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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이야기들

2012년 raSpberRy's BEST FILMS 10

 

 

 

 

 

 

  저는 늘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생활이 빈곤하면 영화 문화 역시 빈곤해 질 수 밖에 없다고 말이죠. 이것은 단순히 영화 편수가 줄어드는 문제만이 아니고 선택하는 영화나 정서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빈곤해진다는 것이죠.

예전 같으면 C모 극장 체인에서 VIP를 달성하고도 아트시네마에서 회고전을 오가던 물질적이고 정신적으로 풍요롭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학 시절 히치콕 특별전을 보기 위해 영화학 교수님께 허락을 맡고 수업을 빠지던 지난 시절도 살짝 그리워지고 말입니다.


보려고 벼르던 어떤 영화를 놓쳤다고 하면 누군가 “충분히 볼 수 있었을 텐데~”하고 말하더라도 ‘(이제는) 멀고 가기 귀찮아서’라고 너무 자연스럽게 말하는 저 자신을 보면 사실 비용보다는 심리적 거리가 물리적 거리로 퉁쳐져서 멀어진 건 아닌가 하고 저만 생각해봐요.

그래도 1년 안에 어찌어찌 보게 된 영화들을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 국내 개봉작 >>

#1
피에타

 

 

 

절박한 심정으로 가슴에서 짜낸 고름

 

 


 살아생전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첫 번째 자리로 올릴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영화에 대한 느낌이 영화를 보는 상황과 시기에 좌우될 수도 있는데 굳이 그렇게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을 회피/합리화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역시 김기덕 감독 아니랄까봐 굉장히 투박합니다. 미술가(?) 출신답게 그의 미장센에는 별로 불만이 없었습니다. 아직도 긴 인상을 주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나 ‘피에타’의 등장 전까지 가장 좋아했던 김기덕의 영화 ‘빈 집’같은 경우, 역시 투박하지만 인상 깊은 조각들이 아직도 기억의 한 구석에 박혀있긴 합니다.

 



그런데 ‘피에타’의 구조들은 예쁘지 않습니다. 아니 예쁠 수가 없습니다. ‘경각을 다툰다’는 말이 사실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이고 시각적으로 영화 속에서(판타지 영화를 빼고) 본 적이 없는데 아마 그 골목길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들숨과 날숨 사이가 그런 느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소심하게나마 ‘빚지고 살지 말아야지’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죠.

이런 상당히 각박한 현실 속에서 초월적인 존재 하나가 등장합니다. 엄마라는 사람인데요. 엄마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존재지만 어쩐지 ‘모성’이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희생을 실현시키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피골이 상접한 한 흑인 난민이 아무리 애써도 나오지 않는 젖을 아이한테 물리는 그런 모습이 ‘피에타’에서 펼쳐집니다.


모성이라는 이름의 태초의 희생과 강요된 희생 사이에서 보여지는 절박함 속에서 오는 구원은 솔직히 말하면 죄의식보다는 인간성의 회복이 아닐까 합니다.(물론 전자가 수반 돼야 하겠죠) 여전히 누군가에겐 김기덕의 못 만들고 불편한 영화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론 행동 양식이 꽤나 달라진 까닭에 이 영화를 올 해 최고의 영화로 꼽았습니다.

 




#2
도둑들



내겐 너무 완벽했던 오락영화 



 예전에 군복무 시절에 한 부사관 한 명이

 “야 라즈밸이 너 영화 좋아하지? 이런 영화 함 만들어봐라. 제목은 ‘반칙왕 2’인데 전국 각지에서 자기만의 기술을 가진 애들을 모아서 드림 팀을 만드는 거야. 한 놈은 박치기를 잘하고 한 놈은 암바를 잘하고 뭐 이런 식으로... 죽이지 않냐?”

 음... 죽이고 싶긴 했지만 마치 올 해 ‘어벤저스’가 그랬듯 능력자들을 조합해 하나의 미션을 한다는 설정은 단순하고 전형적이면서도 재미있는 구성이니까요.

 최동훈 감독은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에서 이미 그런 조합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인물은 더 늘고 판이 더 커졌죠. 더구나 감독의 전작들이 기대치를 높여놓은 탓에 또 똑같은 걸 가지고 오면 ‘저런 걸로 우릴 사로잡겠다고?’하고 생각하기 마련이죠. 


