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영화 이야기/키워드로 본 이 영화'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5.18 3화 -『Rang De Basanti』의 자유
  2. 2010.05.07 2 화 -『델리(Delhi) 6』의 거울 (2)
  3. 2009.10.26 1 화 -『블랙』의 교육(敎育)

 자유분방한 성격의 DJ와 무슬림 집안이라는 종교적 사정에 민감한 아슬람, 까칠한 부잣집 도련님 카란과, 생각은 많아 보이지만 그저 그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수키 네 친구는 어느 나라 대학교에서 볼 수 있는 그야말로 널럴한 청춘들입니다. 그러던 그들은 절친한 친구인 소니아를 통해, 영국에서 인도로 프로젝트차 건너온 수(Sue)라는 영국 아가씨를 만나게 됩니다.






 수의 목적은 바로 델리의 학생들을 캐스팅 해 인도의 독립 운동을 조명하는 역사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 바로 수의 할아버지가 인도의 한 교도소에서 교도관으로 지내면서 한 독립운동가로부터 받은 일기장이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찬드라셰카 아자드, 바갓 싱, 시바람 라즈구루, 아쉬파쿨라 칸, 람 프라사드 비스밀은 각각 인도의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기수들로, 소니아의 친구들은 이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부족했고 수가 찾은 사람은 바로 DJ 일당과 마찰을 일으키던, 특히 무슬림에 대해 반감이 있는 학교 극우 학생회 소속인 락스만. 하지만 그의 탁월한 지식과 애국심으로 이들은 팀을 이루게 됩니다.



 영화가 촬영되면서 장난처럼 시작되었던 일들,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친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진지해지고 성숙해져 갔습니다. 독립운동이라는 것이 현대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잘은 모르지만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가면서 그들의 비어있던 가슴속엔 무엇인가가 차오르게 되었지요.

 하지만 어느 날 소니아의 남자친구인 아제이가 공군전투기 비행 중 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기체 결함이 발견되었지만 정부에서는 은닉하기 급급했고, DJ와 친구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섭니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했던 것은 경찰의 과잉 진압이었죠. 이 사건으로 친구들은 이제는 자신들이 행동해야 할 때임을 느끼게 됩니다.


 영화 ‘Rang De Basanti’는 2006년 개봉 당시 엄청난 이슈를 몰고 옵니다. 프로듀싱 단계에서는 네 명의 20대 청년들이 인도의 독립에 대해서 배운다는 내용의 이야기로 알려졌지만 현대 인도젊은이들의 무사 안일주의와 맞물려 현대 정치사의 부패함에 대한 이야기를 동시에 다루어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런 다소 무거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관객들의 찬사와 함께 그 해 개봉된 인도영화 흥행수익 상위 5편에 들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영화의 배경이 된 델리의 대학생들이 이전보다 정치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이른바 ‘RDB 효과’를 가져온 것은 물론, 인도의 영화제에서 각종 상을 휩쓸고, 영국 BAFTA 시상식에서는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영화 'Rang De Basanti'에 대한 인도 언론의 반응
남자가 '우리나라의 애국심과 이상 그리고 부패에 대해 다루고 있어'라고 하고있다.



 제목인 ‘Rang De Basanti’는 노란색을 칠하라는 뜻으로 영국 제국주의 시절 인도인들에게 민족주의를 고취시킨 말이었지만 현대적으로 해석해 보면 인도의 국기인 노란색의 의미인 용기와 희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현대의 사회가 편하다 보니 우리는 자유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살아갑니다. 정부와 언론이 어떤 속내를 감추고 있는지 모르고 살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생활에 바빠서, 또 어떤 이들은 즐거움을 쫓느라, 또 다른 이들은 사회와 정치의 시스템에 문제를 찾을 것이 아니라 개인의 생각과 행동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 대해서 무관심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치는 사회를 조율, 심지어는 조종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인간이 그것으로부터 무관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일제치하나 군사정권시절에도 밉보이지 않고 나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살면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아니라고 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5월 18일입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 자유를 위해 희생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고,
 또 우리가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라.즈.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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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의 많은 종교에서는 인간은 신의 형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가르칩니다. 그 뜻은 모두가 고귀한 존재이며 또 그렇게 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물론 델리 시장 통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말이죠.



 사실 우리는 도시의 사람, 고학력 사회의 사람들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인간적인 면모를 이 델리 시장의 사람들에게 느낍니다. 소통이 단절된 인간들과는 달리 이들은 착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죠.

 미국에서 건너온 주인공 로샨에게 꽃다발을 걸어주는 거창한 의식을 하는 촌스러운 사람들이지만 좋은 일은 함께 즐거워하고, 슬픈 일엔 함께 걱정하는 이 사람들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납니다. 



