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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영화 이야기/영화의 전당

'트리쉬나' 영국 감독이 만든 수정주의 맛살라 영화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저는 먼저 ‘더버빌가의 테스’를 읽지 않았다는 것을 먼저 언급하고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원작을 읽지 않았다는 조건이 제가 이 영화를 비판하기에 자격이 부족한 요소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원작을 각색하여 만들 때는, 아니 원작을 충실하게 반영하다고 하더라도, 연출자의 성향이나 연출력 등에 의해 원래 작품이 변하기 때문에 원작을 ‘참고’한 것이고 나머지는 작가의 새로운 작품으로 보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원작을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얻는 제약은 있을 거라고 봅니다. 이를테면 인물과 사건은 어떻게 변형 되었는가에 대한 부분을 분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순전히 영화 자체로만 놓고 봐야 하는 것은 있습니다. 하지만 원작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데는 조금 더 자유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트리쉬나'의 배경이 된 라자스탄]


 영화는 영국인인 감독이 인도를 바라보는 시각을 적용했는지 인도의 아름다운 배경을 보여주고 외국계 젊은이들의 모습을 한 바탕 훑어냅니다. 비틀즈처럼 도를 깨우치러 간 케이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오랜 유적들,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러 오는 까닭에 관광지로 어디가 좋았다는 잡담들을 나누는 이야기를 합니다. 


 주인공은 트리쉬나이지만 트리쉬나는 처음부터 등장하지 않습니다. 나름 의도적일 수도 있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걸 수도 있지요. 또한 배우 리즈 아메드가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처음부터 누가 이 사건을 끌고 갈 인물인가도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곳에 잠깐 머물다가 떠나갈 이방인 남자와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며 둘을 같은 공간에 놓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사실 그런 모습은 낙타 사파리가 있는 사막길 옆을 달려가는 주인공과 친구들의 모습에서부터 읽을 수 있던 것들이지요.


 주인공 제이는 마치 발리우드 영화의 주인공처럼 트리쉬나에게 꽂혀 각종 선의를 베풀지만 영화가 미장센이나 연기 연출에 있어서 극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사실주의적으로 풀어나가고자 하는 경향이 있던 까닭에 그런 극적인 캐릭터 자체가 약간은 뜬금없어 보이기는 했습니다. 그런 제이의 캐릭터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집니다. 영화 초반 위기에 빠져있던 트리쉬나를 구해주는 모습에서는 진짜 극적인 요소만 뺀 버전의 맛살라(인도식 뮤지컬) 영화를 보는듯한 흐리멍덩한 기분이 들기도 하더군요.




 

 전 영화 속의 남자들의 권태로운 모습이 계속 보였습니다. 대표적으로 ‘누워있는 두 남자’로 대표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바로 트리쉬나의 아버지와 영화 후반부의 심적으로 타락한 제이의 모습에서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반면 영화 속의 여성들은 정말 부지런합니다. 트리쉬나와 인도의 여성들은 어느 곳에 붙여놓아도 이 일 저 일을 척척 해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은 인도 남성의 권태성과 착취라는 모습으로 보이는 듯합니다. 이를테면 고액의 주급(2,500루피로 우리 돈으로 4만 원 정도)을 위해 딸을 보내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밤거리에 여자에게 치근덕대는 남자들이나 춤선생(!)을 미끼로 접근하는 모습은 이상하게 인도 남성들의 무력함이나 혹은 착취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아무래도 인도빠다 보니 이런 비판을 받을 거란 생각은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인도의 불편한 모습을 비판하면 성역을 건드린 것 같아 불편해 하는 모습이 드러난다고 할까봐. 이 불편함이 그런 모습 때문은 아니라고 해명하고 싶었는데 그 느낌의 근원적인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도 이방인인 영국인이 뭔가 선민의식을 가진 듯 인도의 현 문제에 대해 메스를 들이대는 모습이 일단 고깝지 않았지만 단지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그런 이유에서 그쳤다면 누군가 제게 이런 식의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뭔고 하니...