 이상하게 또 범죄는 팀워크일 때 화끈하지만 죄짓고 불로소득으로 돈 벌어먹는 이른바 ‘불한당’인 까닭에 결성과 동시에 와해되리라는 것은 이미 예견을 하게 됩니다. 이런 전형성은 일반 관객들에겐 안정감을 줄 수 있지만 그것은 상업영화에서 주머니 사정 생각하는 만드는 사람의 사정이고 내가 재미를 얻기엔 그다지 플러스 요인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범죄의 재구성’때도 그랬지만 어떤 인물은 큰 역할을 어떤 인물은 작은 역할을 담당하면서 이들이 서로 맞물려 능력을 합하기도 하고 대치하기도 하면서 이야기는 큰 물줄기를 이루되 영화의 전개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각자의 개성을 영화 속에 녹아낸다는 미션을 가지고 영화를 차근차근 전개해 나갑니다.

 그리고 이것을 인물을 소개하고 또 그들의 장기를 보여주는 작은 사건, 본격적인 이야기와 갈등구조를 이끌 중심부의 큰 사건, 그리고 결말부의 작은 사건으로 정리하면서 상당히 효과적인 흐름을 보여줍니다. 이런 구조 안에 스타성과 연기력을 고루 갖춘 배우들을 포진하고 기존 한국영화에선 볼 수 없었던 비주얼 적으로 강한 오락요소를 가미하며 동시에 홍콩영화를 좋아하던 팬들에게는 향수까지 선물하기도 합니다. 


 물론 대형 배급사들의 영화 독식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서 비난도 많이 받았지만 영화는 관객의 몫이었다고 봅니다. 몇몇 관객들은 ‘어차피 사람 많이 드는 영화 더 걸고 싶지 않겠느냐 내가 극장이었어도 다른 영화보다 <도둑들> 같은 영화 더 걸겠다’라고 하는데 솔직히 분란 생길까봐 말은 못 꺼냈지만 그것이 본인의 스탠스인지 묻고는 싶었습니다. 참 애매하긴 하죠. 굳이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사람 말이 맞지 하고 동조해버리고 굳이 이야기를 하자니 논란 만들어서 사람들 눈살 찌푸리게 할 것 같아 걱정이고.

 그래도 한 영화에 관객이 쏠리는 것 보다 사람들이 조금 더 다양한 영화를 봐줬으면 그리고 극장 시스템도 일부 영화에 주도적인 상영을 조금 자제해 줬으면 하고 저만 생각해봐요.

 물론 꿈같은 얘기기는 하지만요...



#3
Hugo



안심하십시오. 세상은 망하지 않습니다.

 저는 솔직히 마구 쏟아지는 3D 영화들이 싫었습니다. 소위 ‘돈지랄’영화라고 말이죠. 사실 이것은 영화의 소재는 바닥을 기고 남은 희망은 ‘기술력’밖에 없다고 믿은 할리우드의 발악이라고 믿었습니다. 처음에는 인지도 낮은 감독이 인지도 없는 배우들을 데리고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에서 총대를 메고 이런 기술영화에 도전했고 재미를 봤던 것이 이제는 넘쳐나는 3D 영화를 만들게 되는 화근이 되었습니다.

 이런 할리우드의 고도의 불순한 장삿속이 신물이 날 무렵 마틴 스콜세즈가 3D, 어린이 영화를 만든다는 말에 한두 번 놀랐던 것 같습니다. 유행어처럼 ‘니가? 3D를?’이러면서 불신감에 사로잡혔었는데 미국 개봉당시의 폭발적인 호평에 조금 안심이 되었기는 했지만 그래도 왜 하필 이 감독이 갑자기 ‘기술’을 앞에 내세우는 영화를 만들까 하는 의구심은 여전했습니다.


 영화는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솔직히 영화수업 때 이 사람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저 마술사 출신이 영화라는 매체를 가지고 장난을 친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마틴 스콜세즈는 멜리에스를 재조명하면서 현대의 기술 영화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멜리에스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어떤 영화적인 ‘사조’나 ‘작가의식’ 같은 것이 없었던 시절인 까닭에 그에 대한 평가는 후대에 이루어졌겠지만 멜리에스가 그저 ‘영화적 속임수’로 썼던 기법이나 기술들이 작가들이 그것을 활용하면서 단순한 이야기의 전달 이상으로 영화를 풍부하게 했는데 현대의 3D 기술과 같은 기술적인 부분이 물론 주로 눈속임하고 돈 벌어먹는 상업영화에 많이 쓰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질 수 있는 기술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4
おおかみこどもの雨と雪

 


 선택과 책임이라는 것은 둘이 꼭 붙어 다니며 인간에게 매순간 겪게 하는 기본적인 부분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늘 선택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그 결과는 책임지지 않으려 하죠.

