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글은 2012년 7월 25일에 작성되어 2013년 11월 6일에 마이그레이션 되었습니다.

 

 

 

 

 

 늘 공공연하게, 심지어는 인도영화 관련해서 보내는 공문서엔 늘 지긋지긋할 정도로 ‘내 이름은 칸’이나 ‘세 얼간이’의 상업적 성공에 대해 언급이 되어 있는데 사실 이 영화들의 성공으로 관심 밖이던 인도영화에 대한 수입은 배로 늘었고, 이제는 매주 케이블 채널에서 3시간 33분짜리 ‘왕의 여자(조다 악바르)’가 방영된다. 과거 인도영화 마니아들이 불법 다운로드로 영화를 보던 때에 비하면 이젠 그 환경이 많이 나아졌다고들 한다.

 

 하지만 실제로 업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좋은 건 아니다. 인도영화는 들여오는데 아직도 인도색에 대한 기피는 많은 편이다. 그러다보니 영화를 선별하게 되고 최대한 인도색 없는 작품을 들여오거나 회사에서 제공하는 편집 버전(그런데 편집 버전이라고 맛살라 장면이 없는 건 아니다)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영화에 대한 오리지널 버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까닭에 원래 영화가 몇 분인지 모르는 경우도 태반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 인도영화에 빠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도의 뮤지컬 영화인 맛살라영화에 빠져서 입문하게 된다. 물론 업계에선 소수의 마니아를 겨냥한 사업을 할 순 없다. 더 많은 관객들이 자사의 영화를 보게 해야 하는데 나는 무엇이 진리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런 영화는 다수의 관객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게 매뉴얼인가보다.

 

 결국 소위 정통 인도영화라 불리는 맛살라 영화는 아직까지는 공식 루트로 보기는 힘들다. 영화 전문가들에겐 인도의 상업영화에 반기를 드는 작가의 영화가 인정받는 가운데 어떻게 합법적인 방법으로 이런 영화를 볼 수 있을까? 영화제에서 이런 영화를 소화해주면 좋은데 앞서 언급했듯 그런 상업영화도 수용할 수 있는 영화제가 거의 남지 않았다.

 

 솔직히 그나마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선 매 해 인도영화를 소개했지만 올 해는 한 편도 없다. 정말 들여올 영화가 없어서 그런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인도에선 꼭 상업영화만 음악을 쓰는 게 아닌데, 심지어는 맛살라 영화가 아닌 ‘Shanghai’같은 영화(* 코스타 가브라스의 ‘Z’를 토대로 만든 정치영화)조차 사운드트랙을 발매한다.

 


 



 한 편 인도영화 팬들에게도 조금 아쉬움은 있다.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인도영화 마니아들을 만나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는 대체적으로 배우에 의해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고 내가 보는 영화가 얼마나 흥행했는지, 어떤 감독이 연출했고 평론가들의 평가가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올 해 인도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렸던 ‘라 원’이 샤룩 칸이라는 이유로 비평적으로 우세했던 ‘락스타’에 비해 큰 인기를 얻었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하고 있기도 한다.

 

 또한 ‘철지난 영화’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며 (속된말로 인도에서 개봉된 지가 언젠데 이 영화를 트나) 등을 돌린 팬들도 있는데 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옴 샨티 옴’의 야외 상영을 두고 인도영화 마니아들 내부에서도 ‘옴 샨티 옴’의 사골화라고 비판하지만 함께 즐기기에 인도영화 입문에 이만한 영화가 없다는 것도 정설이다. 특히 야외상영에서는 상영관 내에서 점잔빼면서 보던 것도 여기서는 필요 없으니 그것 역시 즐거운 일이다. 올 해 PiFan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함께 춤출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2013년은 ‘발리우드 특별전’을 연 지 10년이 되는 해다. 과연 내년에는 또 어떤 영화, 어떤 이벤트로 관객들을 사로잡을지 궁금하고 또 기대된다.

 

 

 

Posted by 라.즈.배.리

 

 

 

 

 

 

 

 

 

 

 

 

 

 

 raSpberRy입니다.

 

 지난 2012년 9월 16일 구로 CGV에서 영화 ‘지상의 별처럼’의 관람과 talk 가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게스트 분은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하셨고 비사문천님도 개인 사정으로 불참하셨습니다.

 저와 기현님만 영화를 관람했는데 저 역시 사실상 위산과다 및 피로누적으로 불참할까 하다가 혹시나 인기 없는 애가 인기 없는 영화 보자고 하니 실패하는 거다 하는 소리 듣기 싫어서 후기는 쓰지 말고 건강부터 챙기라는 기현님의 말씀을 고이 접어 날려버리고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talk는 이렇게 간다는 걸 한 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영화 상영 2주차에 들어서면서 관객이 팍 줄어들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는데 다행이도 좌석점유율이 높게 나와서 제가 수입, 배급한 영화도 아닌데 기분이 좋았습니다.

 

  멀리까지 와주신 기현님이 고마워서 무료 영화와 무료 점심을 대접해드렸습니다. 굳이 안 써도 되는 이야기인데 좋은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영화적인 설정이 현실에서도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2013/10/08 - [인도영화 이야기/영화의 전당] - [톡! 톡! 톡!] '지상의 별처럼' 맛살라톡 후기

 

 

 

 

  ‘지상의 별처럼’의 각본가는 아몰 굽테라는 사람입니다. 외모는 산적두목이지만(실제로 인도에서도 그런 배역을 많이 맡음) 올 봄에 개봉했던 영화 ‘스탠리의 도시락’의 각본, 감독, 출연을 했던 다능한 감독이죠.

 

  ‘지상의 별처럼’에서는 각본만 썼을 뿐 아니라 영화 속의 그림들을 직접 그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영화 후반부 미술대회에 쓰인 수준 높은 아트웍들은 미술가 사미르 몬달의 작품들이지만 이샨의 잔그림들은 아몰 굽테가 직접 그린 것들이죠.

 

 

 

 

 아몰 굽테는 평소에 인도의 어린이와 어린이 영화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데 ‘지상의 별처럼’에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그가 직접 쓴 ‘스탠리의 도시락’에선 감독의 역할까지 맡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모종의 공통점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그 중 하나가 바로 어린이 노동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영화에서 다소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이샨의 부모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운전 중에 마주친 책 파는 아이들(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인도영화에 나온다)이나 니쿰 선생(아미르 칸)이 휴게소에서 만난 서빙 하는 꼬마 아이를 볼 수 있는데,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인도의 자본주의 사회의 비극처럼 남겨진 저소득층 노동자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각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스탠리의 도시락’에선 교육이나 급식 문제, 어린이 노동문제로 직접적으로 드러내려 했던 것 같고요.

