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읽어본 적 없지만 인도를 대표하는 신화 ‘라마야나’가 가지는 작품의 의미는 진실함, 경건함, 명예와 용기 등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역사적인 의미로는 강력한 왕국인 아요디야 왕국(인도)와 미개한 적국 랑카(스리랑카)와의 관계에서 우월함을 드러내는 인도의 지도자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2년 전에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을 보았습니다. ‘블루스를 부르는 시타(Sita sings the blues)’라는 애니메이션이었는데 ‘라마야나’를 현대의 사랑이야기에 빗댄 작품으로 그 애니메이션에서 열 개의 머리를 가진 악마 라반은 사실은 그 나라의 현명한 지도자이며 학식이 풍부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라마신인 만큼 적은 악마나 괴물 등으로 그려져 우리의 신은 우월하며 적은 제압해야할 상대임을 보여주는 것이죠.


 늘 사회적인 이야기를 주로 그려내던 마니 라트남이 3년만에 선보이는 작품에선 액션 감독으로 변신하는 듯합니다. 마초적인 악당 주인공과 납치한 여인 사이에 펼쳐지는 묘한 감정과 액션이 화면에 펼쳐질 거라 예상하지만, 물론 그런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속에서 주로 드러내는 것들은 인물들간의 관계와 감정의 변화, 그리고 과연 왜 악당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놓음으로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라는 인도의 변두리 낙후된 산간 지역에서 가난하고 외면당한 무리들을 이끌고 사는 인물로 누군가에겐 제거해야 할 사회의 악이고 다른 곳에서는 인자하고 선량한 덕을 갖춘 지도자로 그려집니다. 영화의 초반부를 지켜보는 관객들 역시 비라라는 인물은 잔인한 범죄자이며, 자아도취에 빠진 다중인격자 정도로 보기 쉽습니다. 재미도 없고 배려심도 없는 인물로 보여집니다. 영화의 초반부는 철저히 ‘쓰여진 역사’로서의 악당 비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냉혈한 같은 모습에도 비라의 시각에서 본 라기니에 대한 계속적인 모습들을 영화속에 보여줌으로서 사실 비라의 상태는 ‘악(惡)’이라기보다는 카오스의 상태이며 이드(id)의 상태임을 자세히는 아니고 상징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보여줍니다.

 이를테면 영화속에서 비라가 라기니를 뒤에 두고 아이처럼 잠을 자는 모습이 나타나는데 이런 디테일한 모습을 통해 비라의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듯 합니다.




 영화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비라가 돌보고 있는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보여주는 장면인데,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라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고 경찰측은 ‘그것은 우리가 알고 싶어하지 않는 정보’라며 무시합니다. 사실 이런 정보에 대한 편협한 수용은 오늘날 우리들의 언론, 집단 등을 통해 잘 드러나는 모습들입니다. 9/11테러를 통해 아랍인들이나 무슬림을 위화감을 조성하는 집단처럼 묘사하는 미국이 관타나모 같은 시설은 은폐하고 있었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내를 찾겠다는 의도로 출발한 추격은 적과 대결하고 싶어하는 데브 경관의 욕심으로 변질됩니다.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더 강해지고 싶은 자와 버려진 자 사이의 전쟁으로 커지게 되고 이들은 최후의 결전을 치르게 됩니다.





‘라아반’과 ‘라아바난’은 복수극으로 시작된 전쟁우화지만 현대 전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약 신화 ‘라마야나’에서 라마의 아들들이 만약 아버지에게 라반은 어떤 사람이었냐고 묻는다면 피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야만적이고 잔인무도한 사람인데 우리는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했다는 이야기를 남길 것입니다.

 만약 영화 ‘아바타’에서 판도라족이 지구인을 상대로 벌인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한다면 평화와 문명의 사절단인 지구인을 해치는 파란색 괴물로 그려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단순히 총칼을 든 전쟁 뿐 아닌 승자가 독식과 동시에 불공정하게 역사를 바꾸는 모습은 현대까지도 계속 되어오고 있는 것이죠.