 한 여인의 일대기를 보여줍니다. 이 사람은 평범하고 집안이 부유하지도 않습니다. 앞날이 창창할 것 같지만 당장의 삶이 더 큰 짐입니다. 선택보다 숙명이 인생을 지배할 무렵 선택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담담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없습니다. 전혀 만날 수 없을 듯한 양 갈래의 길에 서서 단 하나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절대 돌아가거나 주저앉는 일이 없습니다.


 대개 영화에서 이런 것을 책임지는 여성의 캐릭터는 전형적으로 억척스럽기 마련인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굉장히 약해 보입니다. 하지만 한 편으론 끈기와 의지가 있죠. 이 연약한 여자에게 환경은 계속 바뀌고 심지어는 모든 것을 떠안아야 하는 순간이 와도 절대 끈을 놓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엄마라는 사람입니다.

 사실 주인공을 엄마로 삼았을 뿐 선택의 기로는 엄마에게서 또 다음 세대로 넘어갑니다. 물론 엄마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모성에 대한 이야기로 끝냈어도 충분히 감동적인 영화였겠지만 그 이후의 연속된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연장하고자 했던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음이라고 봅니다. 이처럼 ‘늑대아이’는 단순한 감동을 넘어 삶의 화두까지 전해준 좋은 영화였습니다.



#5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제 지인 중에는 영화를 예술적 가치나 극적 구조를 중심으로 한 문과형 감독과 기술적인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이과형 감독으로 나누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렇게 따지면 데이빗 핀처는 이과 과목을 이수하고 문과로 올라와서 둘을 병합하는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극도로 이성적인 두뇌구조 탓인지 영화를 볼 때면 인간미가 없어 보여서 그의 정교함에 혀를 내두르다가도 어떤 동질감을 느낄 수는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밀레니엄’은 ‘벤자민 버튼’이나 ‘소셜 네트워크’에서 외도에서 그런 그의 성향으로 다시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꼼꼼함에 무릎을 치게 만든 작품이었다고 봅니다. 


 이미 스웨덴 판 ‘밀레니엄’이 세계적으로 흥행을 거두었고 미국에서도 비영어권 영화중 가장 높은 수익을 거둔 영화로 기록되는데 영화화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영화를 리메이크 하겠다는 것은 노련한 감독일지라도 상당히 리스크가 큰 작업이라는 생각이듭니다. 실제로 핀쳐가 원작 소설을 읽고 스웨덴 판을 보면서 영화를 꼼꼼히 분석했을지 모르지만 스웨덴 판 작품에서 느껴졌었던 아쉬움과 단점들이 데이빗 핀처의 영화에선 완벽하게 보완이 되어있음을 느꼈습니다. 이 영화가 문학적인 듯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수학적인 냄새가 풍겼던 것은 아마도 이 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6
The Cabin in the Woods



 창조는 사실 일상적인 것을 비틀 때 온다고 했던가. 최근에 쏟아져 나온 호러영화들을 보면 ‘또야’ 소리가 나올 정도로 본전생각이 났던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이상하게도 할리우드에 유명한 호러영화들이 많았지만 의미 없는 리메이크와 리부트로 그들이 기존에 쌓아둔 틀마저 부정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그런 과오들에 대한 자성의 소리로 나온 영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죽이는 호러영화 한 편이 나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케빈 인 더 우즈’는 그들이 법칙처럼 만들었던 공포영화의 틀을 지키는 듯하다가 또 비웃는 듯하다가를 반복하며 결국은 그 모든 것을 안일하게 이용했던 사람들을 조롱하는데 그 모습이 호러 팬으로서 씁쓸하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했습니다.



#7
Looper

 


 루퍼는 씁쓸한 인생의 굴레를 Sci-Fi라는 장르영화의 틀로 담아낸 독특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마치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밤길을 걷듯 음습하면서도 한 편으론 쓸쓸한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는데 이 영화가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그렸기 때문이 아니라 운명론적인 세계관을 담아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논리적인 관객들은 이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퍼즐과도 같은 이야기들이 개연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짚어가면서 영화를 보겠지만 이 영화는 이야기의 구조보다는 인물과 사건 자체가 영화에 힘을 실어주고 있고 운명이라는 굴레 속에서도 더 나은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희망 같은 것을 엿볼 수 있는 감수성 풍부한 영화였습니다.