 

 

 

  예전에 (두목x) 임금과 스승과 어버이는 하나라는 말이 있었든 선생님이라는 위치는 감히 논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 위치에 있는 것이라고 배웠지만 그래도 감히 선생님의 위치에 대해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이야기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마귀할멈이라 불리는 한 물리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이 어느 날 ‘OOO 때문에 내가 선생 못해먹겠다’

 

  그런데 OOO이라는 친구가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사건을 일으키는 문제아였나 하면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냥 지능이 조금 다른 아이들보다는 떨어질 뿐이었죠. (비슷한 이미지가 개그콘서트의 ‘멘붕 스쿨’에 나오는 ‘아니아니 그게 아니고요’하는 소심해서 사고 한 번 안치는 승환이 캐릭터)

 

  이를테면 그 친구는 한 친구가 ‘안녕’ 하면 꼭 끝까지 ‘안녕’하고 답해줘야 하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때문에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 놀러 나왔다가. 답인사 하느라 자기 수업에도 못 들어가는 그런 친구였죠.

 

 


  영화 ‘지상의 별처럼’에는 레이스에 우세한 학생에게 관심을 쏟는 것이 우선이라고 믿는 선생님들이 많이 나옵니다. 뭐 좋은 대학 들어가는 학생들이 선생님 입장에선 예뻐 보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지능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버려도 좋을 정도로 만만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죠.

 

  기현씨는 다큐멘터리영화제에 상영되었던 영화 ‘Bully’의 컨퍼런스때 느꼈던 (짜증난)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그곳에 참여했던 교사 중에는 우수한 아이들을 진작 걸러서 학교에 입학시켰으면 좋겠다는 선생님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죠.

 

  어쩌면 ‘지상의 별처럼’이라는 영화에서처럼 모자란 한 마리의 어린 양에게 더 힘을 써 준다는 것은 과외가 아닌 이상 교육의 현장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죠. 효율성만으로 따진다면 말 잘 듣는 엘리트 학생들의 뒷바라지를 해주는 게 낫지 모자란 소수의 학생을 일정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노력도 노력이지만 항상 기대했던 성과를 내기란 쉽지 않으니까 말이죠.

 

  실제로 ‘지상의 별처럼’의 이샨과 같은 학생이 우리의 교육현장에 있다면 어쩌면 그 학생은 천재가 아닐 확률이 크고 또한 어느 선생님 하나 선뜻 나서려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라 해도 최소한 학생 개인의 존엄성은 지켜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년도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선생님의 짜증 섞인 불평을 기억한다는 것은 이미 그때부터 교사의 최소한의 자질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은 아닌가 합니다.

 

 


  다른 인도영화 관련 커뮤니티나 이 영화를 보신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전반부 이샨의 어려운 학교생활 부분이 조금 늘어지고 쳐져 보인다는 평가를 종종 들을 수 있었는데요, 아마 주인공 이샨의 장애로 인한 힘든 생활을 계속적으로 보여주다 보니 영화가 조금 어둡게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좀 다르게 봤는데 영화는 딱 인터미션 - 국내 개봉판에는 없지만 아미르 칸이 연기한 니쿰 선생의 등장이 딱 중간부분 - 전과 후의 영화적인 흐름의 변화가 명확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관객들이 우울하다고 지적한 영화의 전반부는 이샨의 학습능력 저하로 인해 일어나는 각종 문제들에 대한 부분인데 내용만 우울할 뿐이지 이 부분은 생각보다 전개도 빠르고 관객들을 사로잡기 위해 일반적인 극의 전개에서 약간 벗어난 공상적인 부분이라든지, 음악적인 요소를 잘 활용합니다. 이런 초현실주의적인 접근이 가능했던 것은 이샨이라는 캐릭터가 현실보다는 공상에 익숙했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기현님의 경우는 후반부가 조금 아쉬웠다고 하시는데 일단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향취가 너무 다르고 극중 니쿰 선생의 부모에게 일갈하는 태도가 약간은 거슬렸다고 비판하시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이 아미르 칸인 까닭에 국내에선 이 영화보다 먼저 개봉했던 ‘세 얼간이’와 종종 비교되곤 하는데 (실제로는 ‘세 얼간이’가 이 영화보다 3년 후에 개봉된 영화.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아미르 칸의 주름이 더 많다) 과거 인도영화 토크에서 ‘세 얼간이’에 대해 비판적인 견지를 가지고 있던 한 토키가 아미르 칸의 웅변가적인 혼자 똑똑이 캐릭터가 가끔은 거슬리게 느껴진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아시아 영화들에서 나오는 직설화법의 일종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이를테면 일본에서도 가끔 인물들이 계몽주의자가 된 듯 “...이러는 거에요!”하는 발언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죠. 하지만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나 중국 등의 영화에서도 가끔 훈계에 가까운 그런 돌직구적인 화법을 구사할 때가 있고 ‘지상의 별처럼’ 의 니쿰 선생의 캐릭터 역시 그런 직설화법에 익숙한 문법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합니다.

 

 

 


  기현님이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에 대한 차이에 대해 언급했는데요,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가 약간 다르다고 언급을 했는데 저도 비슷한 생각은 했지만 그 생각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를 보였습니다.

 

  우선 기현님의 의견은 전반부는 각본가(이자 사실상 공동 감독)인 아몰 굽테의 비전이고 후반부는 감독 아미르 칸의 비전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어린이의 입장에서 극을 그려낸 것이나 많은 미술적 감각의 활용, 어두운 이야기를 판타지 식으로 처리한 것 등이 그렇게 느껴졌다고.

  반면 후반부는 아미르 칸의 기존 영화들처럼 현실적이거나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모습이 보여 다소 차이가 있었다고 언급했는데, 저는 일부는 동의하지만 두 감독사이의 성향이라고 하기엔 두 사람의 필모그래피에 있어 ‘작품세계’라 불릴 만한 영화가 그렇게 많지 않았고 사실 전반부의 어두운 분위기는 후반부의 대안적인 결말을 위한 필요과정이었다고 보고 싶습니다.

 


  결국 영화에서 딱 터닝 포인트 기점인 니쿰 선생(아미르 칸)의 등장은 극의 분위기를 전환 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것은 한 인물이 극의 분위기를 바꿀 정도로 그 인물이 상당히 극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죠. 거창하게 보면 영웅적인 인간의 등장으로 인한 해결이라는 시각을 줄 수도 있지만 영화는 ‘스승’이라는 키워드를 계속 던지고 있는 까닭에 영웅적 이미지라기보다는 ‘멘토의 필요성’에 관한 역설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아몰 굽테는 자신의 데뷔작 ‘스탠리의 도시락’에서는 드라마틱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최대한 배제하고 현실적인 시각에서 영화를 그려냅니다. ‘지상의 별처럼’에서처럼 한 명의 선생님을 우상적인 존재로 그리기 보다는 심술궂은 선생님과 존경스러운 선생님을 그냥 한 공간 안에 던져버리죠.