 만약 특정 종교를 비판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꼭 그 종교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요. 제가 ‘트리쉬나’에서 불편하게 느꼈던 것은 단선적인 면만 보여준 뒤 계도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자극을 보여주곤 뒤로 빠지기를 계속하다가 영화의 결말부에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직접 언급하기가 모하지만 영화의 결말과 학교에서 (주로)여자 아이들을 비추면서 평등을 논하는 선언문을 아이들이 읊는 모습을 교차했던 것은 분명 영화를 그런 의도로 만들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글쎄요... 이방인이 본 인도의 부조리한 모습은 그런 거였다고 이야기하지만 당신이 이야기하는 것도 한낱 허구에 지나지 않겠습니까.





 영화는 ‘더버빌가의 테스’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마이클 윈터바텀이 텍스트로 삼고자 한 것은 발리우드의 맛살라 영화에 대한 비판이 아닌가 합니다. 그것을 맛살라의 텍스트로 풀어나가니 이른바 ‘수정주의 맛살라 영화’라고나 할까요?


 대니 보일의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아이러니하게 둘 다 프리다 핀토가 주연) 그런 텍스트로 인도의 현대의 흐름에 버려진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면, 영화 ‘트리쉬나’는 사실주의와 극적 구성을 골고루 섞으면서 ‘슬럼독 밀리어네어’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영화는 트리쉬나와 제이에 대한 세 파트로 구성된 이야기를 통해 그런 것들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처음 트리쉬나는 제이의 호의로 몰락해가는 가정을 일으키고 제이의 사랑을 얻습니다. 이는 샤룩 칸 같은 배우가 등장했던 맛살라 로맨스를 반영한 결과물과도 유사하지요. 부잣집 남자에 자기밖에 모르며 어려울 때마다 자신을 구원해주는 남성의 모습은 마치 그런 영화들을 반영한 듯합니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극적인 구성을 탈피하고 사실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죠. 영화는 세트 촬영을 극소화 하고 실제 현장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각본 자체가 내러티브만 극적 구성을 취하고 대사나 배우에 연기에 있어서는 상당히 사실적인 모습을 주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제이가 트리쉬나와 새장의 그물 벽을 사이에 두고 휘파람을 부는 모습은 상당히 드라마틱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매우 덤덤하게 담아버립니다. 






 두 번째 챕터에서는 아예 발리우드 영화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화려한 스크린 뒤로 빠져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요. 여기서도 뭔가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지만 아마 봄베이에서는 촬영장의 뒷모습이나 도시의 건물들, 그리고 낭만적인 제이와 트리쉬나의 모습만이 던져질 뿐입니다. 


 앞서 언급한 사기꾼으로 추정되는 춤선생의 일화가 등장할 듯하지만 이 소재는 제이의 재등장과 함께 흐지부지하게 끝나고 맙니다. 그리고 소위 ‘물주’의 부재로 인해 트리쉬나의 삶도 영화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세 번째 챕터는 아마 영화 ‘트리쉬나’에서 가장 극적이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세트 자체가 왕궁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넓은 공간보다 좁은 공간에서 인물의 심리가 드러나는 이야깃거리를 많이 던지는 까닭이겠지요. 그런 까닭에 다른 챕터들에 비해서 상당히 이질적이어 보입니다. 더구나 주인공 제이의 변심과 극적인 상황까지 더해져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죠. 


 마이클 윈터바텀이 이런 콘셉트를 의도한지 모르겠으나 인도 신화에서 신들의 사랑이야기는 각양각색이지만 놀랍게도 신이 다른 신으로 혹은 인간의 모습으로 환생해서 같은 여신과 함께 다른 모습의 사랑이야기를 펼쳐나간다고 합니다. 


 어쩌면 제이와 트리쉬나는 같은 인물일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두 번의 환생이라고 봐도 무방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아예 다른 세계의 세 쌍의 다른 인물이라고 봐도 되겠지요. 


 그런데 이런 ‘화신’으로서의 모습을 일각에서는 가부장적인 사회에 정당화 시키려는 경향이 있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너의 남편은 신의 화신이므로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 하라는 뭐 그런 것 말이죠. 트리쉬나는 그런 관념에 사로잡힌 것 같지는 않지만 마지막에는 복수의 여신인 두르가로 환생해서 복수를 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지요. 여담이지만 인도는 여신이 더 무서운데 실제 사회에서는 왜 그러는지들...



  그 밖의 짤막한 이야기들...