#8
남영동 1985



 가끔 극장에서 제공하지 않는데도 자체 4DX를 제공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놀라서 몸을 움츠린다든지 지루해서 몸을 뒤척인다든지 말이죠. ‘남영동 1985’는 그런 ‘체험’의 경지를 정신적인 부분으로 끌어올린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인간적인 공간이라 하기엔 너무도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 고문을 받는 피해자의 비중을 같이 두면서 영화가 허구가 아니고 사실처럼 느껴지고 우리가 관객이 아닌 마치 현장의 방관자처럼 느껴지고 극중의 시간이 실제 우리가 겪고 있는 시간처럼 느껴지는데 영화가 완벽한 사실주의를 추구하지도 않고 관객의 정서를 개입할 여백을 주지 않았음에도 마치 그런 느낌을 전달하는 희한한 영화였다고 봅니다.



#9
The Descendants

 


 이상하게 대사보다는 인물들의 모습만 그리고 조지 클루니의 쓸쓸한 표정이 많이 남았던 영화였습니다. 혹자는 서양 영화들은 슬픔을 내면으로 승화시켜서 깔끔하고 좋다고 그런데 정서적인 차이인가요? 저는 때로는 흘려보내는 것도 모든 것을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게 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엇인가 남겨진다는 것이 처음엔 쓸쓸하지만 남은 사람끼리 부대끼며 다시 삶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새롭게 시작됨을 느끼게 해 주었죠.



#10
Wreck-It Ralph



 디즈니 애니에는 늘 불만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캐릭터를 거부하거나 일상적인 삶을 거부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다루면서 동시에 비슷한 인물을 악인으로 놓는 것 말이죠. 그러면서 결과적으론 그들에게 거대한 시계의 작은 톱니바퀴가 되기를 요구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주먹왕 랄프’역시 초반엔 그런 느낌으로 출발하다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좀 더 진보한 큰 걸음을 보여주는데요. 기존엔 보기 힘들었던 다소 하드보일드한 세계관 속에서 각자의 개성을 갖춘 인물을 여럿 등장시키며 선과 악은 선택의 문제이며 자신의 세계에서의 남다른 존재감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남다른 그들끼리의 소통에 대해서도 다룬 유쾌한 애니메이션이었다고 봅니다.



특별언급

제 7의 봉인
- ‘예술영화’라는 선입견 그 봉인을 풀라

범죄와의 전쟁
- 나만 재밌어하는 줄 알았더니 의외로 많이들 좋아하실 줄은

더 그레이
- 정신 바짝 차리고 살자

인류멸망 보고서
- 우리나라 관객처럼 지나치게 ‘사실주의’적인 사람들에겐 저주받을 줄 알았다

어벤저스
- 팀워크란 무엇인가




<< 국내 미개봉작 >>


#1
Rockstar


“발리우드 위대한 러브스토리”

 


 영화는 사랑을 모르던 한 남자의 한 여자에 대한 감정을 미칠 듯이 파고듭니다. 그런데 단순히 그 이야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에 대한 부수적인 이야기를 간간히 던져내면서 극의 흥미를 동시에 주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전환에는 ‘음악’이라는 요소를 개입시키죠.

 ‘락스타’는 열 네 곡이나 되는 정말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노래들이 영화 속에 개입하면서 인물들의 변화하는 감정 선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고 봅니다. 단순히 음악을 테마로 한 영화라는 점을 떠나서 영화의 극적 장치와 음악이 서로 어떤 것이 우선하느냐의 갈등 없이 하나의 조화를 이루었다고 봅니다.