 

 

 


  이렇게 ‘지상의 별처럼’은 다소 극적인 구조로 이루어진 교육영화고 하나의 판타지처럼 느껴지게 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그 자체로서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학생에 대한 존중과 인격체로서의 인정, 획일화되고 경쟁 위주가 되어 버린 교육에 대한 비판이나 교육 소외 계층과 이들의 사회 적응에 대한 바람을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 인도의 초등학교 4년은 의무교육이 맞다고 하는군요. 자료에 따라 상이하지만 모든 주에 해당한다는 자료와 일부 주에 해당한다는 자료가 함께 있더군요. 뜬금없지만 영화 ‘세 얼간이’에서 교복 사 입고 아무 학교나 다니라는 주인공 란초의 말이 떠오르는군요.

 

  * 영화를 여섯 번 째보고 있지만 아직도 영화 속에 나온 시는 이해를 못하겠어요. 꼭 저처럼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하는 말 있죠. 문학작품이라는 것은 느끼는 사람마다의 감정이 있는 것인데 교과서의 해석을 외워야 하는 이 안타까움... 영화기는 했지만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이 있었다면 미술 시간에 학생들이 모두 서로 다른 그림을 그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정말 학생들이 다들 세뇌당해서 정물화 그릴 줄 알았거든요.

 

 *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의외로 단순한 장면이었습니다. 니쿰 선생이 주인공 이샨에게 불을 켜라고 이야기 하는 부분이었는데 ‘enlighten’이라는 단어와 연관이 있죠. 우리말로는 ‘계몽’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아이가 사실은 우리 인류에 불을 밝히는 사람’이라는 나름 계몽적인 메시지를 주려 했다고 저만 생각해봐요.


  * ‘지상의 별처럼’ 아트시네마 계열 다양성 영화부문 박스오피스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네요. DP의 조용한 반응에 비해 반응은 좋던데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면 합니다.

 

 


* 저도 학습장애가 있었던 것 같아요. 바로 미술이죠. 저는 사물을 표현하는 방법에 상당히 어둡고 대부분의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프레임을 잡는데 굉장히 어려움을 느끼죠. 두 시간밖에 안 되는 미술시간에 그림을 완성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미술 선생님은 이런 유행어를 쓰곤 했는데 저같이 그림을 못 그리는 아이들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그림이 썩었다!”고 놀리곤 했죠. 그런데 중요한 건 raSpberRy는 유치원 대신 미술학원을 다녔다는 것... ㄷㄷㄷ

 

  * 난 둔재야 둔재가 분명해...

 

 

 

 

 


 

Posted by 라.즈.배.리

* 이 글은 2012년 6월 9일에 작성되어 2013년 10월 8일에 마이그레이션 되었습니다.

 

 

 


 때는 4월, 당시 몇몇 인도영화 마니아분께서 이런 질문을 하시더군요.

 “로봇이 개봉되었다고 들었는데 어디서 하나요?”

 인도영화가 개봉되었다는 말에 개봉관을 찾았지만 경기도의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딱 한 회 상영하는 게 끝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개봉된지 나흘만에 일어난 일이었지요. ‘로봇’이라는 영화는 이렇게 개봉된지도 모르고 막을 내렸습니다. 인도영화 팬인 저에게는 소위 멘붕이 찾아왔고 우리나라 인도영화의 흑역사가 다시 시작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했습니다.

 별로 인기는 없는 연재(?)지만 지금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발리우드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언젠가는 인도의 Sci-Fi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고 자료조사도 꾸준히 했었는데 ‘로봇’의 개봉에 맞춰서 언젠가는 이 이야기나 해봐야겠다고 계획한 것들은 허무하게 사라졌고 속된말로 그저 눙물만 남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개봉 몇 주 뒤에 일본에서도 영화 ‘로봇’이 개봉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궁금해서 boxofficemojo를 찾아보니 순위에도 안올라있기에 일본에서도 망했구나 생각했는데 웬걸요. 20여개 극장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높은 좌석 점유율을 보이며 미니 개봉관 박스오피스(일본은 그런것도 있더군요)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완전판 개봉을 촉구하는 팬들의 요구에 완전판 공개 요청 클릭수가 백만건에 달해 결국 영화사는 영화의 완전판도 공개해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1998년, 일본에 개봉된 인도영화 ‘춤추는 무뚜’의 기록적인 흥행은 일본에 새로운 컬트문화로 자리잡았고 당시 일본의 많은 코미디언들이 라즈니칸트의 춤과 동작들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기도 했지요.


 

 

 

한때 우리나라도 일본에서의 성공을 벤치마킹해서 국내에서 영화를 수입하던 시절이 있었는데요(아마 당시 영화 수입, 배급하셨던 분들은 일본과 우리의 대중들의 정서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몇몇 영화들은 일본의 영화 카피나 의역 제목을 붙여왔던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그것 때문에 이 영화의 성공을 기대하고 영화를 수입하셨는지 모르겠으나 2000년 당시 이 영화가 수입되던 당시에 관객들은 소위 요즘말로 멘붕영화라는 평가만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물론 흥행에 실패했지요. (그러나 당시 수입에 관여하셨던 한 내부인은 이 영화를 무척 싼 가격에 들여왔기 때문에 망하지는 않았다는 말씀을 하셨지만요. 진실은 알 수 없다능...)





 

 

 ‘스윙걸스’ 등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신작 ‘로보-G’는 지난 1월 일본에 개봉되자마자 큰 화제를 모으면서 흥행에도 성공했는데요, 물론 진짜 로봇이 아닌 가짜 로봇행세를 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지만 한편으로 기술 친화적인 일본 관객들에게 인간 같은 로봇이라는 소재가 주는 요소가 ‘로보-G’에 이어 인도영화 ‘로봇’에도 그 호응이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 영화 'Robo-G' 예고편 >>


 

 


 



 예술영화 전용관이나 단관 극장이 몰락하고 멀티플렉스가 살아남은 우리와는 달리 일본에서는 아직도 아트계열의 영화관, 재개봉관, 소규모 개봉관의 문화가 남아있는 것은 아마도 일본이라는 나라가 소수의 문화로도 영화 문화의 명맥을 이을 수 있는 나라기 때문은 아닌가 합니다.

 때문에 일본에는 도에이같은 대형 배급사가 배급하는 메이저 영화와 소노 시온같은 마이너 성향의 작가주의 감독의 영화가 극장가에서 공존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한가지 특이한 것은 이런 마이너한 영화들이 일본 극장가에 꾸준히 소개되었고 앞서 언급한 라즈니칸트의 영화가 일본 극장가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영화가 꾸준히 일본에 소개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샤룩 칸의 영화 몇 편 정도가 일본에 소개되었을 뿐이죠.