 검은 원숭이. 사실 검은 원숭이는 사람을 죽인 적은 없습니다. 공격적인 성향이라는 증거도 딱히 없었지만 그는 어느새 잠자는 당신을 노리는 위험인물로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사실 델리의 사람들은 그 존재를 의식하지 않았지만 점점 위험과 불안, 미움과 의심이 있는 곳에 등장해 하나의 위험요소가 되는데, 이 존재를 부각시켜 영화를 다소 긴장감 있고 미스테리하게 만들 수 있었음에도 그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연출력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바로 검은 원숭이란 정체의 허상을 매사건마다 드러내고 관객에겐 미리 그 상황을 파악시켜 인물들의 변화를 살피게 하려 했던 것이었죠.

 이제 슬슬 사람들은 검은 원숭이를 만드는 법을 알게 되고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은 사실상 사건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검은 원숭이를 살인마에, 도둑, 강간범이며 원래 그런 악질로 인지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자신의 과오도 슬쩍 검은 원숭이가 그랬다고 하면 자신의 허물이 아닌 게 되니까요.

 이 위기의 시점에 정신 나간 거울 철학자 한 명이 등장합니다.

 세상 모든 이들은 신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여 서로를 끌어안으라.

이렇게 거울은 위기의 순간에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자신을 본다는 의미는 한 편으로 자아의 성찰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한 성공한 사람의 자서전에는 하루의 시작을 거울속의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할 수 있다’를 열 번 외치는 것으로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처럼 거울 속의 자신은 자신의 외형뿐이 아닌 현재의 반영을 뜻하기도 하니까요.

 감독은 사실 감히 인도의 모습에 거울을 들이대는 거만한 태도를 보이지만 그 거울 속에 비춰지는 모습들이 틀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저는 인도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모습을 잘은 알 수 없지만, 이미 다른 사실주의 인도영화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정이 넘쳐나지만 한 편으론, 세대와 종교, 성별과 전통의 문제, 신분의 갈등 이라는 문제도 함께 안고 있지요.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파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흉터를 가리고 치장을 해 자신을 꾸미는데 더 마음을 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실제로 우리 사회에도 ‘검은 원숭이’로 통용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직접적인 언급은 안하겠지만 대개 사상적인 부분에서 많이 언급되었던 키워드들인데 요즘 들어 심심치 않게 듣게 됩니다. 사실 정치적으로 일부 단어들은 악용이 되어 왔습니다. 많은 이들은 편 가르기를 하고 이권을 다투거나 국론, 혹은 시민들을 분열시키고자 할 때 그런 단어들을 많이 써 왔습니다.

 그 단어들이 실제로 우리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부 사람들은 그 단어를 두려워하게 만들고 공포나 거부감을 조성하거나 불신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최근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을 겪으며, 우리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허물과 실수를 인정하며, 인류가 처음 서로를 대했을 때처럼 서로를 끌어안을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그 노래처럼 말이죠.



Posted by 라.즈.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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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행좋아

    라즈님은 이미 델리에 다녀오신듯 하군요
    델리 6는 이상하게도 여러번 볼 기회가 있었는데, 정작 접하지는 못했어요
    이 영화 라즈님이 자막작업 하신거죠?
    새삼 다시 영화가 궁금해지네요 ^^

    2010.05.07 22:56 [ ADDR : EDIT/ DEL : REPLY ]
    • 제가 작업했습니다. 사실 부천영화제의 힘을 쵸큼... 쿨럭...
      저는 인도에 간 경험은 없지만 많은 경험자 선배 횽, 누님들이 그렇게 말씀을 해 주셔서요.
      정말 여유가 많이 생기면 한 한두달 잡고 다녀오고싶어요.

      2010.05.07 23:18 신고 [ ADDR : EDIT/ DEL ]


   

 만약 당신에게 생명은 주어졌으나 일생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살라고 한다면 당신은 그런 당신의 인생을 감내하면서 살 수 있습니까?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그 누군가의 육체적 장애를 극복한 이야기입니다.

 

 

 미셀 맥날리는 어렸을 때부터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장애를 안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손을 써 볼 수 도 없고 그저 그 아이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랐죠. 그러다 아이를 가르칠 선생님을 찾게 되는데 선생님이 될 사람은 무서운 외모에 알콜 중독이었던 시각장애인인 데브라지. 혹독하고 가혹해 보이는 훈련에 가족들은 불편함을 느낍니다. 반면 데브라지는 아이에게 말과 예절을 가르치고 엄마에게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 미셀이 독립할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그리고 미셀은 성인이 되고 데브라지는 미셀이 대학교에 진학 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노력 끝에 보통 사람들과 함께 대학에서 공부하게 되고 데브라지는 그녀의 옆에서 그녀의 귀가 되어줍니다. 하지만 그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쇠약해져 가는데요. 알츠하이머병이 생기게 되고 한 장의 편지만 남긴 채 그녀의 곁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수년이 흐른 뒤 눈을 흠뻑 맞은 채 그녀의 집 앞에 나타납니다.

