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3.10 나는 망작이 아닙니다 (2)
  2. 2013.11.26 텔레비전(Television): 통제와 규율에 대한 유쾌한 성찰



 혹시 IMDB Bottom 100을 아시나요? 


 미국의 유명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인 IMDB에서 투표자로부터 최하 점수를 받은 최악의 영화 100편을 정리해 놓은 차트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우베 볼 감독의 ‘하우스 오브 데드’나 패리스 힐튼의 ‘The Hottie & the Nottie’ 같은 영화들이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지요.





 그런데 최근 그 순위가 바뀌었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인도영화 ‘Gunday’가 되었습니다. ‘옴 샨티 옴’의 여배우 디피카 파두콘의 새 남자친구이자 최근 그녀와 함께 ‘람 릴라’ 등의 영화로 완전히 뜬 배우인 란비르 싱과 신예 아르준 카푸르, 그리고 미스 월드 출신의 발리우드 대표 미녀스타 프리얀카 초프라가 주연을 맡고있고 '라이프 오브 파이'의 이르판 칸이 악역으로 등장하고 있지요.


 영화는 첫 주에 70 Crores, 우리 돈으로 121억의 수익을 거두며 흥행에 호조를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이 영화가 갑자기 Bottom 100에 1위를 차지한 것일까요? 혹시 영화를 보고 온 관객들이 분노해서 일제히 컴맹들까지 인터넷을 배워 혹평에 일조한 것일까요?






 의혹 1. 비평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이 영화가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Rediff의 독설가 라자 센은 형편없는 영화라고 혹평을 했고 Indian Express의 Shubhra Gupta는 많은 블록버스터 영화를 베껴왔다고 비판을 가했지만 다른 평론가들은 볼만 한 영화다 혹은 범작이다 정도로 평가를 내렸습니다. 


 12명의 평단으로부터 5점 만점에 2점대 수준을 받았으니 좋은 영화라고는 볼 수 없더라도 망작까지는 아닌 셈입니다. 그런데 왜 이 영화는 최악의 영화로 평가받게 되었을까요?



 의혹 2. 비정상적인 투표자 수







 아마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인도영화는 ‘세 얼간이’일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개봉되어 관객들을 만족시킨 영화이죠, 10만 명이 넘는 투표자들이 평균 8.5점을 주어 현재 IMDB 탑 250에 126위에 올라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10만명의 투표자를 모으기까지는 지금까지 4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고 그조차도 세계적으로 이 영화가 소개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죠. 





 일반적으로 인도영화로서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는 영화는 부천국제영화제 상영작이었던 ‘한 번 뿐인 내 인생(Zindagi Na Milegi Dobara)’ 이 영화 역시 많은 국가에 소개되었음에도 지금까지 이만 오천여명이 평균 8.0의 점수를 주었습니다. 





 그나마 더 최근작인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인 ‘바르피!’ 역시 삼만 이천명 투표에 8.3을 주었습니다. 2012년 영화라는 점 치고 반응이 빨랐던 편이기는 하지만 ‘바르피!’ 역시 터키나 홍콩같은 비 발리우드 권역의 국가에 소개되고 나서야 크게 주목 받을 수 있었지요.


 

 그런데 이에 비해 인지도도 낮고 다른 발리우드 권역 외엔 다른 나라엔 소개되지 않은 ‘Gunday’는 지금인 2014년 3월 8일을 기준으로 봤을 때 개봉된 지 겨우 4주차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사만 이천명의 투표자수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정도이면 영화가 순수하지 못한 의도로 음해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혹 3. 누가 이 영화를 음해하는가?





 2010년 영화 ‘내 이름은 칸’이 인도에 개봉하던 때 영화는 IMDB 점수 4점대까지 추락하게 됩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샤룩 칸의 안티들과 당시 샤룩 칸을 비판하던 극단주의자들 세력이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이 듭니다. 물론 지금은 7점대까지 올라가기는 했지요.


 정말 영화가 망작이 아니라면 분명 이 영화에 정치적인 혹은 사회적인 문제가 얽혀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합니다. 물론 주연배우인 란비르 싱이나 프리얀카 초프라에게도 안티들은 있지만 IMDB에 사만 명이나 동원 될 정도로 극성이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원인은 이것이 아닐까 합니다. 영화 ‘Gunday’는 방글라데시의 독립에 대한 정보를 왜곡했다고 합니다. 영화의 초반부에 사건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영화에서는 ‘방글라데시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전쟁을 통해 생겨났다’는 식으로 묘사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고 하네요.