 영화에 쓰인 음악은 이처럼 영화와 함께 조화를 이루어 영화적인 감성을 더 풍부하게 하고 그 감정을 영화의 내용 그리고 극적 구성의 변화라는 영화적인 요소와 맞물려서 극대화 시켰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영화를 예로 들어보면 마크 웹 감독의 ‘500일의 썸머’의 ‘You Make My Dreams’ 같은 장면이죠. 물론 뮤지컬 싫어하는 관객들은 ‘뭐야’하고 궁싯거릴 수도 있지만 이 뮤지컬 시퀀스는 인물의 심리를 조금 더 관객에게 체감하게 할 만한 요소로 음악을 활용한 셈인데 인도에서 이런 것들을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영화 ‘락스타’에서의 음악의 효과는 단지 관객들의 주목을 끌고 지금까지의 또는 앞으로의 내용에의 언급이라는 좁은 범위가 아닌 영화 전반의 정서의 전환이나 환기를 다루고 있으며 그것이 효과적으로 작용합니다.

 물론 이런 시도와 노력 장치들이 모든 관객에게 적용되지 않았던 까닭에 이런 요소의 인정은 상당히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인도영화의 사랑에 대한 테마와 음악이 주는 요소들이 인도영화에 더 애착을 갖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2
Gangs of Wasseypur



“숨막힐듯한 늑대들의 역사”



 와시푸르에서 벌어진 칸 일가, 라마디르, 쿠레쉬 일파의 갱단간의 전쟁은 격동기를 기점으로 자본 자체가 인간의 욕망으로 직결되던(사실 그것은 지금도 다를 바 없지만) 시대에 떵떵거리고 살고 싶었던 한 불한당과 권력자와 연계된 범죄 집단 간의 갈등 그리고 복수를 위한 복수는 상황이 정리되고 안정 될 무렵에 서로가 전쟁을 부추기면서 극단으로 치닫습니다.

 정당성을 가지고 있던 복수는 새로운 권력의 창출로 변질되어가고 구세대가 가졌던 기품이 연예인병 걸린 양아치처럼 변해가며 폭력이 폭력을 낳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냉소주의 극은 마치 마틴 스콜세즈의 ‘좋은 친구들’을 봤을 때의 충격적이고 신선하면서 범죄 세계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잘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대부’와 같은 영화에서 느껴지는 한 암흑기를 한 줄기처럼 바라보는 역사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요. 


 처음에는 마치 ‘킬빌 1’에서 열광하고 ‘킬빌 2’에서 늘어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처럼 part 2가 굳이 할 필요 없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영화를 같이 본 사람들과 part2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와시푸르의 갱들’은 어쩌면 인도영화 마니아나 일반 시네필들이나 ‘인도영화에 대한 고정적인 시각’ 때문에 회피될 가능성이 많은 영화지만 인도영화에 대한 고정적인 인식을 지우고 앞서 언급한 마틴 스콜세즈의 ‘좋은 친구들’이나 두기봉 감독의 ‘일렉션’같은 영화를 괜찮게 봤다면 가히 추천할만한 영화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3
Safety not guaranteed

 

 

 가끔 독립영화 하면 생기는 나름의 ‘편견’같은 것들이 존재했습니다. 우리는 자본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의 마음에 있는 소리를 전할 거야 같은 것들 말이죠. 물론 그런 목소리들은 좋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 정도의 예산 밖에 없지만 대신 이야기를 이렇게 구성하면 어떨까 하는 것들 말이죠. 산장에 놀러간 젊은 애들이 악령을 깨운다든지 사방이 트랩인 정사면체 안에 갇힌다든지 하는 이야기들 말이죠.


 어쩌면 판타지나 공상 과학에 어울릴 것 같은 ‘타임슬립’이라는 코드가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처럼 직접 시간을 유영하면서 벌어질 것 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우리가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꼭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마치 ‘건축학 개론’이 그랬던 것처럼 과거의 결과로서의 현재를 만나는 것도 하나의 과거로의 여행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죠.

 ‘안전은 보장할 수 없음’이 보여주었던 것은 기술적, 자본적으로는 부족하지만 우리가 환경은 남들보다 풍요롭지 않은 대신 그 영화들에 느낄 수 없었던 다른 멋진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패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4
春嬌與志明

 


 이런 얘기를 하면 참 우울하지만 연애물을 좋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공감이 가기보다는 남 얘기 같아서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끼리는 달콤달콤, 슬픔슬픔 한데 정작 그것이 제게 오면 ‘뭥미’로 바뀌는 소격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이죠.

 팡호청의 ‘Love in a Puff’에 이은 ‘Love in the buff’는 정말 ‘그냥 연애담’입니다. 그냥 그 시간만 재미있게 보고 잊혀질 그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제 기억 속에 남았던 것은 아무래도 이 영화가 마치 연애 시뮬레이션을 하는 듯한 착각을 주었기 때문은 아닌가 합니다.