 

 

 

 어린 시절에 다들 헬렌 켈러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보신 분들이 있었을 겁니다. 1880년 미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생후 1개월 이후부터 장애를 겪었고 7세가 될 때 까지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가 비로소 앤 설리반 선생에 의해 교육을 받게 되었고 48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녀를 가르쳤다는 일화를 말이죠.

 

사실 영화 ‘블랙’에 대한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저는 상당히 별로였습니다만 왜 이 영화에 대해 그렇게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언급하게 되면 결국 실제 모델인 앤 설리반과 헬렌 켈러 사이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돼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선 제 느낌을 먼저 말씀 드리면 인간을 가르친다는 것이 결국 그 인간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 보기 좋은 한 형상으로서의 완성을 위한 타인의 욕망인가에 대해 의아할 때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형편은 좋지 못하지만 좋은 대학에 가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어떤 이에게는 감동을 주겠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학벌주의와 성공에 대한 또 한편의 훈계적인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 식상하고 따분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헬렌 켈러를 투영한 미셀의 경우 암흑과 무지의 상태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부터 지식을 습득할 어떤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던 터라 움직이는 식물처럼 자라는 인간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에게는 오감이 있고 그 중 시각과 청각은 가장 정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훌륭한 기관인데 그 두 가지를 모두 잃어버릴 경우 인간이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은 상당히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죠.

 

  그렇다면 인격체를 식물처럼 방치하느냐 인간에 가깝게 지도하느냐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그래도 사람인데 후자가 낫지 않겠느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참 아리송한 게 그 인격이란 것, 과연 누군가를 위한 것인지 이 영화를 보고나서 기준이 참 모호해 졌습니다.

  
 

  이 영화가 끝내 말 해 주지 않은 부분이며 가장 알고 싶은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이 인격이라는 것을 지니기 위해서는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먼저 느껴야 하는가를 말이죠.

 

  일단 ‘교육’이라는 것의 의미를 정의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르치는 주체와 대상의 지식, 정보 전달 및 인성의 교감이 교육이므로 ‘교육’자체에는 인위성이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과연 객체의 입장에 있어서 자신이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데 한 주체가 일방적으로 능력을 작용할 때 이것은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뭐, 일단 사람들이 이런 저의 의문에 대해 ‘그래도 사람답게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결론을 내리더라도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기는데요. 실제 앤 설리반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영화 속 데브라지는 미셀 집안의 파티에서 만난 대학교 교수와 함께 이런 말을 주고받습니다.

 

 “나는 저 친구를 대학에 보낼 생각이오.”

  “아니 저 아이는 장애아잖소.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소.”

  “그럼 내가 그 기적을 만들리라.”

 

 

  일단 장애아를 대학교에 들어가게 할 정도면 그 아이는 어느 정도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한 상태입니다.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인격체로 완성이 된 상태라고 볼 수 있는데 과연 그 이후의 교육은 타인의 욕망의 표현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장애아로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교육을 하게 된다는 것은 상당히 대단해 보이는 일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이라면 뭔가 부당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최근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시대의 인물들이 영화화 되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최초 여류 비행사였던 아멜리아 에어하트나 게이 정치가 하비 밀크 같은 사람들 말이죠. 그런데 그들은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로 목표를 이룬 사람입니다. 실제 헬렌 켈러는 자신도 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타인이 보낸 대학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 속 교육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어쩌면 이 영화의 각본이 부정적으로 쓰였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감독이자 각본가인 산제이 릴라 반살리는 2002년 볼리우드 영화의 걸작 ‘데브다스’의 작가로도 잘 알려진 감독입니다. ‘블랙’역시 ‘데브다스’만큼이나 시각적인 효과나 미장센을 잡아내는 데는 훌륭하지만 이 영화는 영상뿐이 아닌 언어까지 함께 생각해서 봐야 하는 영화라, 이 영화가 아무리 수려한 영상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언어적으론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던 탓에 그 아쉬움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인도에서 상당한 흥행과 극찬을 받았던 이 영화는 안타깝게도 인도 대중들에게는 이질적인 영화로 보입니다. 일단 귀족 출신의 영국계 인도인이라는 설정이라든지 인도의 주요 지역이 열대 기후들인 반면 이 영화는 눈, 아이스크림 등 차가운 이미지를 주로 표현하고 있으며, 기독교적인 문화의 표현(인도에서의 기독교인은 3%도 안 됩니다), ‘음식을 손으로 먹어서는 안 돼!’라는 표현(아시다 시피 인도 서민들은 주로 손을 이용해 음식을 먹습니다. 뭐 음식뿐인가요...), 서민들은 생각 해 볼 수도 없는 대학교와 같은 교육에 대한 열망 따위가 이질적으로 보이는데요. 과연 이 영화를 본 인도 대중들은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라면서 눈물을 훔쳤을 지 의문입니다.