 실제로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 내에서 벵골 자치 운동을 벌였고 1971년 파키스탄군과 벵골 자유 투사들 간의 전쟁을 통해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인도 역시 중국처럼 과거의 넓은 땅덩어리에 대한 욕심이 많기는 합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힌두와 무슬림의 갈등과 같이 종교적인 갈등이 내부에 있기 때문에 단지 소수 민족의 통합이라는 과제가 있는 중국 수준으로 통합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있는 자들이 더하다고 대국(大國)들은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지만 더 많은 영토를 손에 넣고 싶어 하지요.


 영화 ‘Gunday’에 직접적으로 그런 야욕적인 모습이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과거 자신의 땅이었던 이웃나라의 역사를 몰인정함으로서 적어도 방글라데시 사람들, 크게는 바른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분노를 사기에는 충분했다고 봅니다. 





 어쩌면 영화의 완성도보다는 외적 재난으로 일어난 해프닝이기는 하지만 이 사태가 시사해 주는 바는 꽤 크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행복지수는 1위인 가난한 나라라고 알고 있는 방글라데시라는 나라에 대해 관심을 환기할 만한 사건은 아니었나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안타깝게 영화의 흥행은 기뻐하면서 이런 역사 왜곡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사과도 없는 야쉬 라즈 측의 태도가 인도영화 팬으로서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Posted by 라.즈.배.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쩐쩔

    영화에서 아주 작은 부분일지라도 역사적인 사건을 다룰때는, 좀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곡해서도 안되고, 미화해서도 안되겠지요.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들에 대해 호불호나 논란거리가 많은 것은, 이런 이유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오락거리의 한부분이 아니니까요. 물론, 제3차 인파전쟁이 방글라데시 독립에 한 원인인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포스팅 속에서도 언급하신것처럼 방글라데시는 그런 단순한 이유로 독립한 것이 아닙니다. 3차 인파전쟁이 밟발하기 까지 동파키스탄 서파키스탄은 언어와 지리적인 차이가 너무나도 컸어요. 뭐 어찌되었든, 이 일로 야쉬라즈 프로덕션이 사과의 말 한마디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2014.03.10 09:33 [ ADDR : EDIT/ DEL : REPLY ]
    • 만약에 중국에서 고구려를 자기네 지방정부라는 식으로 표현한 영화가 개봉된다면 우리는 가만있지 않을 걸요. 멀리 갈 필요도 없지요. 얼마전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이 분다' 같은 경우도 전투기 제작자를 미화해서 우리는 엄청나게 분노했던 적이 있지요. (어쩌면 상업영화고 비평이 좋지 않았던 'Gunday'에 비해 너무나 걸작으로 칭송받아서 더 부아가 치밀었는지도...)
      소위 강자에 있는 사람들은 역사에 민감하지 않는듯 해요. 언급해도 자신들에게 유리한쪽으로 포커스를 맞추죠. 특히나 요즘 국가주의가 부활하는 게 아닌가 싶은 시절에 이런 모습을 보니 안타깝긴 합니다.

      2014.03.10 09:46 신고 [ ADDR : EDIT/ DEL ]

그 밖의 이야기들2013.11.26 03:47


 


  

  배에 타고 있던 남자는 신문지 위에 흰 종이를 붙이면서 흰 종이에 가려진 한 노출이 있는 여배우의 사진을 몇 번이고 몰래 들여다봅니다. 영화 ‘텔레비전’은 이렇게 시작하는데요, 처음에 이 장면을 보고서 저는 뭔가 성적인 코드가 통제된 사회를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는 한술 더 떠 아예 이미지 자체를 금하는 마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영화는 초반부에 상황적 배경을 집약해 표현함으로써 빠른 시간 안에 관객이 영화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안내를 합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하얀 장막을 스크린 사이에 두고 방송국 리포터에게 ‘이미지를 제거한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촌장의 인터뷰장면이었는데요. 스크린이 주는 단절의 이미지는 물론이고 마치 스크린은 화면은 상영되지 않은 채 목소리만 나오는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촌장과 그의 수하들은 너무도 완곡해서 소통 불능 상태에 이른 까닭에 감독이 의도한 부분이긴 했겠지만 그 소통 불능 때문에 약간은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앞으로 러닝타임 두 시간 동안 저런 사람을 봐야한다니 하는 생각에 약간은 아찔하기도 했습니다.

