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배급사측의 주장과 프로덕션에서 온 편지
DVD 프라임 영화 게시판을 통해 항의 글을 쓴 지난 일요일인 7월 3일. 너무나 이상하게 수입-배급사의 주장과 유사한 덧글이 하나 달렸습니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영화사가 영화를 잘라서 개봉하는가. 요즘은 다 편집해서 온다. 특히 인도영화는 다양한 판본들이 있다고 하더라.”
는 것이었습니다.
절대 맛살라를 자르거나 하지 않는다.
해외에 가서 인도영화를 보게 되면 그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일단 저와 제 지인들의 경험으로는 전혀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캐나다를 여행하며 인도영화를 본 제 경험으로는 영화가 편집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상의 차이일까요? (즉, 그 땐 그 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일단 ‘세 얼간이’의 경우를 들어보죠. 제 블로그를 오셨던 분들이라면 잉여력 가득한 자료인 ‘세 얼간이’의 모든 것 이라는 게시물을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자료를 준비하면서 저는 각국의 개봉 상황을 일일이 확인했습니다. 추억에 빠져보고자 캐나다와 북미지역 러닝타임, 그리고 영국의 러닝타임을 확인했죠. 캐나다의 경우는 대략 3시간으로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실제 러닝타임은 한 170분 정도 됩니다) 다른 지역의 사정도 유사했지요.
결론은 우리나라 배급을 위해 친히 편집판을 보내주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인도의 제작사나 배급사에 연락을 취하면 되겠죠. 그리고 그 다음날 제작사인 Vinod Chopra Production에서 답장이 왔습니다.
“메일을 보내주어 고맙다. 이것을 Reliance의 배급담당자인 가야뜨리 바뜨라에게 보내겠다. 그녀가 이 문제에 대해 답할 것이며, 필요하면 한국의 배급사에게도 연락을 취하겠다.”
이 뜻은 무엇일까요? 제작사측은 잘 모르니 이 문제를 배급사측에 연락하겠다는 뜻이죠.
* 참고로 앞뒤 다 자른 내용이 아닌 전문 그대로를 번역해 공개한 것입니다.
필요하면 원문을 공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7월 5일 화요일 이동진님의 블로그에 해당 이야기에 대한 수입-배급사측의 답변이 올라왔습니다
“‘세 얼간이’는 인터내셔널판이 2시간이고 한국 버전으로 2시간 20분입니다. 제작사와 협의 끝에 더 많은 장면을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뮤지컬 시퀀스 등은 국내 정서상 부합하지 않아 일반적 상영은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말을 듣고 개그 콘서트의 ‘감수성’의 대사 한마디가 떠올랐네요.
“아니 뭐라구요? 제작사에선 모르겠다는데 제작사와 협의를 했다구요?”
뮤지컬 장면이 국내 정서상 안맞는다고 하면 우리나라의 그 숱한 뮤지컬 붐과 최근 개봉한 ‘써니’의 대박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블랙’이 개봉했을 때 그 때의 그 수입사가 했던 말을 지금의 수입-배급 업체는 꾀꼬리처럼 똑같이 하고 있군요.
‘슬럼독 밀리어네어’나 ‘블랙’의 성공으로 인도영화의 가능성만을 믿고 영화를 수입 배급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인도영화에서 인도색을 지우는 것이 정말 (그들이 말하는) 국내정서상 더 많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오히려 인도영화가 인도영화로서의 정체성이 있다면 그게 더 좋은 것 아닐까요?
남의 영화를 국내정서에 맞춘다는 것은 문화적으로 얼마나 위험하고 오만한 일일까요?
그렇게 문화적인 획일성을 정립해주시니 정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본 사태의 ‘내 이름은 칸’과 ‘세 얼간이’의 근본적 차이
그 지겨운 ‘인터내셔널 판’ 드립의 시초가 된 영화는 아마 ‘내 이름은 칸’일 것입니다.
‘내 이름은 칸’에 인터내셔널판이 있다는 것은 맞습니다. 120여분으로 편집이 되었고 그것을 지시한 사람은 카란 조하르이며 편집은 ‘500일의 썸머’ 등을 편집한 Alan Edward Bell이 맡았습니다. IMDB에 따르면 이것을 인터내셔널 디렉터스 컷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 얼간이’의 영화사의 주장에 따르면 영화에 대해 120분짜리 인터내셔널 버전이 있으며 국내에서 20여분을 추가했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터내셔널 버전은 인도에서 직접 준비한 것이고 20분을 더 추가한 것은 제작사와의 협의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작사측에선 모르고 있죠.
그림으로 쉽게 표현한 ‘내 이름은 칸’ 인터내셔널 판과
‘세 얼간이’ 코리안 에디션
현대 미술하면 떠오르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앤디 워홀입니다. 그는 자신의 상업성에 대한 자부심으로 뭉친 사람이죠. 대표적인 작품이 아마 마를린 먼로의 판화일 것입니다.
‘내 이름은 칸’의 인터내셔널 버전은 바로 앤디 워홀의 마를린 먼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앤디 워홀의 자의에 의해 그 그림은 여러 버전으로 만들어졌죠.
바로 이렇게 말입니다.
그런데 ‘세 얼간이’의 경우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냐면
순전히 예를 들어(진짜 그랬다는 게 아니구요)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이라는 작품에서, 여성의 노출을 불경스럽게 생각하는 중동 지역을 등을 위해 마네 재단에서 ‘풀밭 위의 점심 인터내셔널판’을 제작해 배포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역시 아녀자의 노출을 불경스럽게 여기는 유교사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중동 지역보다는 다소 유연한 까닭에 마네 재단과 합의해 주요 부분을 모자이크 처리를 하는 정도로만 끝내며 그림을 걸기로 합니다.
그런데 정작 마네 재단에서는 ‘풀밭 위의 점심 코리안 에디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면?
이는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인사동 복사장이의 손놀림이라고 해야할까요?
지금 '세 얼간이'가 이런 식입니다.
아니면 지금의 좋지 못한 관례를 만들도록 ‘인터내셔널 판’의 망령을 심어준 카란 조하르를 미워해야 하는 걸까요.
결론
저는 영화사의 무조건적인 비난을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왜 눈 가리고 아웅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인도영화의 특수성 때문에 인도 외의 지역에선 뮤지컬 장면을 뺀다 고 하셨는데 그 말씀에 책임을 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습니다. 진위 여부를 위해 오늘 EROS Entertainment, Yash Raj Films, UTV Motion Pictures 등의 대형 배급사에도 그런 사실이 있는지 서신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캐나다에서 ‘신이 맺어준 커플’의 ‘Phir Milenge Chalte Chalte’를 보았고 ‘가지니’의 ‘Guzarish’를 흥얼거렸습니다. 심지어 이름 모를 펀자브 영화도 세 시간을 그대로 채워서 개봉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좋은 방법을 구사할 수 있고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음에도 영화사가 상당히 관객들에게 시혜적인 조치를 취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여론에 귀를 기울이고 진실된 행동을 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글을 마감하려던 찰나 이동진님 블로그에 글이 추가되었군요.
다른 나라들은 편집되서 개봉된다굽쇼?
조사 결과 영국 160분, 싱가포르 173분, 대만 164분 나왔습니다.
아무리 오차가 생긴다고 해도 그게 +- 20분 (아니 인터내셔널이니 40분이겠군요) 일 수는 없겠죠.
설령 배급사에서 그런걸 만들었다고 해도 수입 국가들이 원래 버전으로 틀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제발 좀 솔직해 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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