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SpberRy입니다.
지난 2012년 9월 16일 구로 CGV에서 영화 ‘지상의 별처럼’의 관람과 talk 가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게스트 분은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하셨고 비사문천님도 개인 사정으로 불참하셨습니다.
저와 기현님만 영화를 관람했는데 저 역시 사실상 위산과다 및 피로누적으로 불참할까 하다가 혹시나 인기 없는 애가 인기 없는 영화 보자고 하니 실패하는 거다 하는 소리 듣기 싫어서 후기는 쓰지 말고 건강부터 챙기라는 기현님의 말씀을 고이 접어 날려버리고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talk는 이렇게 간다는 걸 한 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영화 상영 2주차에 들어서면서 관객이 팍 줄어들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는데 다행이도 좌석점유율이 높게 나와서 제가 수입, 배급한 영화도 아닌데 기분이 좋았습니다.
멀리까지 와주신 기현님이 고마워서 무료 영화와 무료 점심을 대접해드렸습니다. 굳이 안 써도 되는 이야기인데 좋은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영화적인 설정이 현실에서도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2013/10/08 - [인도영화 이야기/영화의 전당] - [톡! 톡! 톡!] '지상의 별처럼' 맛살라톡 후기
‘지상의 별처럼’의 각본가는 아몰 굽테라는 사람입니다. 외모는 산적두목이지만(실제로 인도에서도 그런 배역을 많이 맡음) 올 봄에 개봉했던 영화 ‘스탠리의 도시락’의 각본, 감독, 출연을 했던 다능한 감독이죠.
‘지상의 별처럼’에서는 각본만 썼을 뿐 아니라 영화 속의 그림들을 직접 그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영화 후반부 미술대회에 쓰인 수준 높은 아트웍들은 미술가 사미르 몬달의 작품들이지만 이샨의 잔그림들은 아몰 굽테가 직접 그린 것들이죠.
아몰 굽테는 평소에 인도의 어린이와 어린이 영화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데 ‘지상의 별처럼’에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그가 직접 쓴 ‘스탠리의 도시락’에선 감독의 역할까지 맡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모종의 공통점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그 중 하나가 바로 어린이 노동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영화에서 다소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이샨의 부모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운전 중에 마주친 책 파는 아이들(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인도영화에 나온다)이나 니쿰 선생(아미르 칸)이 휴게소에서 만난 서빙 하는 꼬마 아이를 볼 수 있는데,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인도의 자본주의 사회의 비극처럼 남겨진 저소득층 노동자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스탠리의 도시락’에선 교육이나 급식 문제, 어린이 노동문제로 직접적으로 드러내려 했던 것 같고요.
예전에 (두목x) 임금과 스승과 어버이는 하나라는 말이 있었든 선생님이라는 위치는 감히 논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 위치에 있는 것이라고 배웠지만 그래도 감히 선생님의 위치에 대해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이야기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마귀할멈이라 불리는 한 물리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이 어느 날 ‘OOO 때문에 내가 선생 못해먹겠다’
그런데 OOO이라는 친구가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사건을 일으키는 문제아였나 하면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냥 지능이 조금 다른 아이들보다는 떨어질 뿐이었죠. (비슷한 이미지가 개그콘서트의 ‘멘붕 스쿨’에 나오는 ‘아니아니 그게 아니고요’하는 소심해서 사고 한 번 안치는 승환이 캐릭터)
이를테면 그 친구는 한 친구가 ‘안녕’ 하면 꼭 끝까지 ‘안녕’하고 답해줘야 하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때문에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 놀러 나왔다가. 답인사 하느라 자기 수업에도 못 들어가는 그런 친구였죠.
영화 ‘지상의 별처럼’에는 레이스에 우세한 학생에게 관심을 쏟는 것이 우선이라고 믿는 선생님들이 많이 나옵니다. 뭐 좋은 대학 들어가는 학생들이 선생님 입장에선 예뻐 보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지능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버려도 좋을 정도로 만만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죠.