 하지만 조만간 일본도 인도영화의 계속적인 유입이 이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 얼간이’의 경우는 일본 내에 개최된 영화제등지에서 소개되어 큰 반향을 얻어 개봉을 준비중이고, 그밖에 아시아 영화제에서 인도영화들이 심심지 않게 소개되고 있고 인도영화 마니아들이 만든 ‘나마스떼 볼리우드’(DVD 프라임 내 동명 커뮤니티와 무관함) 같은 소식지들이 무가지로 배포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보다 저변 확대에 대한 노력이 많았고 아마 ‘로봇’의 성공으로 일본은 본격적으로 인도영화가 유입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다음 영화는 샤룩 칸의 ‘라-원’이라는 영화인데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이유는 뭘까요)


 


일본의 인도영화 소식지 '나마스떼 볼리우드'





 

 


영화 ‘로봇’의 인도 사이트는 개봉 3개월 전에 개설되어 공격적인 홍보를 했습니다. 발굴되지 않은 인도내의 영화 ‘로봇’에 관련된 소스를 가져오고, 생각지도 못한 마케팅을 벌이는 등 이 영화의 개봉을 위해 철저히 준비를 해왔죠. 가장 깨는 아이디어는 인도 음식점 체인에서 마련한 ‘로봇 카레’(위 사진) 였는데요. 치티(영화 ‘로봇’의 주인공)의 골뚜껑을 열고 카레를 먹는다면... (이건 좀 깨는 듯)

 



 


 물론 일본도 불법 다운로드는 존재하고, 일본이라는 나라는 또한 우리나라 못지않은 인터넷 회선을 자랑하는 나라입니다. 사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일본도 불법 다운로드가 우리나라 못지않게 많다고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람들은 미디어를 사는 것이나 극장에 가는 것에 대해 낭비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분명 이들이라면 우리나라처럼 개봉 소식을 접하고 잽싸게 자막을 만들어 배포를 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에서 개봉된지 2년이나 된 이 영화가 성공한 데는 위의 요소 뿐 아니라 이런 사람들의 의식도 함께 작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로봇’이 네티즌들에게 회자되었던 것은 유튜브에서 편집판으로 올라온 황당액션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 영화의 존재를 알리는 요소도 되었지만 동시에 이 영화의 이런 측면에 더 집중해서 보게만든 역효과를 동시에 낳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이 액션 장면들도 이 영화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영화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죠.

 비슷하게 주성치의 영화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소림축구’나 ‘쿵푸 허슬’ 같은 영화 역시 황당한 액션에 그렇게 깔끔한 특수효과가 사용되는 영화는 아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것은 웃음 이면에 녹아낸 불교적인 철학이나 인물들의 페이소스 등이 영화 속에 잘 드러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 ‘로봇’은 영화속 로봇이 개체가 아닌 하나의 객체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심지어 후반에는 황당하기는 하지만 로봇이 인간의 감성을 갖게 되면서 하나의 사회로서의 존재를 인정받으려 하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죠.

 저는 영화 ‘로봇’을 화성 로봇과 금성 로봇의 감성을 모두 담아내고자 했던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말 그대로 화성을 나타내는 Mars는 전쟁을 상징하며 외면적으로는 군수품으로서의 로봇, 내면적으로는 남성의 욕망을 보여주고, 금성을 나타내는 Venus는 사랑을 상징하며 외면적으로는 친구와 도우미로서의 로봇, 내면적으로서는 여성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많은 이들이 다소 산만해보인다고 지적하기는 했지만 저는 이런 요소들을 영화에서는 나뭇가지처럼 뻗어가는 구조로 보여준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사실 영화 ‘로봇’은 이전에도 다루어졌던 이야기였던 까닭에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을 다룸으로서 이 영화와 원류를 같이하고 있는 ‘아이, 로봇’이나 휴머노이드를 등장시켜 B급 정서를 이끌어냈던 율 브리너의 ‘이색지대(Westworld)’같은 영화와 그 궤를 같이 하겠지만 이 영화가 그 영화들과는 좀 더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앞서 언급했던 비슷한 맥락의 영화들이 만들어진 시기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미래의 세계를 그리면서 공상이라는 측면을 확대한 데 반해 영화 ‘로봇’에서의 시대적, 공간적인 배경은 현대와 크게 동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해당 기술의 실현이 가까워 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느낌을 준 대표적인 영화는 바로 작년에 개봉되었던 ‘리얼 스틸’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리얼 스틸’도 근 미래라는 시간적인 설정을 하고 있지만 로봇만 등장할 뿐 공간이나 시간적인 배경이 현대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물론 ‘트랜스포머’ 같은 영화도 배경은 현대의 지구지만 ‘로봇’이나 ‘리얼 스틸’에서 등장하는 기계처럼 인간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기술은 아니죠.(범블비가 진공청소기를 들고 집청소라도 하면 모르겠습니다만... 그럼 로봇 청소기가 되려나요?)

 인간과 가까운 기계 기술이라는 점은 지금쯤 다시 한 번 다뤄 볼 만한 소재였고 ‘로봇’과 ‘리얼 스틸’이 가장 근접한 이미지로 관객들에게 다가온 영화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리얼 스틸’의 로봇들은 실제 크기로 제작되고 또 비슷한 동작 구현 기술도 연구중에 있으니 말이죠.


 


 영화 ‘로봇’을 저처럼 좋게 보는 사람만 있지는 않겠지만 단순히 오락영화로 흘려보내기엔, 그것이 좋든 싫든, 한 번 언급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미 극장에서 내려간 마당에 재평가를 할 시간을 달라고 하기엔 그렇게 호응이 뜨거운 영화가 아닌 까닭에 소심하게 글로 아쉬움을 표현해보지만 말이죠...

 

 

 

 

Posted by 라.즈.배.리


* 이 글은 2012년 2월 27일에 작성되고 2013년 10월 7일에 마이그레이션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raSpberRy입니다.
 오늘은 지난 2월 25일 '오!재미동 볼리우드' 상영작이었던 영화 'Paa'에 대한 영화읽기와 Trivia 등을 준비해 봤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에겐 새로운 정보와 감상의 전환이, 안보신 분들에게는 관심의 증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영화의 초반 한 중견 배우가 머리를 묶고 있으니 바로 영화의 주인공 오로 역의 아미타브 밧찬의 아내 자야 밧찬(Jaya Bachchan)입니다. 미녀스타인 아이쉬와리아 라이를 제외한 현역에서 뛰고 있는 모든 밧찬가가 출동합니다.

 영화에서 자야는 오프닝 크레딧을 외우는데 1972년 아미타브 밧찬이 자신의 영화 'Bawarchi'에서 시도했던 것을 37년만에 재현한 것이라 하는데요,

 자야와 아미타브, 두 사람은 1973년 아미타브 밧찬을 톱스타로 만들어준 영화 ‘Zanjeer’를 통해 만났고 그 해 아미타브 밧찬과 결혼하여 1남 1녀를 두는데, 그 중 아들인 아비쉑 밧찬이 2000년 ‘Refugee’라는 영화로 데뷔하고 그 이듬해인 2001년 자야가 발리우드 클래식으로 불리는 히트작 ‘Kabhi Khushi Kabhie Gham’으로 영화 복귀를 선언하면서 본격적인 밧찬가의 시대가 열리게 되죠.

