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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영화 이야기/영화의 전당

[BIFF 리뷰] 바스코 다 가마(Urumi) : 새로울 것은 없지만 나쁠 것도 없는 팩션

 



 영화 ‘바스코 다 가마’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많은 영화였습니다. 아마도 샤룩 칸의 바벨탑으로 불리는 ‘아소카’를 만든 산토시 시반의 작품이고(이런 평가와는 달리 작은 영화에는 강한 감독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연 인도의 다양한 지역에서 활약하는 스타들을 데려다 소모적인 영화를 만들지나 않을까 했던 우려(적절한 예가 아니겠지만 스타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실베스터 스탤론의 ‘익스펜더블’같은...)도 있었으며, 이 영화가 소개되기로는 ‘애국’이라는 코드가 있던데 비록 보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짐작되는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같은 소위 돋는 영화는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요.

 다행이도 제가 걱정했던 부분은 크게 비껴갔습니다. 가끔 인도영화에서 보이는 급작스러운 장면 전환 같은 부분은 거슬리기는 했지만 영화 전체에 신경이 쓰일 정도는 아니었으니까요. 영화에 대한 불신의 종식에 관한 부분은 천천히 설명해 드리도록 하죠.

 


 영화의 내용부터도 시작부터 생각했던 내용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시작부터 과거가 아닌 현재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냥 하릴 없이 젊음을 소비하는 한 젊은이가 등장합니다. 그는 갑자기 조상이 땅을 물려주고 한 대기업이 그것을 고가로 팔라고 할 때 돈이나 벌자는 마음에 당장 사인을 할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마을의 누군가가 그를 납치하고 조상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죠.

 내러티브만 이야기하면 굉장히 고리타분할 수 있습니다. 사실 역사라는 것이 그러니까요. 혹자는 역사를 ‘죽은 학문’이라 합니다. 그런 비판적인 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보여주고자 한다는 것은 그 속에 어떤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는 ‘옛날 옛적에’ 유의 이야기를 하는 정당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죠.

 
 


 영화는 플래시백을 통해 바스코 다 가마와 선조의 악연을 짧고 묵직하게 정리합니다. 물론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서 그 내러티브에 새로운 시도가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왜 저럴까’, ‘지루하다’는 인상은 안 남깁니다. 오히려 상업적으로 접근하면서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봐주기를 바랐던 전략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바스코 다 가마에 대항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주죠.

 왕국에서 나타나는 인물들의 모습은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고 있지는 못하지만 요즘의 역사영화들은 현재 상황에의 반영을 목표로 하는 기능적인 면 때문에 그런 스테레오타입의 인물 설정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저 역시 그런 모습에 이의를 가지고 있지 않지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구도는 정치에 무능한 왕과 간신, 그리고 나라를 근심하는 충직한 인물의 구도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정해진 수순을 향해 갑니다. 마치 토끼들이 자신이 왕임을 뽐내는 자리에서 사자를 마주치기까지의 과정을 말이죠.

 
 


  인도 영화치고 그리 길지 않은 130분 동안 영화가 떨어진다거나 부족함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장면 전환 같은 부분을 제외하고 말이죠. 배역진도 상당히 많은 지역에서 활약하는 배우들이 등장합니다. 말라얄람 영화인만큼 말라얄람의 톱스타 프리트비라즈를 주인공으로 두고 발리우드의 아몰 굽테와 비드야 발란, 텔루구의 제넬리아 드 수자, 타밀의 타부와 프라부 데바, 아리야가 각자의 역할을 잘 소화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비드야 발란 같은 경우는 카메오 수준의 배역이지만 강렬한 인상과 신비로운 인상을 동시에 남기고 아리야 같은 경우는 짧은 시간에 전사적인 이미지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제넬리아 같은 경우는 기존의 현대물에서 보여주었던 옆집 아가씨 같은 이미지에서 신비로운 모습과 전사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어 신선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캐스팅을 결정한 것도 아닐 텐데 영화의 모든 배역진들이 마치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고 나온 듯 자연스럽게 연기에 임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 중 하나는 영화의 메시지 전달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닭살이 돋는 애국주의는 정말 촌스럽기 마련이니까요. 대놓고 메시지를 드러내거나 너무 강경한 말투로 영화를 진행하는 영화에는 공감대를 얻기 힘들죠. 영화를 보러 와서 설교를 듣는 기분이 들 테니까요. 다행이도 그런 부분은 최대한 줄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극적인 진행보다는 볼거리에 치중했다는 비판도 받을 수 있겠지만 주인공이 겪는 사건들이 나름 영화의 메시지에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이처럼 영화 ‘바스코 다 가마(Urumi)’는 꽤 공을 들여 만든 대중영화라고 하고 싶습니다. 제국주의의 폭압을 쓰던 이들은 이제 기업이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물론 과거의 전사들이 그랬듯 그들에게 우루미 칼(남인도 전사들이 쓰는 휘어지는 칼)을 쥐고 그들의 목을 벨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민주적으로 저항할 수 있지는 않을까요.