기현씨는 다큐멘터리영화제에 상영되었던 영화 ‘Bully’의 컨퍼런스때 느꼈던 (짜증난)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그곳에 참여했던 교사 중에는 우수한 아이들을 진작 걸러서 학교에 입학시켰으면 좋겠다는 선생님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죠.
어쩌면 ‘지상의 별처럼’이라는 영화에서처럼 모자란 한 마리의 어린 양에게 더 힘을 써 준다는 것은 과외가 아닌 이상 교육의 현장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죠. 효율성만으로 따진다면 말 잘 듣는 엘리트 학생들의 뒷바라지를 해주는 게 낫지 모자란 소수의 학생을 일정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노력도 노력이지만 항상 기대했던 성과를 내기란 쉽지 않으니까 말이죠.
실제로 ‘지상의 별처럼’의 이샨과 같은 학생이 우리의 교육현장에 있다면 어쩌면 그 학생은 천재가 아닐 확률이 크고 또한 어느 선생님 하나 선뜻 나서려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라 해도 최소한 학생 개인의 존엄성은 지켜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선생님의 짜증 섞인 불평을 기억한다는 것은 이미 그때부터 교사의 최소한의 자질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합니다.
다른 인도영화 관련 커뮤니티나 이 영화를 보신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전반부 이샨의 어려운 학교생활 부분이 조금 늘어지고 쳐져 보인다는 평가를 종종 들을 수 있었는데요, 아마 주인공 이샨의 장애로 인한 힘든 생활을 계속적으로 보여주다 보니 영화가 조금 어둡게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좀 다르게 봤는데 영화는 딱 인터미션 - 국내 개봉판에는 없지만 아미르 칸이 연기한 니쿰 선생의 등장이 딱 중간부분 - 전과 후의 영화적인 흐름의 변화가 명확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관객들이 우울하다고 지적한 영화의 전반부는 이샨의 학습능력 저하로 인해 일어나는 각종 문제들에 대한 부분인데 내용만 우울할 뿐이지 이 부분은 생각보다 전개도 빠르고 관객들을 사로잡기 위해 일반적인 극의 전개에서 약간 벗어난 공상적인 부분이라든지, 음악적인 요소를 잘 활용합니다. 이런 초현실주의적인 접근이 가능했던 것은 이샨이라는 캐릭터가 현실보다는 공상에 익숙했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기현님의 경우는 후반부가 조금 아쉬웠다고 하시는데 일단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향취가 너무 다르고 극중 니쿰 선생의 부모에게 일갈하는 태도가 약간은 거슬렸다고 비판하시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이 아미르 칸인 까닭에 국내에선 이 영화보다 먼저 개봉했던 ‘세 얼간이’와 종종 비교되곤 하는데 (실제로는 ‘세 얼간이’가 이 영화보다 3년 후에 개봉된 영화.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아미르 칸의 주름이 더 많다) 과거 인도영화 토크에서 ‘세 얼간이’에 대해 비판적인 견지를 가지고 있던 한 토키가 아미르 칸의 웅변가적인 혼자 똑똑이 캐릭터가 가끔은 거슬리게 느껴진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아시아 영화들에서 나오는 직설화법의 일종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이를테면 일본에서도 가끔 인물들이 계몽주의자가 된 듯 “...이러는 거에요!”하는 발언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죠. 하지만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나 중국 등의 영화에서도 가끔 훈계에 가까운 그런 돌직구적인 화법을 구사할 때가 있고 ‘지상의 별처럼’ 의 니쿰 선생의 캐릭터 역시 그런 직설화법에 익숙한 문법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합니다.
기현님이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에 대한 차이에 대해 언급했는데요,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가 약간 다르다고 언급을 했는데 저도 비슷한 생각은 했지만 그 생각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를 보였습니다.
우선 기현님의 의견은 전반부는 각본가(이자 사실상 공동 감독)인 아몰 굽테의 비전이고 후반부는 감독 아미르 칸의 비전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어린이의 입장에서 극을 그려낸 것이나 많은 미술적 감각의 활용, 어두운 이야기를 판타지 식으로 처리한 것 등이 그렇게 느껴졌다고.