 아미타브 밧찬은 1996년 자신의 영화사 AB Corp를 세우는데 이렇다할 흥행작을 내놓지는 못합니다. 영화 ‘Paa’는 밧찬을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으로 흥행과 비평에 있어 소계의 성공을 거두죠.



 이 영화사의 최신작은 ‘Bbuddah... Hoga Terra Baap’이라는 액션물로 감독은 Puri Jagannadh라고 텔루구에서 폭력물을 주로 만들던 감독이었는데 이 감독의 영화 치고 이 영화는 꽤 순한편(!)이라고 하더군요. 흥행과 비평에서 딱히 좋은 평가는 못받았지만 의외로 Rediff의 독설가 Raja Sen은 별 다섯을 주면서 밧찬의 팬이라면 필히 봐야할 영화라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아미타브 밧찬이 영화 대부분의 곡을 불렀고 아들인 아비쉑은 영화의 프로듀서와 아버지 노래의 피쳐링으로 랩을 담당했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블루레이로도 나왔으니 관심 있거나 호기심 많은 분들이라면 한 번쯤 보셔도??



 * 밧찬가 셋 이상이 출연했던 영화로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가문의 법칙’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Sarkar Raj’가 있습니다. 밧찬 부자와 아이쉬와리아 라이가 출연하죠. 우연히 세 사람은 2005년도 영화 ‘Bunty aur Babli’에도 함께하는데요, 아이쉬와리아 라이가 아이템걸로 출연하지만 아비쉑과 결혼하기 전이었기에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상에서 신문, 방송 등의 미디어는 상당히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영화 초반 언론이 오로를 포착한 것으로 아몰이 의도하지 않은 빚을 지게 되어 오로와 계속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장치도 되지만 비드야가 두 사람의 만남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드라마를 형성해 갑니다. 동시에 ‘나쁜 언론’의 등장으로 아몰의 정치행보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들이고 그의 원맨쇼로의 무대로 활용이 되기도 하죠.

 이는 작년에 개봉되어 큰 인기를 얻은 ‘내 이름은 칸’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 생중계 된 9/11테러 이후 무슬림의 이미지는 큰 타격을 입고 리즈반의 수해 복구를 통해 그 이미지를 회복함으로서 미디어가 주는 리얼리티를 드라마로 반영하고자 했던 것이죠.




 몇 해 전, 모 커뮤니티를 통해 샤룩 칸의 유명한 맛살라 영화 ‘옴 샨티 옴’을 봤을 때 7분에 달하는 맛살라 시퀀스 ‘Dewangee Dewangee’에 자막에 배우 이름조차 언급이 안되었던 여배우가 있었으니 바로 이 비드야 발란이라는 배우입니다. 영화 ‘Paa’를 촬영하던 당시는 연기생활 고작 4년(비공식적으론 6년)만에 미혼모 역할을 맡아야 했으니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겠지만 꽤 잘 해 냅니다.

 인도영화를 그리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인도에서 좋아할 만한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보수적인 인도사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가는 무슨 변고를 당할지 모르니까 말이죠. 다른분께서도 언급하셨지만 영화 ‘청원’에서의 안락사 문제 같은 것도 주류 영화로서는 다루기 쉽지 않은 부분일 것입니다.


 발리우드 영화가 이런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이런 이야기에 동참할 수 있는 배우들을 찾게 되었고 비드야 발란이라는 배우가 적절한 시기에 출연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기력과 다른 배우들이 쉽게 하기 힘들어 하는 역할을 동시에 소화하는 배우 말이죠.



 그녀의 이런 도전은 이 영화 ‘Paa’와 2010년의 ‘Ishqiya’, 2011년의 ‘The Dirty Picture’로 이어지며 3년 연속 Filmfare 여우주연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습니다. 올 해는 콜카타에서 세트 촬영 없이 게릴라식으로 진행되어 화제가 되었던 ‘Kahaani’에서 임산부로 출연한다고 하니 이 배우의 도전은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영화에는 거의 비슷한 음운을 가진 단어를 반복해서 만든 비슷한 노래가 세 곡이 나옵니다. 극중 비드야와 아몰을 이어주던 'Mudhi Mudhi Isteffaq Se'를 비롯해 'Udhi Udhi Iteffaq Se', 'Gali Mudhi Ittefaq Se' 세 곡이 나오는데 너무 심한 재활용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네요.

 대부분의 자막작업자들은 타이틀에 주어진 영어 자막을 그대로 번역하는데 비해 저는 힌디어도 못하면서 음운을 한글로 맞춰보겠다고 힌디어를 자막기로 돌려 보면서 노래가사를 한글 음운에 맞춰 자막 작업을 하는데요. 도데체 무디무디가 뭔지 우디우디가 뭔지... 또 그 단어를 다른 노래에 언어유희로 맞추다 보니 정서 표현은 다르게 되지만 ‘음운 맞추기’와 ‘정서 표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하다보니 영화 번역중에 상당히 피곤한 부분이 되었다는 그런 안타까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요.

 이 문제의 작사가는 스와난드 키르키레라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세 얼간이’의 ‘알리즈웰’을 쓴 작사가기도 하죠.




 아마 작년 화제작이었던 ‘세 얼간이’에도 그런 장면을 보셨을 것입니다. 영화의 등장인물인 라주가 여주인공 피아의 손을 잡고 돌면서 ‘빨리 결정해 마지막 바퀴를 돌면 우린 부부야’라고 하는 장면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인도영화를 보면 종종 인도 결혼 모습이 나오는데 우리처럼 주례사가 있긴 하지만 주례라기 보다는 힌두의 예식을 진행하는 브라만(서구에서는 이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 이들을 ‘신부’라고 지칭하더군요)들이 주문 같은 것을 외고, 신랑이 신부의 손을 맞잡고 뱅글뱅글 도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결혼’이라는 것은 인도인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축제기도 하지만 사랑을 주축으로 하는 인도영화에 ‘결혼’은 해피엔딩을 뜻하기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이 인도는 결혼이라는 것을 신성하게 생각해서 그런지 영화에서도 상당히 신중하게 다루는데요. 얼마전에 리테쉬 데쉬무크라는 배우와 결혼식을 올렸던 여배우 제넬리아 드수자가 작년에 ‘Force’라는 영화에서 극중 존 아브라함과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연출하면서 이것을 영화 촬영으로 봐야 하는가 실제 결혼식인가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아마 촬영을 하면서 모든 예식을 다 치렀기 때문이라는데요, 존이 무슬림이고 제넬리아가 천주교도라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 해프닝으로 끝맺으려 했던 것 같지만 한편으로 보면 인도 사람들이 전통 혼례에 대한 개념 자체를 신성하게 생각하다 보니 이런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영화를 만든 R. 발키 감독은 이 영화의 각본도 직접 썼는데요, 영화를 만들고자 한 의도, 즉 그의 출발점은 어디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몰이라는 남자를 정치가로 설정하고 인도의 정치 상황을 보여주면서 전반부를 이끌어 나갑니다.

