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신화적 상상력이 유산이 되어 영화인들은 그것을 화면에 담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죠. 하지만 그 유산이 찬란하다 한들 그것을 구성하는 능력이 없다면 단순한 ‘전달’에 그치고 말겠죠. 그나마 전달이라고 하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마저도 이뤄내지 못한 채 회사라는 공장의 요원들이 되어 단순노동만 하다 끝나게 됩니다.
마니 라트남의 영화는 내러티브만 들으면 상당히 평범할 것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지만 그의 영화는 시퀀스와 시퀀스를 움직일 때 느껴지는 역동성이 느껴집니다. 어촌 시장에서의 민중들의 삶의 모습이 그렇고 작은 교회를 부흥시키기까지의 이야기, 복수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될 때 그 다음은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감독은 상당히 심각하고 무거운 톤의 영화를 다루면서도 맛살라(인도식 뮤지컬) 시퀀스를 삽입하는데, 미학적이면서도 참신한 안무는 영화의 재미를 더할 뿐 아니라 미학적인 성과를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카달’의 경우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가스펠풍의 음악과 완전한 인도식 안무라기보다는 약간 현대 뮤지컬 영화의 안무를 사용하면서도 인도 특유의 색감을 화면에 풀어놓습니다.
영화는 종교적인 테마와 복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쉽게 선한자와 악한자를 나누지 않습니다. 이러한 구도를 가진 대부분의 영화는 그런 이분법적 사고를 통해 종교적인 정당함과 선의 승리로 영화를 마무리하는데 이 영화가 그것을 부정한다기보다는 조금 더 다른 방식에서 인물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유달리 이 영화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마니 라트남 감독의 영화에서 종종 나타나는 현상으로 위험한 테러리스트지만 사랑하게 만든 사람(딜 세(Dil Se))의 이야기나 종교적 갈등(봄베이(Bombay)), 명암을 함께 가진 재벌(구루Guru)), 악당의 모습을 한 주인공(라아바난(Raavanan))과 같은 이야기를 통해 그의 선악이 혼재된 인간세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마니 라트남 감독에 따르면 자신이 다루는 캐릭터에 단지 선악에 대한 구분을 두기보다는 인간의 순수함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가 오래전부터 앙숙이 된 두 남자의 대결보다 죄악과 회계를 반복하는 토마스의 이야기를 더 중점으로 다루었던 것을 보면 이 영화에서 마니 라트남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대강 알 수 있죠.
영화에서 구원을 다루는 방식도 독특합니다. 비록 영화는 종교와 종교인을 등장시키고 있지만 마니 라트남은 인간의 고난은 서로의 갈등에서 출발하고 따라서 그것을 풀어내는 것은 인간의 몫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영화에서 다소 극적인 부분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신앙과 결부시키지는 않는, 마치 종교는 등장하지만 종교색은 짙지 않은 독특한 영화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번 마니 라트남의 영화 역시 세계적인 뮤지션인 A.R. 라흐만이 함께하고 있는데 다른 영화에서의 라흐만의 음악은 그의 재능을 자랑하는 데만 쓰였다면 마니 라트남 영화에서의 라흐만의 음악은 매 영화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이번에는 ‘카달’의 종교적인 특색과 어우러져 장엄한 기독교 예식 음악을 비롯한 서구적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인도색을 잃지 않은 독특한 음색을 자아냅니다.
인도영화만큼 음악의 힘이 영화에 크게 영향력을 미치는 영화도 흔치 않지만 특히 마니 라트남과 A.R. 라흐만의 조화가 그 어떤 인도영화에 쓰이는 음악의 효과보다 크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두 사람이 일반적으로 기대하고 상상하는 평범한 인도영화의 정형화된 틀을 거부하기 때문은 아닌가 합니다. 언제 또 이 과작의 시인의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다시 만나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Verdict 마니 라트남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그가 가장 잘 하는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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