반면 후반부는 아미르 칸의 기존 영화들처럼 현실적이거나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모습이 보여 다소 차이가 있었다고 언급했는데, 저는 일부는 동의하지만 두 감독사이의 성향이라고 하기엔 두 사람의 필모그래피에 있어 ‘작품세계’라 불릴 만한 영화가 그렇게 많지 않았고 사실 전반부의 어두운 분위기는 후반부의 대안적인 결말을 위한 필요과정이었다고 보고 싶습니다.
결국 영화에서 딱 터닝 포인트 기점인 니쿰 선생(아미르 칸)의 등장은 극의 분위기를 전환 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것은 한 인물이 극의 분위기를 바꿀 정도로 그 인물이 상당히 극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죠. 거창하게 보면 영웅적인 인간의 등장으로 인한 해결이라는 시각을 줄 수도 있지만 영화는 ‘스승’이라는 키워드를 계속 던지고 있는 까닭에 영웅적 이미지라기보다는 ‘멘토의 필요성’에 관한 역설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아몰 굽테는 자신의 데뷔작 ‘스탠리의 도시락’에서는 드라마틱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최대한 배제하고 현실적인 시각에서 영화를 그려냅니다. ‘지상의 별처럼’에서처럼 한 명의 선생님을 우상적인 존재로 그리기 보다는 심술궂은 선생님과 존경스러운 선생님을 그냥 한 공간 안에 던져버리죠.
이렇게 ‘지상의 별처럼’은 다소 극적인 구조로 이루어진 교육영화고 하나의 판타지처럼 느껴지게 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그 자체로서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학생에 대한 존중과 인격체로서의 인정, 획일화되고 경쟁 위주가 되어 버린 교육에 대한 비판이나 교육 소외 계층과 이들의 사회 적응에 대한 바람을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 인도의 초등학교 4년은 의무교육이 맞다고 하는군요. 자료에 따라 상이하지만 모든 주에 해당한다는 자료와 일부 주에 해당한다는 자료가 함께 있더군요. 뜬금없지만 영화 ‘세 얼간이’에서 교복 사 입고 아무 학교나 다니라는 주인공 란초의 말이 떠오르는군요.
* 영화를 여섯 번 째보고 있지만 아직도 영화 속에 나온 시는 이해를 못하겠어요. 꼭 저처럼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하는 말 있죠. 문학작품이라는 것은 느끼는 사람마다의 감정이 있는 것인데 교과서의 해석을 외워야 하는 이 안타까움... 영화기는 했지만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이 있었다면 미술 시간에 학생들이 모두 서로 다른 그림을 그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정말 학생들이 다들 세뇌당해서 정물화 그릴 줄 알았거든요.
*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의외로 단순한 장면이었습니다. 니쿰 선생이 주인공 이샨에게 불을 켜라고 이야기 하는 부분이었는데 ‘enlighten’이라는 단어와 연관이 있죠. 우리말로는 ‘계몽’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아이가 사실은 우리 인류에 불을 밝히는 사람’이라는 나름 계몽적인 메시지를 주려 했다고 저만 생각해봐요.
* ‘지상의 별처럼’ 아트시네마 계열 다양성 영화부문 박스오피스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네요. DP의 조용한 반응에 비해 반응은 좋던데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면 합니다.
* 저도 학습장애가 있었던 것 같아요. 바로 미술이죠. 저는 사물을 표현하는 방법에 상당히 어둡고 대부분의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프레임을 잡는데 굉장히 어려움을 느끼죠. 두 시간밖에 안 되는 미술시간에 그림을 완성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미술 선생님은 이런 유행어를 쓰곤 했는데 저같이 그림을 못 그리는 아이들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그림이 썩었다!”고 놀리곤 했죠. 그런데 중요한 건 raSpberRy는 유치원 대신 미술학원을 다녔다는 것... ㄷㄷㄷ
* 난 둔재야 둔재가 분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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