 다행이도 촌장 못지않게 사건을 이끌어 나갈 사람으로 촌장의 아들과 그와 엮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약간 이분법적이기는 하지만 꽉 막힌 기성세대와 겉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드러내지는 않으나 새로운 세대라는 이유로 기존의 틀에서는 벗어나려는 젊은이들 간의 갈등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있지요.


영화 속 통제라는 것의 의미


 영화는 대중성을 의식해서 본격적인 드라마틱한 전개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젊은 남녀의 ‘이미지가 필요한’ 소통을 보여주지만 사실 저는 이 영화의 전환점은 마을의 한 교사가 TV를 들여올 때부터라고 봅니다. 힌두교도라 모슬렘적 규율에서 벗어난 이 선생님의 미래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정당성을 상실한 강제적인 규율은 소심한 반대급부들을 양산하게 되었는데 이들이 선생의 집에 몰려들게 되면서 촌장은 사람들의 신앙심이 흔들리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점점 주민에 대한 사상적인 통제는 그 정도를 넘어서게 됩니다.

 감독은 영화를 우화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소 권력의 비현실적인 통제를 그렸지만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은 몇 가지 가정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이 영화가 낯선 나라인 방글라데시에서 온 만큼 실제 방글라데시에서는 왠지 그런 규율과 통제가 실제 벌어질 것 같다는 것. 다른 하나는 만약 영화 속 규제가 현실적이든 비현실적이든 그것이 영화 속에서는 표면적으로 우습게 보여졌을지라도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결코 웃으며 넘어갈만한 소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TV를 산 교사 이야기로 돌아가 왜 그런지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사실 마을에서 유일하게 힌두교도라고 허락된 TV였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무시하고 지나갈리 만무합니다. 이미 젊은이들만 해도 뭍에 나가면 발리우드 영화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니까요. 곧 이것은 촌장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고 촌장은 텔레비전보다 더 높은 삯을 지불하고 마치 악마를 봉인하듯 TV를 강물에 던져버립니다. 이 때 마을의 젊은이들이 그 모습을 보고 환호하는데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규율이라는 것은 그것이 전통이 되었든 인습이 되었든 사람들에게 결속이라는 명목 하에 무시무시하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이 있었다고 그 교사에게 물리적 강압을 행사한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만약 그런 것도 하나의 훈육의 방법으로 허락된다면 인간의 공포심을 자극할만한 ‘본보기’들이 행해졌을지 모르죠.

 TV사건이 터진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젊은이들이 읍내에 몰로 영화를 보러갔다가 적발된 적이 있고 나서는 마을 비자제도를 마련하는데 이 또한 영화를 보다가 걸린 젊은이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마을에서의 통제의 수단은 갈수록 늘어납니다.


사람들에 대하여




 영화를 보면 마을을 통제하는 촌장에 이르기까지 등장하는 사람들이 딱히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마을을 걱정하는 착한 사람들이기도 하고 욕망은 있지만 그것이 탐욕적이기 보다는 오히려 순박해 보이는 동화에 등장할 법한 시골사람들이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이죠.

 대개 전형적인 영화는 갈등요소를 선과 악으로 잡지만 이 영화는 그런 이분법적인 사고를 탈피하기 때문에 인물들은 상당히 입체적으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요즘 그런 구조의 영화들은 사람들에게 악한 본성이 내재되어있음을 전제로 하는 반면 이 영화는 선한 사람들 사이에도 갈등이라는 요소를 담아내는데 바로 사상이라는 개념을 소재로 쓰고 있기 때문이죠.

 신념을 가지고 사는 것은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맹신이 되면 독선과 소통의 단절을 낳게 됩니다. 이런 모습은 영화에선 우화적으로 그려지기는 했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이 봐 온 것들이지요.

 저 역시 개개인은 선하지만 주변에 종교적 혹은 정치적인 믿음, 더 나아가 자신이 너무나 강력하게 믿는 것을 기준으로 자신이 인정하지 못하는 것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그 분들이 사고의 유연성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너무나 깊게 뿌리 뻗을 때 자신의 가치관이 아닌 다른 것들을 부정하게 되고 이 때문에 소통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후반부에 약간 감정이 격해지는 감이 있기는 하지만 영화 ‘텔레비전’은 충분히 고착화된 가치관과 그로 인한 불통을 그린 재미있으면서도 잘 만든 영화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낯선 영화에 대한 닫힌 사고부터 열어야 하는 부담은 우리가 먼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닌가 합니다.


 Verdict  통제와 규율에 대한 유쾌한 성찰  ★☆



* 인도영화 블로거 아니랄까봐 인도영화와 관계된 이야기를 하자면 







Posted by 라.즈.배.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