 그런데 이 아몰이라는 캐릭터는 영화에서는 나름의 대결 구도 때문에 착한 정치인으로 그려진 듯하지만 제가 봤을 때 과연 아몰이라는 사람이 좋은 정치인인지는 의문이 갑니다.


 영화 초반 그는 정치 거물답게 시내 주요 행사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는 역할을 하는데요. 한 백화점의 오픈식에서 ‘주차장이 좁아서 가위가 안드나 봐요’라는 나름 뼈있는 말 한마디를 던집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가장 중심에 서는 사건은 재개발을 통해 빈민가의 주민들에게 집을 주려 하는 것인데 인도의 현실을 우리의 잣대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우리도 한 때 재개발이라는 이름하에 빈민들을 내쫓았지만 그들에게 살 공간을 마련해 주진 않았죠. 최근에는 용산참사가 대표적이었고, 윤제균 감독의 ‘1번가의 기적’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등장하곤 합니다.


과연 이런 호텔같은 건물을 지어놓고 빈민들에게 줄지는...


 그의 진정성이 없음이 보여지는 단적인 예가 그가 정적인 자이크릿이 마을을 돌며 반대운동을 하던 때 아몰은 마을에 와서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어차피 무허가로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집을 준다는데 싫으세요.’ 하고 윽박지릅니다. 이런 정치가에게 어떤 정책적인 진정성을 찾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가 생각하는 재개발은 시혜적인 사상에서 온 정치 포퓰리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은 이미 버스에서 주사 좀 부리는 할아버지들의 시답지 않은 소리로 전락한지 오래지만 영화 ‘Paa’를 보고나면 참 틀린 말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아몰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 비드야와 아이를 버렸고 이것을 전제로 했던 것을 보면 발키 감독은 아몰이 겉으로는 쿨해보이는 정치인이지만 속물이었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보여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의 정치꾼스러운 모습은 영화 후반부에 빛을 발합니다. 바로 오로가 그의 아들이었음이 알려진 후에 기자들 앞에서 감동 연설을 하는 장면에서 오그라들어서 주먹이 불끈 쥐어지더군요.




 사실 그 전에도 아몰이 비드야와 재결합을 요구할 때 그의 태도에서 진정성을 느끼긴 힘들었습니다. 정말 사랑의 마음을 느껴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불을 끄고 싶어 안달난 한 표범의 모습이었달까요?


이렇게 팔짱끼고 거만하게 합치자고 말했다간... ㅡㅡ;;


 이런 아몰에게 그래도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장치가 바로 오로라는 캐릭터죠. 아몰은 오로라는 인물을 알게 되면서 정말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아들임을 알게 된 순간 잠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사소하지만 정치에 대한 견해 역시 오로가 던지는 농담들이 더 와닿았습니다. 어떤 느낌이었냐면 ‘네가 정치에선 9단일지 몰라도 그건 네가 쇼를 잘해서지 진심이 있어서가 아냐. 네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꼭 옳다고 생각하진 마’ 라고 하는 것 같아서 저만의 것이었을지는 모르지만 나름의 청량감도 느껴졌고요.

 하지만 발키 감독은 이 영화를 안전한 가족영화로 마무리 짓고 싶어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결론과 관련된 이야기라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결국 아몰도 정치꾼이기 전에 한 명의 인간이었음을 보여주는데 신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만약 제가 R. 발키 감독이었다면 아몰이나 반대당인 자이크릿이나 두 사람의 정치적인 액션만을 보여줘서 선악구도를 모호하게 만드는 효과를 노려볼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부분이 강해지면 가족 영화로서의 이미지는 흐려지겠지만 ‘다크 나이트’가 히어로물이라기 보다는 느와르 영화에 가까웠듯 가족영화를 빙자한 정치영화를 표방하면... 안되려나요? ㅋㅋ



 요즘은 발리우드 영화계 여러 방면에서 타밀 출신의 영화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뮤지션 A. R. 라흐만이나 마니 라트남 감독이야 일찍부터 터를 잡았으니 인도영화 마니아들에게는 많이 알려졌지만 일라이야라자라는 음악 감독의 이름은 꽤 생소할 것입니다.


  1943년 타밀지역의 마드라스 출신의 이 뮤지션은 1970년대부터 작곡활동을 하며 본고장인 타밀을 비롯해 말라얄람, 칸나다, 텔루구 등의 남인도 지역에서의 왕성한 활동으로 마에스트로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는데요, A. R. 라흐만 역시 그의 팀에 키보디스트로 활약하던 시절이 있을 정도로 인도의 많은 영화음악 뮤지션들에겐 스승으로 인정받는 인물이기도 하죠.


  지금은 그의 아들 유반 샹카르 라자가 타밀 영화음악계의 대세로 활약하면서 두 부자가 인도 영화음악계의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영화가 조로증에 걸린 아이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관객이라면 분명 이 점이 의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에서 아빠의 역할보다는 엄마의 역할이 더 커보이기 때문이죠. 그 생각은 유독 엄마역할인 비드야 뿐 아니라 할머니(오로가 ‘엉덩이’라 부르는)에게서도 나타나기 때문이니까요.


 반면 이 영화에서의 남자들, 아이들을 제외하고 영화의 중심축을 이루는 성인 남자들을 보면 우리가 기대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런 제목을 달았던 것은 가족으로서 기대하는 아빠의 모습과 다른 성인 남자들의 모습을 통해 아빠로서의 기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려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언급한 야심에 가득차 가족으로서의 연을 저버린 아몰도 그렇지만 나름 인상깊었던 인물은 파레쉬 라왈이 연기한 아몰의 아버지 역할이었습니다. 극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없어도 되는 역할이긴 하지만 이런 아들을 가진 아버지는 어떤 위치에 있고, 아몰이라는 남자에게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지 살짝 보여주기 위한 작은 디테일이었다고 봅니다.


 ‘가족’이 중심이 되는 영화에 있어 편부나 편모 가정의 모습은 영화에서 큰 위치를 차지한다고 봅니다. 여성들 뿐인 오로의 가정이 그랬고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아몰의 가정이 그렇죠. 아몰의 아버지가 사별을 했는지 이혼을 했는지는 언급되지 않지만 그의 행동을 보면, 그는 아들의 욕망을 존중하는 동시에 그의 위치가 안정권에 들어서면서 슬슬 ‘가족으로서의 아버지 노릇’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세상의 부모마음 다 같은 마음~ 아들 딸이 잘되라고 행복하라고~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몰에게도 잠재적인 부성애를 실제 친아들인 오로를 통해 증명하고자 함으로서 영화에선 아빠의 자격을 주려했던 것 같습니다.