 《 1 》




 뭄바이 챕터에서 제이는 조그만 식당에서 영화 스태프들을 만나는데요. 이들은 실제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곰탱이같이 생긴 아누락 카쉬아프는 실제 발리우드의 거물 감독이고 아밋 트리베디 역시 내로라하는 음악 감독이지요. 칼키는 배우 칼키 코츨린으로 세 사람은 영화 ‘Dev.D’에서 처음 만났지요. 


 당시는 아누락 카쉬아프 감독과 칼키 코츨린이 결혼을 한 상태인데 지금은 서로 다른 애인이 생겨 헤어진 상태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영화에서 맛살라 촬영 장면이 등장하는데 당시 모델 출신이었던 배우 후마 쿠레쉬가 아이템 걸로 출연하는데 그녀는 나중에 아누락의 영화 ‘와시푸르의 갱들’을 통해 스타가 되고 나중에는 아누락과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구여친과 현여친이 동시에!!!)



 《 2 》

 아마 관객들은 트리쉬나의 답답한 모습 때문에 복장이 터졌으리라 봅니다. 특히 트리쉬나의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비로소 관객들은 그녀가 울면서 숙소로 들어온 이유를 알게 될텐데 우리의 입장에선 ‘트리쉬나도 제이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저게 울 일이었나’하고 당혹스러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에선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는 않지만 영화는 트리쉬나가 보수사회 속에 길들여진 인물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고 봤습니다.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닌 사회에서 순결을 잃는다는 것은 이들에게 명예를 잃어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거든요. 물론 그걸 알고 나면 더 답답해질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런 문화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뭐가 그리 꽉 막혔느냐’고 재단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다만 영화의 급격한 결말을 보면 관객들은 트리쉬나의 명예를 비운 자리에 사랑하는 사람 대신 멍에가 들어찼다는 것을 확인 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명예하니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트리쉬나가 있는 곳은 시골마을로 인도의 시골마을은 과거 우리나라의 전통 마을처럼 ‘문중’이 한 촌락에 집단 주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따라서 좋은 소문이든 안 좋은 소문이든 삽시간에 퍼지는 것은 일도 아니지요. 


 아마 명예살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바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악습은 아직도 인도에서 계속되고 있고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마을의 어른들과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 멀리 엄마와 소똥으로 추정되는 것을 정리하고 있던 트리쉬나는 삼촌 댁에 가서 지낼 것을 명령받습니다. 아마도 명예살인과 같은 변을 당하는 대신에 일종의 추방과 같은 조치를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남편이 높은 카스트에 있는 사람이라 그럴 것이라 봅니다) 


 트리쉬나가 삼촌 댁으로 떠나던 날 어머니와 할머니는 트리쉬나에게 축복을 빌어주지만 (어른의 발을 만지면 어른은 두 손으로 머리를 쓸어주는 의식 같은 것을 하는데 이게 인도식으로 복을 빌어주는 것이죠) 아버지는 복을 빌어주기는커녕 무척이나 싸늘하게 반응하죠. 



 《 영화의 결말부에 대한 이야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그밖에...
- 프리다 핀토가 힌디어를 쓴 걸 처음 들었네요. 전 외모만 보곤 유학파(!) 출신의 배우인 줄 알았어요
- 영화 오프닝에서 낙타 사파리가 나오는데요. 인도에서 낙타 사파리가 유명하다고 하지만 실제 인도에서 낙타 사파리를 해 보신 분의 말에 따르면 그 사막이 중동처럼 전부다 사막이 아니라고 합니다. 환상은 일단 접으라고 하네요. ㅋㅋ



 ‘트리쉬나’는 괜찮은 만듦새를 가지고 있지만 맛살라 영화의 텍스트를 가지고 사실주의적인 표현으로 담아낸 영화를 만든 까닭에 인도영화를 기대하고 갔던 관객들에게는 다소 재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저 같은 경우는 비판은 좋지만 뭔가 가르치려는 감독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 불편하게 느껴졌던 영화였습니다. (아니면 차라리 끝까지 이방인으로서의 시각을 갖던가. 그게 아닐 거면 공정한 시각으로 현상을 이야기하든가) 


 이 영화도 ‘인도’라는 시각으로 제가 못해 본 여행 빼고는 많은 것들을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었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혹시 다음에 인도영화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 때는 진짜 꼭 함께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