 어쩌면 그 반복되는 역사의 모순의 극복을 영화 속에 담아낸 것은 영화를 만든 이들이 역사가 주는 의미를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잘 아시다시피 인도에는 많은 언어가 있고 그에 따라 언어권 영화 시장이 따로 존재합니다. 또한 그 지역에 따라 영화 산업의 면모가 꽤 개성적으로 발달해 있는데요, 이를테면 뭄바이를 중심으로 한 발리우드나 제 2의 발리우드라 불리는 남인도의 타밀 영화시장은 오락 영화를 중심으로, 벵갈어나 마라띠어를 쓰는 지역은 전통적으로 작가주의의 경향이 강하죠.

 말라얄람 영화계는 배우의 스타성 못지않게 영화의 작품성이 중시되는 영화계입니다. 그런 요소 때문인지 말라얄람을 대표하는 배우도 샤룩 칸류의 정통 맛살라 배우가 아닌 모한랄, 마무띠같은 연기파 배우들인 셈이죠.

 영화 ‘바스코 다 가마’의 주인공은 요즘 말라얄람 영화계의 대세라 불리는 프리트비라즈입니다. 생소한 배우겠지만 작년 마니 라트남의 ‘Raavanan’에도 출연했고, 말라얄람 시장에서 ‘Anwar’ 같은 영화들을 히트시키며 스타의 자리를 확고하게 굳힌 배우죠.


 아이러니하게 말라얄람 영화계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프리야다샨 감독입니다. 인영 팬들에겐 샤룩 칸의 ‘빌루’의 감독으로 알려져 있는 감독인데 이름만큼 정말 다산(多産)하는 감독입니다. 하지만 인도의 영화팬들에게 복사기라는 비난을 받은 후로는 악쉐이 쿠마르의 코미디 영화 같은 것은 사절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죠. 그래서 그는 늘 자신의 생애 첫 National Awards 작품인 ‘Kanchivaram’을 대표작으로 꼽습니다. 자신도 이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알아달라고 말이죠.
 
 


  사설이 길어졌지만 프리야다샨 감독을 언급한 이유는 그가 말라얄람 영화 리메이크 전문 감독이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말라얄람 출신의 유명배우였던 것 때문에 자신의 아내에게 바치는 마음으로 리메이크를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리메이크 된 영화들로는 ‘Bhool Bhulaiyaa’, ‘Chup Chup Ke’ 같은 영화들이 있고 이 영화들은 상업적으로 쏠쏠한 성공을 거두기도 했죠.

 
 


 영화 ‘바스코 다 가마(Urumi)’는 22 Crores라는 말라얄람으로서는 블록버스터 급의 제작비가 든 영화입니다. 마무띠의 ‘Pazhassi Raja’ 같은 영화가 27 Crores로 역대 말라얄람 최대의 제작비가 된 영화로 언급되니까요.

 그전에는 앞서 소개한 말라얄람의 주요 배우들을 기용한 드라마 장르의 영화들이 강세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철저히 상업성을 고려한 영화들이 제작에 박차를 가할 정도로 시장으로서의 가능성도 생겨났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말라얄람 영화는 발굴할 가치가 높은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올 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제가 소개해 드린 영화 ‘바스코 다 가마(Urumi)’와 ‘누가 상관을 쏘았는가(Melvilasom)’가 소개되었습니다. 내년에도 말라얄람어 계통의 좋은 작품을 영화제나 또 다른 기회를 통해 만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 이 영화의 또 다른 수확이라 하면 바로 Nithya Menon이라는 배우일 것입니다.
아마 남성 관객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실 듯... ㅋㅋ

 


 * 위키피디아엔 160분으로 되어있는데 제가 본 영화는 130분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군요. (참고로 IMDB에는 러닝타임이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