 한 편,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가정 중 하나는 오로의 절친 비슈누의 가족이었는데요, 비슈누의 가족을 통해 아빠라는 존재가 얼마나 자식들을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영화는 집안을 돌보기보다 사회적인 동물로서의 외로운 삶에 더 익숙한 아빠들의 진심을 보여주고 또 아빠의 자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빠’에 대한 시각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그려보고자 했던 계속적인 대화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러니하게 두 밧찬 부자는 그 위치를 바꿈으로서 마치 사이코드라마처럼 외적으로도 그런 효과를 노렸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되었죠.


 * 일흔을 이른이라고 쓴 것 사죄드립니다. 서치 돌리니 세 번이나 나오더군요 흙흙...


 * 영화 ‘Paa’에 등장한 대형 시계는 영국의 Corpus Clock으로 두 사람의 만남을 상징하는 공간인 동시에 캠브리지 대학을 다님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이기도 합니다. (여담이지만 이 시계가 2008년에 공개 되었으니 적어도 두 사람의 만남을 2008년도라 가정하면 오로의 이야기는 14년 후인 2022년에 벌어지는 셈이 되겠네요 ^^)


 * 충분히 신파조로 나갈 수 있는 이야기인데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영화 속 오로의 조로증의 모델이 된 실제 인물은 영국의 세스 쿡이라는 소년이라고 합니다 (사진 속 분장의 모델) 물론 영화의 이야기는 허구고 증상만 따온 것이죠. 영화를 위해 쿡의 가족으로부터 허가를 받았다고 하네요. 분장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등의 영화에서 분장을 담당했던 크리스티앙 틴슬리와 '킹콩'과 '반지의 제왕'을 담당했던 도미니 틸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아미타브 밧찬이 오로 분장을 하는데는 6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하네요.

 * King Edward 학교는 실제 말레이시아에 있는 학교라고 합니다. 그래서 촬영이 말레이시아에서 이루어졌죠.

 * 비슈누가 못 푼 문제 X=(2.57+6)*3, Y=(7.76-4)*6에서 X+Y에 대한 정답은 96.54입니다.


 * 오로가 먹는 키치디는 쌀을 인도 콩과 함께 찐 것으로 일종의 강장음식이라 하는데 특이한 음식이 아니라 그런지 포털사이트에 검색을 해봐도 이 걸 먹었다고 올리는 분도 없고, 쌀밥의 연장선상이라 생각해야 할까봅니다 (인도여행을 안가서 그런지 배경지식이 딸릴 수 밖에 없네요)

 * 감독이자 각본가인 R. 발키는 이 영화의 속편으로 'Maa'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프로젝트를 접었다고 합니다. 그는 조로증에 걸린 소년의 이야기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고 실제 부자인 밧찬 부자를 통해 부자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목적이었고 그것으로 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데요. 어쩌면 그의 선택이 현명하다고 봅니다. ^^

 * 결혼식 이야기를 하니 아비쉑의 아내 애쉬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군요. 애쉬는 점술가의 말에 따라 액운을 물리치기 위해 바나나 나무와 결혼식을 치렀다고 합니다. 갑자기 아비쉑이 까메오로 출연했던 ‘라게 라호 문나바이’에서 아비쉑이 했던 대사가 생각나는군요. “이런 여자와 결혼할 수 있다면 단명해도 괜찮아요.” 애쉬 팬들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요즘들어 아비쉑이 더 아깝다는 생각이...

 * 저는 이 장면 좀 웃기더군요. 영화를 보신 분들도 이해하지 못할 장면일 수도 있습니다만... (탤런트 한혜진양의 ‘난 썩었어’라는 대사가 문득... ㅡㅡ;;)

 * 오로가 아몰과의 식사도중에 아몰의 휴대폰을 가지고 엄마한테 전화를 거는 장면이 있는데 제 생각으론 오로가 언젠가는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도록 하려는 장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 혹시 더 읽을 거리를 찾으신다면 이번 아미타브 밧찬 글을 주셨던 소퍄님의 글을 추천합니다. 
 영화 'Paa'감상 ☞여기
 아미타브 밧찬 이야기 ☞여기

* 마지막으로 다 같이 따라해볼까요?







Posted by 라.즈.배.리

* 해당 글은 2012년 3월 3일에 작성되어 2013년 10월 7일에 마이그레이션 되었습니다.

 


 

 2011년은 인도영화 팬으로서 즐거운 한 해였습니다. 

 '내 이름은 칸'이 개봉되었고 '세 얼간이'는 비록 소수의 상영관이긴 했지만 오리지널 버전으로 상영되기도 했고 '청원'역시 관객들의 좋은 평가를 받으며 극장에 상영되었습니다. 

 이렇게 2011년에는 나름 값진 소득을 얻었는데요, 2012년 역시 인도영화들의 개봉이 기다리고 있고 IPTV 등을 통해 서비스 되고 굿다운로드 서비스로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2년 이런 인도영화의 시장확대에 개봉작으로 첫 포문을 여는 영화는 '스탠리의 도시락'이라는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 거는 남다른 기대가 있어 오늘 이 영화 '스탠리의 도시락'의 성공을 기대하는 이유에 대해 언급해볼까 합니다.


 한국, 아시아권역에서 인도영화가 시험대에 오르는 나라


 

 


 인도영화, 특히 발리우드 영화는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등 세계 20여개국의 나라에 동시 개봉됩니다. 특히 최근 발리우드 영화에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는 증거로, '세 얼간이'의 여주인공 까리나 카푸르가 출연한 로맨틱 코미디 'Ek Main Aur Ekk Tu'(당신 하나, 나 하나)는 그 유명한 발리우드의 세 명의 칸(Khan, 샤룩 칸, 아미르 칸, 살만 칸을 일컬음)이 출연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북미지역에서만 111개관의 상영관을 잡을 정도로 발리우드 영화는 이전보다 확실히 입지가 커졌지요.

 



 이런 현상에는 발리우드 비 개봉권역에서의 선전도 한 몫을 했다고 보는데요, '내 이름은 칸'과 '세 얼간이'가 우리나라에 개봉되어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홍콩과 중국에서 잇달아 개봉되었습니다. 특히 홍콩에서 '세 얼간이'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편집 없이 170분 버전 그대로 개봉되었음에도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 성공하여 개봉 27주째를 맞고 있는 현재까지 장기 상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샤룩 칸의 '내 이름은 칸'이 1월, 단 4개관에서 개봉되었음에도 역시 관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고 8주째 순항중이라고 합니다. '세 얼간이'의 성공으로 영화는 중국에서도 개봉되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는데요, 최근 이런 움직임은 페루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페루에선 '내 이름은 칸'이 2011년 11월에 개봉된데 이어 '청원'이 올 해 2월에 개봉되는 등 이전에는 없던 발리우드 영화의 개봉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월 홍콩에서 개봉되어 꾸준한 관객을 모으고 있는 '내 이름은 칸'


 

 앞으로 이런 시도는 봄에 개봉예정인 '로봇'에도 기대를 모으고 있는데요, 아직 우리나라에선 개봉대기중이고 일본에서는 5월 개봉이 확정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인도영화 비 개봉권역의 연쇄적인 인도영화 개봉은 우리나라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이루어진 것이라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비슷한 시기에 해외 마켓에서 다른 나라의 수입업자들이 영화를 구매했다고 치더라도 상업성이 없으면 그대로 버리는 것이 원칙이죠. 따라서 어쩌면 수입업자들은 다른나라의 영화사가 자신들이 수입한 영화를 먼저 개봉해주기를 기다렸었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이런 눈치보기 속에 우리나라의 영화사가 과감한 시도를 했고 이로 인한 성공이 다른 나라의 영화사들에게 자극을 주었다고 봅니다. 결국 우리나라가 인도영화 불모지로 여겨지는 다른 나라 시장에 큰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이죠.

