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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이야기들

텔레비전(Television): 통제와 규율에 대한 유쾌한 성찰


 


  

  배에 타고 있던 남자는 신문지 위에 흰 종이를 붙이면서 흰 종이에 가려진 한 노출이 있는 여배우의 사진을 몇 번이고 몰래 들여다봅니다. 영화 ‘텔레비전’은 이렇게 시작하는데요, 처음에 이 장면을 보고서 저는 뭔가 성적인 코드가 통제된 사회를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는 한술 더 떠 아예 이미지 자체를 금하는 마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영화는 초반부에 상황적 배경을 집약해 표현함으로써 빠른 시간 안에 관객이 영화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안내를 합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하얀 장막을 스크린 사이에 두고 방송국 리포터에게 ‘이미지를 제거한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촌장의 인터뷰장면이었는데요. 스크린이 주는 단절의 이미지는 물론이고 마치 스크린은 화면은 상영되지 않은 채 목소리만 나오는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촌장과 그의 수하들은 너무도 완곡해서 소통 불능 상태에 이른 까닭에 감독이 의도한 부분이긴 했겠지만 그 소통 불능 때문에 약간은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앞으로 러닝타임 두 시간 동안 저런 사람을 봐야한다니 하는 생각에 약간은 아찔하기도 했습니다.

 다행이도 촌장 못지않게 사건을 이끌어 나갈 사람으로 촌장의 아들과 그와 엮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약간 이분법적이기는 하지만 꽉 막힌 기성세대와 겉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드러내지는 않으나 새로운 세대라는 이유로 기존의 틀에서는 벗어나려는 젊은이들 간의 갈등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있지요.


영화 속 통제라는 것의 의미


 영화는 대중성을 의식해서 본격적인 드라마틱한 전개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젊은 남녀의 ‘이미지가 필요한’ 소통을 보여주지만 사실 저는 이 영화의 전환점은 마을의 한 교사가 TV를 들여올 때부터라고 봅니다. 힌두교도라 모슬렘적 규율에서 벗어난 이 선생님의 미래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정당성을 상실한 강제적인 규율은 소심한 반대급부들을 양산하게 되었는데 이들이 선생의 집에 몰려들게 되면서 촌장은 사람들의 신앙심이 흔들리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점점 주민에 대한 사상적인 통제는 그 정도를 넘어서게 됩니다.

 감독은 영화를 우화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소 권력의 비현실적인 통제를 그렸지만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은 몇 가지 가정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이 영화가 낯선 나라인 방글라데시에서 온 만큼 실제 방글라데시에서는 왠지 그런 규율과 통제가 실제 벌어질 것 같다는 것. 다른 하나는 만약 영화 속 규제가 현실적이든 비현실적이든 그것이 영화 속에서는 표면적으로 우습게 보여졌을지라도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결코 웃으며 넘어갈만한 소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TV를 산 교사 이야기로 돌아가 왜 그런지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사실 마을에서 유일하게 힌두교도라고 허락된 TV였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무시하고 지나갈리 만무합니다. 이미 젊은이들만 해도 뭍에 나가면 발리우드 영화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니까요. 곧 이것은 촌장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고 촌장은 텔레비전보다 더 높은 삯을 지불하고 마치 악마를 봉인하듯 TV를 강물에 던져버립니다. 이 때 마을의 젊은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환호하는데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규율이라는 것은 그것이 전통이 되었든 인습이 되었든 사람들에게 결속이라는 명목 하에 무시무시하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이 있었다고 그 교사에게 물리적 강압을 행사한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만약 그런 것도 하나의 훈육의 방법으로 허락된다면 인간의 공포심을 자극할만한 ‘본보기’들이 행해졌을지 모르죠.

 TV사건이 터진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젊은이들이 읍내에 몰로 영화를 보러갔다가 적발된 적이 있고 나서는 마을 비자제도를 마련하는데 이 또한 영화를 보다가 걸린 젊은이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마을에서의 통제의 수단은 갈수록 늘어납니다.


사람들에 대하여




 영화를 보면 마을을 통제하는 촌장에 이르기까지 등장하는 사람들이 딱히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마을을 걱정하는 착한 사람들이기도 하고 욕망은 있지만 그것이 탐욕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순박해 보이는 동화에 등장할 법한 시골사람들이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이죠.

 대개 전형적인 영화는 갈등요소를 선과 악으로 잡지만 이 영화는 그런 이분법적인 사고를 탈피하기 때문에 인물들은 상당히 입체적으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요즘 그런 구조의 영화들은 사람들에게 악한 본성이 내재되어있음을 전제로 하는 반면 이 영화는 선한 사람들 사이에도 갈등이라는 요소를 담아내는데 바로 사상이라는 개념을 소재로 쓰고 있기 때문이죠.

 신념을 가지고 사는 것은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맹신이 되면 독선과 소통의 단절을 낳게 됩니다. 이런 모습은 영화에선 우화적으로 그려지기는 했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이 봐 온 것들이지요.

 저 역시 개개인은 선하지만 주변에 종교적 혹은 정치적인 믿음, 더 나아가 자신이 너무나 강력하게 믿는 것을 기준으로 자신이 인정하지 못하는 것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그 분들이 사고의 유연성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너무나 깊게 뿌리 뻗을 때 자신의 가치관이 아닌 다른 것들을 부정하게 되고 이 때문에 소통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후반부에 약간 감정이 격해지는 감이 있기는 하지만 영화 ‘텔레비전’은 충분히 고착화된 가치관과 그로 인한 불통을 그린 재미있으면서도 잘 만든 영화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낯선 영화에 대한 닫힌 사고부터 열어야 하는 부담은 우리가 먼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닌가 합니다.


 Verdict  통제와 규율에 대한 유쾌한 성찰  ★☆



* 인도영화 블로거 아니랄까봐 인도영화와 관계된 이야기를 하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