‘라아반’과 ‘라아바난’의 이야기

 이번에 개인적인 일(!) 때문에 두 영화를 함께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구조와 인물 구성은 큰 차이 없이 같았는데, 너무 작은 차이로 ‘라아반’은 괴작이, ‘라아바난’은 수작이 되었습니다.


 우선 ‘라아반’의 경우 우선 대사가 딱딱하고 재미가 없을뿐더러 디테일을 없앰으로서 몇몇 사건들의 개연성을 거세해버려 영화를 이상하게 만들어 놓아 버렸습니다. 또한 인물들도 딱딱하다는 느낌이 강했는데요. 두 영화 모두 중심이 되는 아이쉬와리아 라이를 제외하곤, 비라 역의 아비쉑 밧찬과 ‘라아바난’에서 악당이었던 비라역을 맡았던 비크람이 데브 경관역을 맡았는데 우선 인물들간의 화학적작용이라고 할 만한게 심하게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세 배우 모두 관객들에게 ‘이거 봐, 우리 연기를 하고 있는데 잘하지?’라는 느낌이었는데요. 특히 ‘라아반’의 아비쉑 밧찬이 그런 느낌을 많이 주더군요. 사실 아비쉑이란 배우가 연기를 못하는 배우는 아니지만 상당히 분노에 찬 오버스러운 연기를 보여줄때는 아비쉑이 롤모델로 삼고있는 아버지인 아미타브 밧찬이나 알 파치노의 모습을 카피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반면 ‘라아바난’은 비크람이 일단 외모부터 선과 악을 동시에 표현함으로서 풍부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고 비라의 형제들 역시 진솔한 연기를 선보여 새로운 발견을 줌으로서 극에 활력을 불어 넣어 줍니다.



 각본은 완벽한 정도는 아니지만 시적인 풍부함과 개연성을 살리는 디테일을 줌으로서 영화다운 면모를 충분히 살려주고 있습니다.

 미장센의 측면은 두 영화 모두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지만 만약 ‘라아반’을 (저처럼)재미없게 봤다고 해도 상당히 혁신적인 미장센들이 등장해서 신선함을 주는데요, 마치 이명세 감독이 ‘형사’를 보여주던 당시의 신선함과 비교할만 합니다. 단지 그것이 볼리우드 영화들이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을 위해 준비하던 한계에서 벗어나 마니 라트남 감독은 영화의 전반에 그런 것들을 배치해서 영화의 감각적인 질을 높였습니다. 적어도 이 점만으로 마니 라트남이 베니스에서 특별예술공로상을 받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에서 간간히 인도영화로서의 정체성다운 맛살라 장면이 등장하는데, ‘라아반’과 ‘라아바난’이 약간씩 구성에 있어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요, 이 부분에 있어 마니 라트남이 타밀판에 힌디어보다 우월하게 공을 들였다는 추측을 하게 만듭니다.

 이를테면 아이쉬와리아 라이의 멋진 *까닥댄스를 볼 수 있는 ‘Killi Re('라아바난'에서의 제목은 'Kalvare')’를 예로 들면 아이쉬와리아 라이의 댄스 장면을 더 아름답고 자세하게 다룬 점은 물론이고 백그라운드 보컬에 있어서도 A. R. 라흐만이 더 선호하는 뮤지션들을 ‘라아반’보다 ‘라아바난’에 포진시킴으로서 같은 영화임에도 ‘라아바난’에 더 애착이 가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타밀판인 '라아바난'의 'Kalvare'로 힌디판인 'Killi Re'와는 다소 차이가 있음,



  만약 제 리뷰를 보고, 혹은 인도영화에 관심이 생겨 이 영화를 찾아보시고자 하시는 분들께는 ‘라아반’보다 ‘라아바난’을 더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번역본을 보거나 힌디나 타밀어를 직접 알아듣지 않는 이상 영화의 대사 같은 부분의 질적 차이를 확인할 길은 없을 것 같습니다.






Posted by 라.즈.배.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