 선동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영화가 제 타입은 아니었지만 만약 개봉하게 되면 한 번 더 볼 의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은 아니고 볼리우드 영화에 대한 애정입니다.

  현재 다른 수입사들이 볼리우드 영화 몇 편을 수입했지만 실질적으로 영화의 반응을 보기 위해 시사회를 연 영화는 이 영화가 처음입니다. 물론 ‘까삐꾸시 까삐깜’이라는 영화가 있었지만 존재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죠. 하지만 당사는 국내에 영향력이 있는 회사인 만큼 개봉까지 무리 없으리라 봅니다.

  걱정되는 것은 과연 인도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선입견과 외면이겠죠. 이 영화가 그런 관념을 깨기엔 적당하지만 세계화인 만큼 대한민국 대중들도 다른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사람들이 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건 솔직히 영화를 수입하신 분들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요.

 개봉 후에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고 인도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극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또 다른 인도 영화가 극장에 걸리기를 희망해 봅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 그리고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아직도 인도영화의 개봉은 멀기만 합니다.

 

Posted by 라.즈.배.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