 

 

    예전에 봤던 짧은 인터넷 카툰의 내용 중에는 자신의 애장품을 팔 수 밖에 없었던 스타의 이야기와 함께 그것을 지켜보는 서민들은 ‘돈지랄’이라는 씁쓸한 반응과 함께 이어지는 빌 게이츠의 공감대에 대한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이 영화 역시 그런 모습이 그려져 있더군요.

 

  일제 강점기에 나온 소설들 중에는 나름 개화 사상가라고(대표적인 사람으로 이광수가 있었죠) 시혜적인 글을 쓰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세련된 자신의 문체와 의식에 공감해 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길 바랐고 이런 글에서 당연히 양방향의 소통은 기대 할 수 없었죠.

 

 

 

 극 중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면 영화의 정작 주체여야 할 미셀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아마 영화를 ‘교육자에 대한 감사’정도로 생각하고 만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데브라지 선생을 연기한 배우는 인도의 국민 배우 아미타브 밧찬으로 연기력은 좋지만 심하게 연극적인 연기를 보여줘 초반에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지더군요. 후반부로 가면서 캐릭터에도 변화가 생기고, 영화적인 연기로 자연스럽게 옮기긴 했지만 원래 보여주던 모습이 거칠고 광기어린 무서운 모습이다 보니 관객들이 느끼기에도 거리감이 느껴졌던 것은 사실이었을 겁니다.

 

  비록 유연하게 캐릭터가 바뀌지만 남성적이며 조금은 강압적인 교육자의 모습은 제가 생각하는 좋은 교육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더군요. 물론 영화 속에서의 데브라지가 마초 적이라고 볼 순 없고 또한 같은 여성이긴 했지만 실제 앤 설리반 역시 헬렌 켈러를 가르칠 때 강경한 방식을 함께 썼던지라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또 아쉬웠던 이유 중 하나는 과연 교육자와 학생사이에 어떤 교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생과 학생은 서로 그 위치를 바꿔가며 서로 배운다는 말이 있는데 영화 속에선 일방적인 모습만을 보여주고 나중에 학생 된 사람이 감사를 하는데 도대체 뭘 감사해 하고 그 감사에 어떤 감동을 받아야 하는지. 선생님의 캐릭터 - 영화 속 교육의 의미의 이질적인 모습에 혼란만 생겨 버렸습니다.

 

 

 

 영화의 개봉 당시 인도의 유명 배우인 아미르 칸은 ‘블랙’은 어리석은 영화라며 혹평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반작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따레 자민 빠르’라는 교육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는데 개인적으론 그 영화가 훨씬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회가 있다면 꼭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가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개인적으로 영화 ‘블랙’은 교육에 대한 이질적인 해석으로 가득한 영화였습니다. 물론 제 생각입니다. 다른 분들의 관점에 따르면 이 영화는 훌륭한 교육영화 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판단은 여러분의 몫에 맡겨 보겠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 했을 때 교육이란 나무나 동물을 기르는 것과는 다른 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헬렌 켈러와 앤 설리반 >>

 

<< 수입사에 대한 감사의 짧은 글 >>

   광주에 있는 IMAX 시설도 구경 할 겸 볼리우드 팬으로서 이 영화의 시사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월차를 써서 광주까지 내려갔습니다. 제가 비록 영화에 대해 좋은 평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그건 개인적인 생각 일 뿐, 제 글로 다른 사람들의 기분이나 선입견을 작용시켜 선동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영화가 제 타입은 아니었지만 만약 개봉하게 되면 한 번 더 볼 의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은 아니고 볼리우드 영화에 대한 애정입니다.

  현재 다른 수입사들이 볼리우드 영화 몇 편을 수입했지만 실질적으로 영화의 반응을 보기 위해 시사회를 연 영화는 이 영화가 처음입니다. 물론 ‘까삐꾸시 까삐깜’이라는 영화가 있었지만 존재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죠. 하지만 당사는 국내에 영향력이 있는 회사인 만큼 개봉까지 무리 없으리라 봅니다.

  걱정되는 것은 과연 인도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선입견과 외면이겠죠. 이 영화가 그런 관념을 깨기엔 적당하지만 세계화인 만큼 대한민국 대중들도 다른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사람들이 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건 솔직히 영화를 수입하신 분들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요.

 개봉 후에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고 인도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극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또 다른 인도 영화가 극장에 걸리기를 희망해 봅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 그리고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아직도 인도영화의 개봉은 멀기만 합니다.

 

Posted by 라.즈.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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