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보시는 그림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클림트의 ‘키스’입니다.
 
배경이 너무 많아서 저는 공간을 삭제하고 딱 키스하는 남녀만 남겨 보았습니다.
 
공간이 뭐 대수인가요. 공간을 없애더라도 이 그림이 ‘키스’인 걸 모르는 분은 없을 테니까요.

  아마 제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떤 분들은 발끈하실지 모릅니다. ‘아니 예술도 모르는 사람이 자의적 판단에 의해 예술작품을 멋대로 망쳐놓다니’하고 말이죠.

  
  사실 제목에서 보셔서 아시겠지만 전 클림트의 그림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닙니다.

  오늘 다문화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세 얼간이’를 보고 왔습니다. 이 영화는 정식으로 수입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삭제가 되어 개봉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지만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소문만 듣고 곧이곧대로 비판하는 건 정당하지 못해서라는 생각 때문이었죠. 또 솔직히 어떤 장면이 잘려 나간지도 알고 싶었습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편집이 된 부분이 곳곳이 보였고 몇몇 부분은 크지는 않지만 작게나마 영화적인 개연성을 떨어뜨리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먼저 본 사람의 시각에서 보는 불만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 영화를 처음 보는 제 일행 분에게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을 물었습니다.

 제 일행분은 그냥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하시더군요. 
 어떻게 보면 이 영화를 처음 보는 관객에겐 이 사실이 그리 나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차피 영화 몇 장면 자른다고 전개가 크게 바뀌는 것은 아니겠죠.
 
영화를 편집해서 개봉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영화를 잘라도 어차피 보는 사람들에게 영화의 내용이나 감동만 전달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른 나이에 벌써부터 거장으로 추앙받는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의 ‘부기 나이트’의 경우 국내 개봉 당시 30분 정도가 잘려서 개봉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영화 홍보는 마치 포르노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당히 야한 영화로 포장되었죠.

  그 후 궁금해서 저는 몇 달 뒤 모 영화 상영 프로그램에서 ‘부기 나이트’의 원판이 상영된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에 그 영화의 원판을 보러갑니다. 사실 그 잘린 부분은 별 거 없었습니다. 잘린 내용 중 하나는 포르노 제작진 패밀리들이 팀이 와해된 이후 살아가는 모습들 같은 것이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은 관객이 이 영화의 전개를 이해하는데 필요가 없는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죠. 폴 토마스 앤더슨은 그 장치를 통해 사람들의 면면을 보여주고 마지막엔 주인공인 디글러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정리하죠. 감독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는데 영화를 내놓는 사람들은 그것을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어쩌면 “어차피 주인공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 되는 거 아냐?” 하며 쉽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세 얼간이’와 클림트의 그림 혹은 ‘부기 나이트’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전자는 그저 그런 유치한 코미디 영화일 뿐이고 후자는 걸작으로 추앙받는 영화인데 급수가 같으냐고 말이죠.

  어찌 보면 맞는 말입니다. 사실 ‘세 얼간이’는 어떤 분의 시각으로 보면 클림트의 키스보다는 옆집 개똥이의 그림에 비유를 하는 게 적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의 본질은 영화를 보는 이의 영화에 대한 평가가 아닌 그 그림을 거는 사람의 태도를 비판하는 것이죠.

  만약 옆집 개똥이의 그림이 형편이 없으면 전시회에 걸 생각을 할 리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그림을 전시회에 건다는 것은 그 그림이 전시회에 걸맞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만약 전시회 준비를 하면서 위원회에서 “쟤 그림은 좀 모가 나니까 우리가 좀 손봐주자”고 한다면? 그런 태도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작품이 자질이 없다고 생각되면 애초부터 걸 생각을 안했겠죠.

 

  영화 ‘세 얼간이’를 수입해서 개봉하시려는 분들은 이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얻고 감동을 얻기 위해 그런 것 아닌가요? 자의적으로 재편집된 영화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기 원한다는 것은 상당히 모순된 행위라고 봅니다.

  단 한 개관이라도 제대로 된 영화를 걸기 전까지 저는 이 영화에 대한 보이콧을 주장하겠습니다.



Posted by 라.즈.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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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정말 보는내내 시간가는줄 모르고 푹 빠져서 감상했네요
    여운이 길게 남아서 소설도 읽어보려고요 원작소설은 7월 중순쯤 나온다고 하네요

    2011.07.07 22:38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러게요. 이 영화의 160여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닌데 말이죠
      저는 원작 소설인 '5 Point Someone'을 읽고 있습니다.

      2011.07.07 23:11 신고 [ ADDR : EDIT/ DEL ]
  2. G.B.

    대체 얼마나 잘려나간 겁니까?
    아마도 영화제가 아니면 '세 얼간이'처럼 긴~ 런닝타임을 가진 볼리우드영화는 극장에서 원판 그래로 상영될 가능성이 별로 없어보입니다..ㅜㅜ

    2011.07.08 14:22 [ ADDR : EDIT/ DEL : REPLY ]
    • 제 블루레이 타이틀을 기준으로 하면 한 25분정도가 나갔네요.
      그런데요. 자꾸 안된다고 하면 안되는 겁니다.
      영화를 편집하지 않으면서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할텐데 말이죠....

      2011.07.08 20:03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