 영화는 상당히 연애라는 것을(이 부분이 표현하기 참 애매하긴 하지만) 사실적으로 접근하면서 동시에 남자의 입장으로서는 판타지에 가깝게 조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남녀 사이가 아닌 인간관계라도 사랑과 배려로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는 사람 사이의 모습들을 맛깔스런 대사로 진솔하게 그려나가고 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모태 솔로인 저로서는 살짝 그들만의 감정이 궁금해지곤 합니다.



#5
低俗喜劇

 


 영화를 제작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팡호청이 만든 홍콩의 III급(성인용 등급) 영화 전문 제작자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칙칙할 수 있는 자본과 배우와 B급을 넘어 C급으로 가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소 과장되어 보일 수 있지만 상당히 흥미롭게 포장합니다.



#6
Parada

 


 대개 사회적 약자나 소수를 다룬 영화들이 주로 선택하는 과오중 하나가 너무 센티멘털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회가 자신들을 용인하지 않는 것이 억울할 순 있겠지만 그래도 호소에 의한 동정보다는 건강한 어울림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버리면 격리대상이라는 팻말을 보호구역이라는 팻말로 바꿔 버리는 결과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루마니아 못지않게 동구권에서 활발하게 작품을 내놓는 세르비아에서 나온 이 영화는 그런 우려를 완전히 까지는 아니지만 최대한 덜어내고 있습니다.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추면서도 메시지를 잃지 않았던 좋은 영화였다고 봅니다.



#7
Modus Anomaly

 


 조코 안와르 감독이 돌아왔습니다. 물론 아직 많은 이들에게는 듣보잡이지만 점차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영화계에서 사실상 주목해야 할 영화는 ‘레이드’가 아닌 안와르 감독과 ‘모두스 아노말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충 보면 영화는 그냥 슬래셔 호러영화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공포영화 상에서 너무나 전형적이었던 공간감의 재정의 실체가 주는 공포에 대해 기존의 틀을 완전 바꾸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크게 비틀고 있는 수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
English Vinglish

 


 새로운 말을 배우는 데에 있어서 그것을 필요로 하기까지의 과정보다는 그 이후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 영어 완전정복에 있어서 인도의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던 현모양처라는 캐릭터를 가공된 세계 밖으로 끌어내 하나의 인간적인 가치를 준 동시에 자존감을 심어주고자 하는 영화였습니다.

 결국 ‘나’를 찾고자 하는 140분간의 수업은 비록 현실적으론 모르겠지만 영화에서만큼은 진보적인 인도여성들의 자기 찾기에 대한 메시지가 아니었나 합니다.



#9
Kahaani

 


 영화 ‘Kahaani’는 힌디어로 ‘이야기’라는 제목답게 이야기에 충실함으로서 관객들을 집중시키는 동시에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양념을 치면서 영화에 빠져들게 하고 있는데 이제 어느덧 인도에서도 복잡한 심리 구조를 가진 영화와 장르영화가 속속 출연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기류를 느낌과 동시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두르가 여신 축제’를 배경으로 하면서 주는 공간적으로 인도적인 면모와 이제는 어느덧 인도의 주류영화에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여성 캐릭터들의 힘을 잘 반영한 영화라는 점이 아니었나 합니다.


#10
Holy Motors

 


 ‘홀리 모터스’라는 영화는 재밌게 보긴 했지만 정말 올 해 최고로 꼽을 영화였나 싶었는데 자꾸 생각나서 꼽아봤습니다. 어쩌면 볼 당시에는 ‘최고다’라고 하면서 막상 올 해 뭘 봤지 하고 정리 할 때 곁에 없다면 정말 좋은 영화였나 싶습니다.

 이 영화는 그 반대 지점에 있는 영화입니다. 막상 볼 때는 ‘글쎄다’ 싶으면서 자꾸 생각나는 영화였달 까요. 레오 카락스라는 감독이 자신의 친구 드니 라방을 개고생 시켜 두 시간 가까이 신 노릇을 하려고 했던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특정 영화를 언급하긴 모하지만 비슷한 부류의 영화들이 작가로서의 피해의식이나 운명론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우울증에 시달려했던 것과 달리 ‘에잇 두 시간 동안 이 세계 다 내꺼’하는 뚝심에 통쾌함마저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