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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영화 이야기/영화 잡담이련다

아직 인영팬은 새로운 영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끝나고 쓴 글이었고 2013년 11월 19일에 마이그레이션했습니다.
올해는 개인적으로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어서 정리해보았습니다.


영화제 상영작이었던 '잉글리쉬 빙글리쉬'




 2003년 발리우드 특별전이 시작된 이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PiFan)에서는 화제가 되는 인도영화들을 소개해왔습니다. '세 얼간이'의 경우는 영화제를 통해 큰 호응을 얻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인도영화중 하나로 남아있기도 하죠.

 10년이 지난 2013년 역시 화제의 인도영화들이 영화제를 통해 소개가 되었고 아누락 카쉬압이 감독상을, 아미르 칸의 '탈라쉬'가 유럽 판타스틱 영화제 상을 수상하면서 입지가 올라가기는 했지만 예전만큼의 열기는 느낄 수 없었습니다.


영화제 상영작인 '탈라쉬' 중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예전부터 느꼈던 인도영화를 수용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평행성과 인도영화를 수용하는 팬들 다수에게서 볼 수 있는 일방향성이 작용하지 않았나 합니다.

 평행성이라 함은, 예전에도 쭉 느껴왔지만, 영화제를 향유하는 시네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양극화 현상을 말하며, 일단 특정 영화가 우선순위에선 멀어지는 경우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그것은 유독 인도영화 뿐 아니라 공포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공포영화를, 일본영화가 취향이 아닌 사람은 일본영화를 우선순위에서 떨어뜨리면서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선택하게 되는데, 아무리 특정 인도영화가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관객의 욕구에선 그것이 선택 사항이 될 수 없으며, 또한 영화에 대한 편견까지 작용하면 인도영화는 배제될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관객들로 하여금 인도영화를 선택하게 하려면 인도영화에 어느정도 관심이 높은 사람들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어야 하는데 사실 우리중 어느 누구도 그걸 이야기해주고 있지는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위 영화를 좀 안다는 시네필 계열에서는 이쪽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매우 낮아보이고 대부분의 인도영화 팬들은 소위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맛살라 영화로 진입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위 '우리가 잘 아는'인도영화를 우선적으로 찾게 됩니다.


영화제 상영작인 '좀비야 내가 간다' 중




 그런데 늘 강조하지만 인도영화에서 가장 큰 시장을 차지하는 힌디어권 영화, 소위 발리우드라 불리는 영화들은 변해가는 추세입니다.

 단순히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일이나 우정, 사회적인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그리면서 판타지보다는 점점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안정된 연출력을 보이는 작가 감독군이 등장하며, 성인 등급인 A등급 영화 시장이 활성화 되고, 또한 장르영화가 활성화 되는 면모를 보이면서, 2000년대 초반, 혹은 그 전에 인도영화를 접했던(개인적으로 저는 이들을 1세대라 부르는데) 계층들이 말하는 소위 정통 맛살라 영화들의 입지는 조금씩 좁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요. 올 해 PiFan에서 선보였던 영화들이 현재 그런 발리우드 영화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영화였고 이 영화들은 실제로 인도 개봉당시에 평단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영화들이라 적어도 올 해 PiFan에서의 인도영화의 흐름만큼은 인도영화의 질적인 성장을 보여주는 현재를 잘 반영하고 있는 좋은 작품 선정이라 생각했습니다.


영화제 상영작 '잉글리쉬 빙글리쉬' 중




 하지만 이런 느낌은 다른 인도영화팬들에겐 와닿지 않는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팬들 사이에서 영화제에 대한 반응 자체가 시큰둥했을뿐더러, 혹자는 맛살라 영화가 없어서, 혹자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영화가 오지 않아서 안가겠다는 분들도 꽤 보였던 것을 보면, 아직도 팬들은 여전히 맛살라 영화나 유명 배우를 영화 선택의 기준으로 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도 약간 그런 수용의 필요는 있지 않았나 합니다. 그러나 팬들이 찾는 맛살라 영화중에 2012년에 팬들 사이에서 회자될 만큼의 가치를 가진 정통 맛살라 영화는 '라우디 라또르'나 '다방 2' 정도였다고 생각하는데, '라우디 라또르'는 돌격 라토르라는 제목으로 이미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니 '다방 2' 정도가 올랐으면 어느정도 균형을 차지했겠지요. 하지만 그 외에는 어느 누구도 아쉬움은 갖되 이렇다할 영화를 내세우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작년에 재탕도 모자라 '옴 샨티 옴'이 삼탕으로 상영이 되었을까요.


 사실상 현실이 이렇다보니 맛살라 영화로 인도영화에 맛을 들였던 팬층은 현실을 적당히 수용하거나 맛살라 영화가 있던 과거로 소급하거나 맛살라 영화의 원형이 남아있는 남인도 영화를 파고들기 시작했는데 유형이야 어쨌든 이들 영화들이 영화제를 통해 관객층과 만나기는 쉽지 않아 보이기는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인도영화가 질적인 성장을 해서 단순히 인도영화하면 춤과 노래 뿐인 바보같은 영화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괄목할만한 영화로 인식된다면 반가울 일이지만 아직까지 팬층 바깥의 사람들의 무관심과 맛살라 영화를 가리켜 제대로된 영화(이런 표현은 누가 만든건지... ㅡㅡ;;)라고 일방향성을 유지하게 만든 기존 팬층의 움직임속에서 약간은 부진했던 올 해 PiFan에서의 인도영화 세일즈를 보면 지금 시기는 극복해야 할 과도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는 맛살라 영화가 인도영화의 랜드마크처럼 여겨진 만큼 이런 원형을 가진 영화를 상영할 기회를 주는 것도 하나의 배려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내 업계에선 소위 '대중성'이나 '보편성' 운운하면서 이런 맛살라 영화들이 배제되거나 또는 소개되어도 삭제되는 안타까움을 낳으니 말이죠.




 인도영화의 내적으론 비약적인 성장과 외적으로는 시장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왠지 국내 영화제쪽에서나 업계에선 소외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팬층도 점점 파편화되거나 초기엔 열성적으로 집단화를 형성했던 이들이 지금은 조용히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는데 그친 모습을 보면 뭔가 계속 생산적인 콘텐츠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음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이번 PiFan의 노력은 진보적었고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지만 이와는 달리 현실적인 배경을 짚어보면 한 편으로는 너무 앞서가지는 않았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내년은 공존을 위한 약간의 타협도 필요하지 않나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