 



 영화 '스탠리의 도시락'은 이런 흐름속에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르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특히나 이 영화는 스타도 없고 저예산 영화였던 까닭에 발리우드 권역에서조차 개봉되지 않았던 영화였지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에서 먼저 총대를 멘 셈이고 그런 까닭에 기존 대형 발리우드 영화와 비교해 의미가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국내에 성공한다면 발리우드 영화계 내부에서도 상당한 지각 변동이 있을 것으로 기대를 걸어볼 만합니다.

 특히 스타시스템을 위시한 안일한 영화들이 득세했던 2011년 발리우드 영화계를 돌아보면 인도영화 마니아인 저조차 냉정하게 딱히 건질만한 영화가 없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은 가운데 스타 하나 없이 이야기로만 승부수를 던졌던 이 영화가 자국도 아닌 해외에서 성공을 거둘 경우, 발리우드는 기존의 스타시스템으로 안일한 영화를 양산했던 기존의 흐름을 각성하고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드라마가 강한 영화를 만들고, 이야기꾼, 이른바 작가에 대한 비중을 높여 나갈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발리우드에서는 그런 내적인 노력들이 부단하게 일어나고 있긴 하지만 아직 그런 경향은 비주류 영화계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고있고, 따라서 그런 영화들이 대체적으로 상업적인 결실을 맺지 못한 까닭에 약간은 더딘 감이 있기는 합니다.


 기존 인도영화 접근에 대한 잘못된 행태를 뒤집을 영화

 


 작년 가을 특정 인도영화 커뮤니티에서 한 바탕 논란이 벌어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 회원이 영화 '청원'을 회원들에게 공유했던 일인데요, 이 영화의 개봉을 알고 있던 저는 해당 회원에게 영화를 공유하지 말 것을 당부했지만 거절당했고 이를 공론화 했는데 놀랍게도 대다수의 회원들이 공유가 무슨 잘못인가하고 걸고넘어지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사실 인도영화의 개봉의 단맛을 본지는 얼마 안되었고 인도영화 마니아들이 불가피하게 그 전에는 불법으로 다운로드 등을 통해 영화를 공유했습니다. 따라서 인도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불법 파일을 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잘못이 아닌 것처럼 받아들여져있습니다. (물론 그런 행태를 옹호하고자 언급한 건 아닙니다)

 

 일부 주류 마니아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누군가 이렇게 퍼뜨리기 때문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런 방법으로 인도영화 저변이 확대되었다고 말이죠. 저는 이 말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2009년 불법 다운로드 10위권 내에 들어 잠시간 붐업을 일으켰던 영화 '가지니(Ghajini)'의 경우 영화가 수입이 되었지만 정작 개봉이나 2차 판권 서비스 따위의 수혜를 입은 바 있었는지 불법 공유를 통한 저변확대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또한 '세 얼간이'와 '내 이름은 칸'의 불법 다운로드로 인한 피해는 각 영화당 10만명의 관객 손실이라고 보고하고 있는데, 솔직히 10만명까지는 과장되었다고 할지라도 이로인한 손실이 있었음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불법 다운로드의 경우에도 쉬운 접근성으로 감상자를 확보하기는 하지만 공유 사이트에 '초 강추 인도영화'나 '흥행대작' 따위의 문구가 있다 한들 이용자에게 '인도영화'라는 선입견이 존재하는 가운데에선 해당 영화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보는데, 결국 인도영화를 원래 좋아했던 이용자나 열린 사고를 가진 소수가 아니고서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쉽게 말하면 불법으로 영화를 다운받아 보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인도영화를 선택할 사람은 많지 않다고 보는 것이죠.

 때문에 위와같은 전례를 보았을 때 저는 인도영화를 알리는 것은 영화의 정식 개봉과 합법적인 서비스라는 주장을 하고 싶습니다. '세 얼간이'와 '내 이름은 칸'을 배포해서 알렸다지만 배포자들의 채널은 한정되었고 또한 영화적인 정보나 콘텐츠가 함께 간 것도 아니었던 까닭에 성공적인 저변 확대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쉬운 예로 그렇게 배포되었음에도 '내 이름은 칸'이 국내에는 인터내셔널 버전으로 개봉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했던 사람이 얼마나 되었나만 봐도 알 수 있죠. 정작 개봉되었을 때 160분 버전을 봤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식을 전달해 주지 못했고, 따라서 대부분의 관객들이 다른 버전이 있는 것조차 몰랐다는 것은 그들 나름의 방식이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꺼요. 

 또, 정말 특이한 예를 들어볼까요? 모 IPTV에서는 발리우드 뉴웨이브 감독 아누락 카쉬아프의 'Dev.D'를 '첫사랑 끝사랑'이라는 다소 황당한 제목으로 서비스 한 바 있는데요, 의외로 이 영화는 IPTV에서 쏠쏠한 재미를 거두었고 해당 IPTV의 발리우드 영화 전용 서비스를 열게 만든 공신이 되었는데 정작 인도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발굴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고 심지어 일부 마니아들에게는 '데브다스'를 능욕한 역적의 영화 취급까지 받는 영화였는데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 합니다. 


  이런 일련의 케이스들을 보며, 과연 불법다운로드로 저변확대라는 말은 얼마나 실효성을 거두었는지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탠리의 도시락'이라는 영화를 알아봤고 이 영화가 마켓을 통해 수입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과연 인도영화 마니아 집단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자막 제작은커녕 이 영화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물론 유명한 배우가 나오지 않는 것도 그런 조류에 한 몫을 했겠지만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영화 '스탠리의 도시락'은 불법 다운로드의 마수에서 벗어난 영화입니다. 많은 이들로부터 좋다고 평가가 나 있는 검증된 영화고 이제 관객에게 그 평가가 돌아갑니다. 저는 이 영화가 성공해서 일부 인도영화 마니아들의 다운로드를 통한 인도영화의 저변 확대라는 인식이 잘못되었음이 증명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편으로는 이 영화의 성공을 통해 더 많은 좋은 인도영화들이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빛을 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Posted by 라.즈.배.리